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사뿐히 내려앉은 산봉우리마다 구름바다 넘실

▲ 가을이 내려앉은 설악산 산봉우리 밑에 깔린 운해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br /><br />
▲ 가을이 내려앉은 설악산 산봉우리 밑에 깔린 운해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바야흐로 단풍의 계절이 찾아왔다. 산에 들에 단풍이 붉게 물들면서 행락객의 마음을 유혹하고 있는데, 북쪽 산에서 시작하여 남쪽의 산까지 시차를 두고 국토를 아름답게 물들인다.

기상청에 의하면 이달 중하순 절정에 달한 설악산 단풍이 차차 남하하면서 10월의 넷째 주말(26~27일)에는 속리산까지 내려가고, 11월 첫째 주말(2~3일)에는 전북 내륙과 경남·북으로 번져 가야산, 팔공산에 이르며, 11월 둘째 주말(9~10일)에는 전국에서 제일 단풍이 잘 들기로 이름난 내장산까지 절정기를 이룬다고 한다. 가을 등산은 이왕이면 단풍이 잘 드는 산을 찾는 것이 당연하지만 등산 애호가들에게는 그저 산이면 족하다. 계절마다 변하는 산의 형상들은 어느 산이든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산에 오를 때나 내려올 때의 마음가짐이 항상 같지만 때로 하산 길에서는 오늘도 즐거운 산행을 잘 마쳤다는 안도감에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대청봉 정상 오르면 울산바위·동해바다 `한눈에`
불교 대표 순례지 봉정암 5대적멸보궁 중 하나

필자가 생각해도 산은 마음에 위안을 주는 나의 든든한 백그라운드이다. 그래서 이번에 찾은 곳이 설악산인데, 지난 6월에 이어 올해의 단풍이 절정기를 이룬 시기에 또 찾아왔으니 못 잊어서 그리운 산 찾아서 또 왔다는 것이 나에게 해당되는 셈이다.

특히 이번 등산은 대청봉과 소청봉, 그리고 봉정암에서 1박할 계획으로 특별손님과 함께 왔으니 등산을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신이 나는 행차였다.

지금까지 숱한 산행에서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만 해주던 집사람이 이번에는 봉정암에서 철야기도도 할 겸해서 함께 가자고 했으니 설악산 코스가 산을 처음 타는 사람에게는 걱정도 되지만 단풍이 가장 곱게 물드는 절정기를 맞아 부부가 함께 가는 등산이니 여간 기쁘지 않다.

새벽 4시 40분에 출발한 차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강원도의 험준한 산과 협곡을 이리저리 돌아 오전 10시경에 설악산국립공원 오색분소에 도착했다. 당초에는 한계령에서 산에 오를 계획이었지만 산의 깊은 곳에서 정수리를 타고 싶다는 집사람의 청을 받아들여 출발지를 변경했다.

등산하는 사람들이나 일반인들도 설악산엔 자주 와봤을 것이다. 불교도들은 봉정암에 들려 기도를 했을 터이고 상춘객들은 봄이나 가을에 설악의 절경을 음미해봤을 테고, 또한 등산인들은 사시사철 아름다움을 가져다주는 설악의 자연과 함께한 기쁨이 있으리라.

특히 설악산 등산은 산불조심기간에는 일시적으로 등산로가 폐쇄된다. 허용 시기는 매년 5월16일부터 11월 14일까지와 12월16일부터 이듬해 2월 28일까지다. 그리고 설악산은 시간적으로도 통제가 되는데 입산시간은 오후 1시까지다. 오후 1시까지는 등산을 시작해야 한다. 때로는 등산객들이 등산도 하면서 일출장면도 볼 겸 야간 등산을 즐기기도 하는데 대청봉에 올라 동해바다에서 뜨는 일출장면은 명품이라 한다.

설악산 등산코스는 여러 군데다. 당초 한계령에서 시작하려던 계획을 바꾸어서 오색에서 출발했는데 이 코스는 돌계단과 나무계단으로 되어 있어 산행코스 가운데 험로로 유명하다.

설악산 오색분소에 도착한 일행들은 간단히 준비운동을 하고서는 조심스럽게 등산을 시작한다. 필자는 집 사람과는 처음으로 등산하는 관계로 신경이 많이 쓰인다. 평소에 발목과 무릎 쪽이 좋지 않아 신경을 쓰는 상태인데 무사히 이번 등산을 마칠 수 있을까 걱정도 된다.

초입부터 돌계단이 시작된다. 설악산 중에서 오색 코스는 정상인 대청봉까지 가장 짧은 구간이지만 정상까지는 거의가 계단으로 되어 있어 전문가들도 힘들어하는 곳이다. 경사도가 있는 계단코스를 만난 집사람은 처음부터 힘들어 한다. 오늘 봉정암에서 기도를 하는 게 집사람에게는 더욱 중요한 일이지만 산에 오르는 초입부터 수행하는 자세로 올라야 한다.

