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처럼 둘러싼 바위… 선경 아래로 흩어지는 물보라…

▲ 남원팔경 중 제1경인 구룡계곡과 폭포의 비경은 전설 속에 묻어나는 절경이었다. 폭포수 아래에서 묵상도 하면서 생활의 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여름 등산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묘미중 하나다.
▲ 남원팔경 중 제1경인 구룡계곡과 폭포의 비경은 전설 속에 묻어나는 절경이었다. 폭포수 아래에서 묵상도 하면서 생활의 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여름 등산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묘미중 하나다.

구룡계곡은 남원시 주천면 호경마을과 고기마을 사이를 흐르고 있는 계곡으로, 아홉 마리의 용이 노닐던 곳이라고 해서 구룡계곡으로 이름 붙여졌는데, 남원이 자랑하는 8경 가운데 제1경이니 풍광이 매우 빼어난 곳이다. 그래서인지 구룡계곡을 찾는 등산인들이나 관광객들이 많은데, 주로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은 반대편인 여원재에서 출발하여 수정봉과 노치샘을 거쳐 구룡폭포를 보고 육모정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선택하기도 한다.

육모정-제9곡 구룡폭포 왕복 7.5km 코스… 가는 곳마다 절경
기암괴석 타고 여기저기서 흘러내리는 계곡 물줄기 탄성 자아내

40년 만에 가장 무더웠다는 이 여름의 끝자락에서 물러나는 계절의 묘미를 느끼기 위해 다시 한번 유명한 폭포를 가보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정한 곳이 대구에 있는 `우리들산악회`들과 함께하는 남원 구룡계곡과 폭포였다.

일요일 아침 7시에 약속장소인 출발지에 도착했다. 알고 보니 우리들산악회는 매월 첫 일요일을 등산일로 정하고 있는 친목 산악회였는데, 필자는 김위준 회장과 유현순 총무를 비롯하여 임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차에 탑승하여 곧장 남원으로 향했다.

남원지역의 등산은 올해만도 두 번째이다. 봄빛이 성큼 다가서던 3월 말경 춘향골 천황산을 오르고 나서 등산기를 <본지 3월 30일 13면 보도>에 올린바있다. 그래서 남원 자랑은 생략한다.

아침 일찍 출발한 차가 추석 성묘 벌초를 위해 행차하는 사람들이 많은 관계로 교통이 지체가 되어 오전 11시경에야 등산지 초입인 육모정에 도착했다. 일행들은 차에서 내려 잠시 자유시간을 가진 뒤 등산 안내를 받으며 단체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설명을 들으니 산행 일정은 육모정에서 구룡계곡 옆 계곡 길을 거슬러 올라가서 제9곡 구룡폭포까지 갔다가 다시 원점으로 내려오도록 돼 있는 가벼운 트레킹 산행코스다. 종주거리가 왕복 7.5km이다보니 비교적 시간은 넉넉한 편이다.

구룡계곡 9곡 중에서 제1곡은 송력동 폭포로 주천 쪽 지리산 국립공원 매표소에 조금 못 미치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통칭 `약수터`라 하는데, 이곳은 등산객들의 접근이 어려워 2곡인 용소가 사실상 구룡계곡의 관문 구실을 하고 있다.

2곡 용소를 지나면 제3곡 학서암이 나타나고, 일행들은 산행을 계속하여 제4곡인 구시소에 도착했다. `서암`으로 불리는 구시소의 계곡 바닥에는 크고 작은 갖가지 바위가 많이 산재되어 있는데, 그 모양새가 아름답다. 그 가운데 소나 말의 먹이통인 구유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국의 명수(明水) 구룡계곡답게 가는 곳마다 절경이 펼쳐지고 있으니 한곳에서 오래 머물 수도 없다. 또 다른 비경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서이기도 하다. 계곡의 절경에 취하여 잠시 쉬다가 다시 걸음을 옮겨 다음 코스로 향한다. 흐르는 물소리, 때때로 불어오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기분 좋게 오른다.
 

▲ 우리들산악회 회원들과 성춘향 묘소가 가까이 있는 육모정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 우리들산악회 회원들과 성춘향 묘소가 가까이 있는 육모정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구시소에서 출발하여 계곡을 끼고 1km 정도 산길을 따라 오르니 계곡이 급경사를 이루고, 암반 밑으로 흘러내린 명경지수를 이루는데 또한 비경이다. 이곳이 바로 유선대이다. 유선대 주변의 바위는 특이한 모습으로 바위에 균열이 있어 그런지 금이 많이 그어져 있다. 그래서 예부터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이곳에서 신선들이 바둑을 두며 쉬었다는 곳이다.

신선들이 유선대에서 놀면서 행여 속세 인간들의 눈에 띌까봐 병풍으로 가리고 놀았다 하여 이곳을 은선병이라고도 한다.

선경 밑으로 흩어지는 물보라를 마음에 새기며, 눈을 돌려보면 푸른 숲 나무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하늘에서 내리비치는 태양, 푸른 하늘을 유유히 흐르는 흰 구름조각, 간간이 들리는 이름 모를 산새소리를 들으랴 치면 우매한 인간인 필자가 마치 신선이 된 듯 착각에 빠진다.

