경남 거제 칠천도

▲ 맹종죽테마공원 대나무는 진초록이 강한 색상의 댓잎과 쭉쭉 뻗은 모습에서 싱그러움이 묻어난다.
▲ 맹종죽테마공원 대나무는 진초록이 강한 색상의 댓잎과 쭉쭉 뻗은 모습에서 싱그러움이 묻어난다.

남해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거제도`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 역사적인 아픔이 묻어있는 곳이다. 먼 역사를 짚어보면, 임진왜란 7년 전쟁 당시에 조선 수군이 일본에게 유일하게 패전한 곳이 칠천량해전이니 그 한 면이요, 현대사에서 가장 불운을 겪은 6·25전쟁으로 인해 만들어진 거제포로수용소가 또 다른 한 면의 그늘이다.

섬 속 작은섬, 바다·대나무숲 등 자연 만끽 트레킹 코스
천혜의 아름다움 간직… 맹종죽 테마공원 산림욕 `인기`

그 얼룩진 시련의 역사를 뚫고 이제 거제는 발전을 하고 있다. 어둠을 물리치고 주위를 밝게 만드는 아침해처럼 거제는 한려해상의 청정바다와 인심 가득한 사람들의 힘에 의하여 조선산업도시, 해양관광도시로 이름을 알리면서 신생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0그래서 이번 산행은 냉엄한 역사의 교훈이고, 거울이기도 한 거제의 섬, 풍파를 겪은 칠천도로 정했다.

거제가 남해안에 위치하고 있어 포항이나 대구 등지에서 칠천도로 가려면 부산 강서구 쪽으로 가서 일단 가덕도와 거제도를 잇는 가거대교를 타는 것이 최단코스다. 거제에 진입하여 다시 거제도와 칠천도 연육교를 이용하여 도착지에 이르는 코스로 칠천도 산행에 소요되는 시간보다는 거기에 가거나 돌아오는 왕복시간이 더 걸려 차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게 탈이다.
 

▲ 소남 신용우 기념비.
▲ 소남 신용우 기념비.

대문트레킹과 함께한 이날의 산행은 전문 등산이라기보다는 하늘과 바람과 바다가 키운 섬, 거제도 속의 작은 섬 칠천도의 바다와 지역 명물인 대나무가 함께 만들어 내는 자연의 색깔과 소리를 마음에 담아오는 트레킹 코스라는 게 마음을 끈다.

그래서 트레킹코스는 칠천도 연육교를 타고 섬에 도착하게 되면, 장안마을과 옥녀봉, 굿등산을 지나 옆개 해수욕장을 잠시 보고서 맹종죽 테마 공원으로 이동하여 삼림욕을 한 뒤에 다시 귀가하는 일정으로 짜인 가벼운 산행길이다.

먼저, 2010년 12월 14일에 개통된 길이 8.2km 왕복 4차선으로 만들어진 가거대교, 혹은 거가대교로도 불리는 이 다리는 구간 중에서 일부 구간이 해저터널로 되어 있는 `꿈의 바닷길`이다. 육지와 섬, 섬과 섬을 잇는 연육, 연도교라서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총사업비가 1조 4,469억 원이라 하여 놀랍다. 경험하지 아니한 사람들이 한번쯤은 구경해볼만하니 여기서는 더 이상 설명을 생략한다.

차를 달려 거제도에서 연육교를 건너니 칠천도이다. 칠천도는 섬 내에 옻나무가 많고, 바다가 맑고 고요하다 하여 칠천도(漆川島)로 불려오다가 강이 일곱 개가 있다고 해서 칠천도(七川島)로 불러져 현재에 이른다.

칠천도 바다는 말이 없고 그 위를 나르는 갈매기들은 무심하다. 필자는 이곳이 일본 수군에 대패한 조선 수군의 슬픈 역사를 처음 들은지라 마음이 애통한데, 그래서 바다 색깔이 더욱 우울해 보이는 것 같다. 그 마음을 떨쳐내고 첫 코스인 장안마을에 도착했다.
 

▲ 칠천도에서 바라 본 바다의 모습.
▲ 칠천도에서 바라 본 바다의 모습.

대나무 등산로이다. 흔히 어느 산이든 산 초입에 이르면 소나무나 작은 나무들이 서 있지만 이곳은 대나무로 시작된다. 작은 대나무가 아니라 크다. 그 대나무 숲길을 천천히 걸으니 자연이 주는 풍광과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서걱이는 대나무 잎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기묘한 음악처럼 들려온다.

