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우리마다 우뚝 솟은 암봉들, 칼바위 능선 위용 과시

▲ 북한산은 대한민국 오악(五嶽)의 하나로 주봉인 백운대와 숨은벽능선과 인수봉이 우뚝 솟아 있고, 산 정상이 암반으로 형성돼 서울의 진산으로서 위용이 넘쳐난다.
▲ 북한산은 대한민국 오악(五嶽)의 하나로 주봉인 백운대와 숨은벽능선과 인수봉이 우뚝 솟아 있고, 산 정상이 암반으로 형성돼 서울의 진산으로서 위용이 넘쳐난다.

이번 등산은 서울의 진산인 북한산으로 정해졌다. 필자가 서울에 거주할 때에도 일찍부터 알게 된 북한산에 오르지도 못했는데, 등산을 하다 보니 뒤늦게 북한산을 오르게 되었다.

북한산이라! 등산가가 아닐지라도 국민 가운데 유아들을 제외하고서는 아마 북한산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서울에 있는 산이고, 어렸을 적에 불렀던 동요에서 이미 `북한산`이란 단어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북한산을 안 시기도 동요를 불렀을 때로 생각된다. `기러기 떼 기럭기럭 어디서 왔니. 북쪽에서 날아오다 북한산에 들렸니. 북한산 단풍 한창이겠지. 이 담엘랑 단풍잎을 입에 물고 오너라.`

어린 시절, 가을이면 그 노래를 부르면서 어디에도 있는 줄도 모르는 북한산 단풍과 기러기떼를 생각했던 것인데,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고 보니 전국의 어느 산에도 가을이면 단풍이 곱게 물든다는 것을 자연히 알게 됐다.

암반길 등산 코스 안전수칙·사전준비 철저히
백운대 정상 오르면 눈 아래 펼쳐지는 풍광에 황홀

지난주에 서울 북한산을 다녀오고서 평소에도 느낀 바지만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라` 라는 말을 새삼스럽게 실감했다. 서울이 우리나라의 수도로서 정치·경제·문화 등 여러 면에서 잘 발전돼있다는 단순한 생각에서만은 아니다.

등산 하나만 따져 봐도 그렇다. 북한산은 서울 외곽에 있으면서 그 면적이 넓어서 볼거리, 쉴 거리가 많다. 그보다는 서울의 종로구, 은평구, 강북구 등 여러 구와 고양시가 관리를 하면서도 북한산 등산코스가 잘 다듬어져 있어 어느 때든지 일반 시민들과 등산객들의 왕래가 많다.

게다가 기존의 샛길을 연결하고 다듬어 북한산 자락을 완만하게 걸을 수 있도록 조성한 저지대 수평 산책로인 북한산 둘레길 71.3km 길이의 총 스물 한 군데를 정비하여 어느 곳에서도 서울 시민들이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았으니 시민들이 얼마나 편리할까.

서울시민들의 휴식처이기도 한 북한산 등산을 위해 등산 당일 새벽부터 분주했다. 1일 등산이라 아무래도 오가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또 산 정상까지 오르내리려면 새벽부터 행차가 불가피하다. 대구에서 오전 5시 반경에 출발한 버스는 산행 들머리인 서울의 밤골공원 지킴터에 도착하는데 까지는 4시간 반이 걸렸다.

차안에서 새벽잠을 즐긴 일행들은 오전 10시 10분경 산행을 시작했다. 이번 산행은 북한산 산행의 여러 코스 가운데 상징성을 갖는 숨은벽과 백운대 정상에 올랐다가 도선사 쪽으로 내려와 일정을 마치도록 돼 있다.

북한산은 정봉인 백운대(836.5m)와 인수봉(810.5m), 만경대(799.5m), 노적봉(716m)이 주 봉우리를 형성하고 있고, 이 봉우리 일대에 암봉 군들의 자태가 수려하여 북한산의 경관으로 꼽히는 곳인데, 이번 등산에서 직접 오르거나 다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어 다행이다.

이번 등산은 암벽 전문 등산이 아니지만 코스로 볼 때에 암반길을 많이 걷는다는 안내를 받고서 일행들은 마음을 다지면서 등산화를 꼭 조여매기도 한다. 빼어난 북한산의 경관을 맛보려면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는 등 안전수칙도 지켜야한다.

밤골 매표소를 지나 계곡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초입이 평길이기에 일행들의 발걸음이 가뿐해보인다. 직진하다가 왼쪽으로 사기막골 가는 방향으로 200m 가다보니 사기막골과 백운대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거기서 백운대 길을 향해 숨은벽능선을 따라 오르는 길은 30분 정도의 거리가 편한 숲길이어서 쉽게 갈 수가 있다.

서서히 암반이 보이고 본격적으로 암반길이 계속된다. 암반길을 따라서 조심조심 걷고 숨은벽 바로 아래에 있는 해골바위를 우회하여 전망좋은 곳에서 잠시 쉬면서 숨은벽의 또 하나의 명물로 꼽히는 해골바위를 본다.
 

▲ 암반길을 걷는 일행들. 북한산의 경관을 맛보려면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는 등 안전수칙을 지켜야 한다.
▲ 암반길을 걷는 일행들. 북한산의 경관을 맛보려면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는 등 안전수칙을 지켜야 한다.

바위의 형상이 영낙 없는 해골의 모습인데, 눈 부분의 움푹 파인 곳에 빗물이 고여 있다. 직접 올라가본 사람들은 그 물이 오랫동안 고여져 있어 썩었다는 말을 한다.

잠시 쉬면서 사방을 둘러보니 서울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저 멀리 도봉산의 주능선이 한 눈에 들어오고 또한 경기도 양주의 송추, 장흥 일대의 시가지까지 눈 아래에 펼쳐진다.