어디 신선들뿐이랴! 이곳 구룡계곡에는 음력 4월 초파일이면 아홉 마리 용이 하늘에서 내려와 아홉 폭포에서 놀다가 다시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으니 선경이고, 비경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래서인지 필자는 여느 등산과는 다르게 시간적 여유를 갖고서 많이 생각하면서 쉬기도 했다. 널찍한 암반 위에서 잠시 지나온 세월을 회상도 해보고, 때로는 무아지경이 되어 잠시간 잊고 잠도 청하기도 했다. 혼자서 갖는 이런 여유의 시간의 매력으로 인해 등산이 무작정 좋은지도 모르겠다.

매미소리에 흠칫 놀라 선잠에서 깨어났다. 몽롱한 상태가 선계인지, 인간계인지 분간이 희미해지는데, 어쨌든 신선이 놀고, 용이 쉬었다는 유선대이고 보니 잠시간 탈인간했는가보다.

갑자기 어디에라도 편지가 써 보고 싶다. 정말 오랫동안 써보지 못한 육필편지다. 많은 사람들과 교류를 하지만 거의가 휴대전화를 사용하다보니 문명의 이기 득을 보긴 하지만, 인간의 향기가 묻어나는 편지나 먼 길을 달려가 만나는 인생의 진득한 맛을 느끼지 못하는 불행함도 있는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흐를 수 있다면 고향마을의 부모님이나 친지, 타향이라면 옛 시절 그 당시 힘든 나에게 강한 생활력과 사회를 꿰뚫고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신 많은 고마운 사람들을 만나거나, 현재의 이 마음을 그대로 전할 수 있겠지마는 다시는 오지 않는 세월이기에 다만 추억으로만 그리워할 뿐이다.

그러다보니 마음이 착잡해지면서 왠지 허전한 기운이 밀물처럼 가슴속을 엄습해오는 느낌이다. 잠시간 신선 흉내를 낸 어리석음에 대한 신선의 응징이리라. 그 허전한 마음이지만 자연의 풍광을 담고, 친절히 대해주는 산악회원들의 인심이 잠시간 젖은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아침부터 지켜봤지만 산악회의 임원들이 회원들을 위해 자상하고 인정을 나누는 것을 자주 목격하였다. 그 장면이 일부러 연출하는 것이 아닌 오랫동안 배어진 습성 같은 것이었다. 많은 곳을 등산하면서 여러 단체들과 어울렸으니 척보면 알 수 있는데, 이번 산악회의 임원은 남다르게 일행들에게 너무 잘 대해주는 것이 회원들이 즐거워하는 행동 속에서도 알 수 있다.

산행을 하면서 편히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자주 쉬면서 이런저런 생각도 해보면서 길을 걷는다. 비폭동을 지나서 출렁다리를 건너는 등산인들의 행렬 속에서 차례를 기다려 드디어 구룡계곡의 백미, 아홉 마리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을 지닌 구룡폭포에 도착했다.

구룡폭포는 물줄기가 수직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완만하게 경사진 암반을 타고 비스듬히 흘러내리는 것이 특색이다. 계곡에 자리한 또 하나의 명물, 기암괴석을 타고 여기저기서 줄줄 흘러내린다.

남원에서 구룡폭포를 8경중 제일로 치는 것은 남원의 자랑 판소리 때문이라 생각된다. 판소리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풍류가 어우러진 음악으로, 양대 산맥은 동편제와 서편제이다. 남원이 바로 동편제의 탯자리인 것은 동편제의 창시자로서 판소리계의 최고의 칭호인 가왕으로 불리는 송홍록(1780년경~1860년경) 명창이 태어난 곳이 운봉읍 비전마을이고, 그는 이곳 구룡폭포에서 득음하였다.

그 후 구룡폭포가 소리꾼들에게는 소문나 기라성 같은 송만갑, 박초월 등 당대 최고의 명창들이 이 폭포 아래서 소리공부를 하고 득음을 하였다고 하니 가히 남원은 소리꾼들의 성지요, 구룡폭포가 그 원조지역임을 알 수 있다.

늦여름에 계곡의 절경마다 전설이 담겨져 있는 구룡폭포에서 시원히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자연의 지혜를 배우는 산행의 시간은 한껏 여유로움을 가져다준다.

계곡을 왕복하여 걷는 시간은 비교적 짧았지만 산악회 회원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리더들을 보면서 몇 사람들의 노력으로 회원들이 즐거워하고 함께 걷는 행복하다는 걸 체득한바 임원진들의 노력에 고마움을 전한다.

일상의 번잡함을 떨치고 나서는 등산길에서 맛본 여러 가지 체험들. 귀가 길에서 폭포에서 끊임없이 떨어져 내리던 폭포수를 생각하면서 그 풍경에 청량감을 느낀다. 흐르는 물소리가 인간의 뇌파를 안정시켜주고, 음이온이 풍부해서 심리까지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는데, 이번 남원 구룡폭포의 등산길이 자연풍광을 마음에 안고 게다가 마음의 안정감까지 얻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글·사진=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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