주변의 풍경들이 예사롭지 않게 좋은 기분이지만 필자의 컨디션이 이날따라 말이 아니다. 어제 볼일이 있어 마산에 갔다가 먹은 음식에서 식중독 증상이 있었으나 참고 견디면서 칠천도트레킹에 따라나섰다. 차를 타고 칠천도로 오는 동안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몸 고생을 많이 했다. 때로는 바닷바람 등 자연의 맑은 공기와 함께 하니 다소 버틸 만은 했는데 산행코스가 편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옥녀봉으로 향해 한창 걷다보니 소나무들로 둘러싸인 길이 나온다. 옥녀봉이 230m 남짓한 산이니 걷는 길이 평탄하다. 옥녀봉에 오르니 팔각정이다. 그곳에서 일행들은 휴식을 취하는데, 어느 산악회에서 붙여놓았는지 옥녀봉 정상(232.2m)이란 표지가 건물에 붙여져 있다. 정상에서 보니 조망이 매우 좋다. 거제도의 수려한 섬은 말할 것도 없고, 마산의 저도 연육교나 부산 쪽의 해경이 한눈에 다가온다.

옥녀봉을 탐방하고 내려오다가 멋진 대나무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숲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등산을 하면서 점심식사자리로 이렇게 좋은 곳은 만나기는 처음이다. 등산하느라 힘든 상태에서 햇볕을 막아주는 그늘과 한꺼번에 여럿이 모일 수 있는 장소가 있으면 식사장소로는 명당인데, 이곳이 그렇다. 앉기도 편하지만 사방이 대나무 숲이니 불어오는 바람과 진초록 색깔이 만들어내는 장면이 넉넉한 여유로움을 준다.

굿등산에 오르기 위해서 도로변까지 나와 그 길을 건너서 다시 산을 올라야 한다. 바다가운데 있는 섬이라서 산에 올라도 시야가 탁 튀어져 기분이 좋게 느껴지지만 컨디션 문제로 필자는 힘겹다. 너그러운 오르막을 올라 정상에 서서 이곳저곳을 살펴본다. 여기서도 거가대교나 칠천량해전 터가 훤히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이다.

굿등산은 물안마을 뒷산의 산중턱에 널찍하게 자리 잡은 곳인데, 이곳에서 마을사람들이 평안과 풍어와 안전을 비는 굿을 많이 했다고 하여 `굿등산`이라 전해진다. 굿등산 정상(159.4m)이라는 표지석이 주변의 나뭇가지와 잎에 가려져 있어 초라하게 보인다.

이제 하산길이다. 7분 남짓 걸어 내려오니 마을이 나타나고 바로 바닷가 해수욕장이 펼쳐진다. 이곳 옆개해수욕장은 아직 개장을 하진 않았지만 관광객들이 얕은 바닷물 속에서 가족들과 함께 재미있게 노는데, 엄마아빠를 따라 나온 아이들이 많이 보인다.

이번 코스 중에서 산에 오르는 본격적인 일정은 다 마쳤다. 일행은 다시 차로 이동하여 거제도 본도에 있는 맹종죽테마공원을 찾았다. 대나무로 유명한 테마공원에서 삼림욕을 즐기는 일정으로 좋은 트레킹 코스다.

맹종죽은 죽순을 식용으로 사용하여 `죽순대`라 부르기도 한다. 10~20m 높이로 자라고 지름이 20cm 정도로 대나무 가운데 가장 굵고 단단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맹종죽의 80%가 거제에서 생산된다고 하니 또 다른 거제의 명물이 바로 맹종죽이다.

맹종죽테마공원에서 맛보는 삼림욕은 또 하나의 여유이다. 여느 나뭇잎보다 진초록이 강한 색상의 댓잎과 쭉쭉 뻗은 모습 속에서 싱그러움이 묻어나고 있다. 여기가 이번 트레킹의 마지막 코스인 만큼 대나무 숲의 풍경과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서 오늘의 칠천도 트레킹을 회상해본다. 현재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현실의 칠천도는 바다에 감싸인 천혜의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이곳을 찾는 이로 하여금 편안함을 주지만, 역사적 교훈은 다르다는 점이다.

 

▲ 글·사진=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 글·사진=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칠천도의 역사적 교훈은 살아 있다. 임진왜란 당시인 1597년 음력 7월 16일, 조선의 삼군수군통제사 원균이 일본 수군에게 대패한 곳이 바로 칠천포가 아닌가. 여기서 남은 12척의 판옥선이 이순신 장군이 승리로 이끈 명량해전의 바탕이 됐으니 인과(因果)는 돌고 도는 것이다.

칠천도까지 오게 된 것도 저마다의 인연이다. 옥녀봉, 굿등산에 올라 바다를 조망하고, 옆개 해수욕장에서 백사장의 조개껍질을 매만지던 일과 대나무 잎의 가벼운 떨림을 대하던 자연과 만남의 순간은 우리의 심신을 더욱 상쾌하게 했다. 나름대로는 컨디션이 나빠 고생길이기도 했던 이번 트레킹에서 자신의 존재와 타인과의 인연을 되새겨본 것은 두고두고 생각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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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경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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