다시 암반등산을 계속하여 나아가니 구멍바위가 나타난다. 이 바위가 맞물려 세워진 빈 틈새로 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수 있도록 공간이 나 있다. 일행들은 등산백을 벗어 조심조심하면서 맨몸으로 빠져나와서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조금 더 오르면 숨은벽 위 고개다. 누가 붙인 이름인지 숨은벽이라 하니 벽이 숨어있다는 뜻으로 필자도 선뜻 이해하기가 어렵다. 위용을 자랑하는 숨은벽은 북한산의 뒤태를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최근에는 등산객들이 많이 찾아 널리 알려진 탓에 이제는 `숨은벽`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일행들은 조심스럽게 암반길을 걸으며, 숨은벽 능선을 타고 고개에 오른다. 여기서 빤히 바라다 보이는 백운대까지는 500m 거리다. 서로 손을 잡아주면서 아찔한 절벽을 타고, 테크로 만들어진 계단을 오르면서 암반등산의 경계심을 가진다.

드디어 백운대 정상에 올랐다. 그 위에 만들어진 게양대에서 태극기가 힘차게 펄럭인다. 사방을 둘러보니 서울 시가지와 함께 인근의 경기도 땅이 눈 아래로 펼쳐진다. 어느 산이든 정봉에서 갖는 느낌은 마찬가지지만 이곳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진산, 북한산의 정상이다 보니 느껴지는 맛이 새롭다.

북한산의 가장 높은 백운대 정상에 서서 펼쳐지는 풍광들을 살펴보면서 기념사진을 찍고서 휴식도 취한다. 사방을 둘러보는데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통일서원비다. 1975년 8월 15일에 한국산악회가 세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조국강산 / 겨레도 나라도 하나이기에 / 피와 사랑으로 한 덩이 되어 / 우리 손으로 통일을 이루오이다.` 라는 내용인데,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고 통일을 이루자는 애국심은 잔뜩 묻어난다.

그 옆에 보니 3·1운동 암각문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통일서원비나 3·1운동 암각문을 만든 단체들의 열정은 탓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좋은 자리에 자연을 훼손하면서까지 비석을 세우고 암반에 글씨를 새겨야 하는지, 그것이 과연 옳은지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꼬리를 문다. 자연은 자연상태에서 가장 가치를 빛내는 것이 아닐까.

북한산을 부르는 이름이 많았다. 본래 한산(漢山)이라 불렸는데, `삼국사기`,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등에서 나타난다. 서울 지방의 옛 이름을 한산·북한산·한양 등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북한산은 처음에는 산 이름이 아니라 서울의 옛 이름인 한산의 북쪽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이라는 기록이다.

또한 북한산은 백운대·인수봉·만경봉 세 봉우리가 삼각을 이루어 나란히 있는 모습 때문에 삼각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고려사`의 삼각산 승가굴의 기록이나,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서 삼각산으로 표기되어 있고, 그래서 고려와 조선 시대에 일반화된 이름으로 근래에까지 삼각산이란 이름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 북한산성이 축성된 내용을 기록한 `북한지`가 출간된 이후 북한산이란 이름이 자연스럽게 사용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백운대의 넓은 암반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일행들은 다음 코스인 도선사 쪽으로 향한다. 도중에 있는 노적봉과 용암봉을 보면서 일행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노적봉은 목포 유달산 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여기에도 노적봉이 있다.

노적봉을 보면서 용암문 사이에 있는 용암봉을 잠시 바라다본다. 용암봉은 그 높이가 616m이다. 그 모양이 마치 용처럼 생겨서 그렇게 부르는데, 정식 등산로가 아닌 암봉이어서 자일 등 등반장비를 갖춘 전문 등산인들이 오르는 코스로 용암문에서 용암봉 봉우리와 만경대를 거쳐 위문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리지산행(암릉등반)으로 알려져 있으니 일행들은 구경만 할 뿐이다.

하산 길을 재촉하여 산행 길에 있는 북한산의 유명한 사찰 도선사에 도착했다. 도선사는 조계종의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로 신라 경문왕 2년(862년)에 도선이 창건한 절이다. 도선은 북한산 아래 위치한 이곳의 산세가 천년 뒤에 불법을 다시 일으킬 곳이라고 예견하고 절을 창건한 뒤에 큰 암석을 손으로 갈라서 마애관음보살상을 조각하였다고 한다.

1903년 혜명 스님이 고종의 명을 받아 대웅전을 중건하였으며, 1904년 국가기원도량으로 지정받았으며, 그 후에 청담 스님이 주지로 취임하여 당시 박정희 대통령 및 육영수 여사 등의 시주로 도량을 중수하였다고 알려지는데, 현재와 같은 큰 사찰로 면모를 일신하게 됐다. 사찰 경내를 한 바퀴 돌면서 살펴본 뒤에 식수대에서 한 바가지 물을 떠서 목을 축이고서는 다음 코스인 우이계곡으로 향했다. 일요일이라 수많은 행락객들과 산악회 회원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우이계곡을 지나간다. 길가의 음식점에서 등산을 마치고서 뒤풀이하는 광경도 보인다. 북한산 정상을 거쳐 하산을 했지만 우리 일행들에게는 돌아갈 길이 멀다.

 

▲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암릉으로 형성된 된 산을 힘들게 오르고 내려왔지만 이번 산행에서는 색다른 느낌을 가졌다. `왜 우리가 여유 없이 바쁘게 살아가야 할까` 하는 의구심과 자연의 섭리대로 조금만 더 천천히 라는 `슬로우의 미학`을 가지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북한산을 휘감는 긴 산 그림자 속에서 보낸 이번산행은 필자에게는 더욱 소중한 의미로 다가선다.

글·사진=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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