주변 산에 단풍이 울긋불긋 들어 아름다운데, 붉고 노랗고 물든 단풍 천지다. 집사람은 힘이 들어 조금 오르다가 쉬기를 반복한다. 봉정암에 기도하러 간다는 마음과 부근에 있는 아름다운 단풍과 자연 풍광이 없었다면 아마 도중에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고전분투한다.

등산에서 초행자가 몇 명 있는 관계로 일행들은 힘을 북돋우며 천천히 진행한다. 자주 쉬면서도 힘들게 제1쉼터까지 왔다. 쉬엄쉬엄 제1쉼터를 지나 한 시간 남짓 걸으니 물소리가 나는 것 같아 올라가보니 설악폭포다. 그리 많은 양은 아니지만 쉼 없이 물이 흘러내린다.

설악폭포에서 잠시 쉬다가 제2쉼터를 향해 다시 걸음을 시작했다. 힘들게 2쉼터를 지났고, 이제 대청봉에 오르는 최대 난코스을 맞았다. 어려움이 있는데도 여기까지 아픔을 참아가면서 여기까지 온 집사람이 고맙다. 나는 계속 집 사람과 처음 등산 온 사람들의 상태를 살피면서 발걸음을 천천히 옮긴다. 경사가 급한 오르막길이 계속되는 험난한 길이다.

집사람의 걷다가 쉬다가를 반복하는 모습을 때로는 부축해주면서 힘들게 오르다 보니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여럿사람들에게 힘을 내라고 이야기하면서 주변에 있는 단풍나무와 자작나무를 보면서 다시 힘을 얻는다.

드디어 대청봉에 올랐다. 올라올 때는 몰랐는데 정상에 오르고 나니 갑자기 겨울 날씨다. 몸을 따뜻하게 한 뒤에 주변을 살펴본다. 멀리 울산바위도 보이고 동해안의 바다위에 떠 있는 배들도 보인다.

우리 일행들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단풍놀이 온 행락객들이 `대청봉 1천707m`이라 쓰인 정상 표지석 앞에서 줄서서 기다리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필자는 숱한 등산을 하며 사진을 찍었지만, 지금까지는 아내와 함께 지구상에서 가장 높이 오른 산이어서 기념을 남겼다. 설악을 배경삼아 함께 한 이 순간은 상대를 존경하고 위해주는 경건함이 신비감으로 다가온다.

이제는 중청봉으로 가는 길은 하산길이다. 조심조심해서 내리막길을 걷는다. 매주 등산으로 단련된 등산 마니아들이야 문제될 것이 없지만 초보등산가들에게는 하산할 때가 조심스럽다. 이미 오르느라 지친 몸에 기운이 없으면 하체가 후들거리거나 내려오면서 꼬일 경우가 있다. 그래서 산에 갈 때에 등산 스틱이 필수인 것이다.

같은 산세의 중청봉 정상에 올라 전망을 구경하고서 다시 내려 소청봉 대피소를 지난다. 처음 온 사람들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니 힘은 들지만 자연경관이 너무 좋아 견디고 있다는 말들이 고맙기까지 하다. 봉정암으로 향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다들 내색은 하지 않지만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다.
 

▲ 설악이 감고 돌아 명당이 된 봉정암의 전경.
▲ 설악이 감고 돌아 명당이 된 봉정암의 전경.

드디어 오늘의 종착지인 봉정암에 도달했다. 등산을 시작한지 8시간만인데, 일반 등산인들보다 1시간 반이나 지체된 상태다. 전문등산인들도 힘들어하는 코스인데, 초행길에 나선 몇 사람들은 오죽하랴! 집사람은 딸아이와 가족을 위한 마음으로 봉정암에 올라야 한다는 일념이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여기에까지 오게 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봉정암은 강원도 설악산의 소청봉에 있는 절이다.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에 자장대사가 당나라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가지고 귀국하여, 이곳에서 사리를 봉안하고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백담사의 부속암자인 이 사찰은 우리나라 대표적 불교 성지인 5대적멸보궁 중의 하나로 불교신도들의 순례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기도에 들어가기에 앞서 집 사람과 저녁 공양을 하며 오늘 오른 산에 관한 이야기 등을 하면서 집 사람이 보람있어 하는 것 같아 나는 기분이 좋고 행복한 마음이었다. 여태껏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면서 혼자서 즐긴 것이 미안할 따름이다.

이제 아침이 서서히 밝아온다. 새벽안개 속으로 아침햇살이 서서히 퍼져가는 산사에서 느끼는 감정은 수행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인간 오욕칠정이 멎은 듯한 순간이다. 인생의 지나온 길과 현재의 존재 가치나 앞으로 살아갈 이생의 길목을 조용히 반추하는 진실의 시간인 것이다.

점점 밝아오는 신선한 아침을 맞으며 한줄기 생각이 마음속으로 스쳐지나간다. 이번 설악을 찾아와 여럿 사람들과 힘든 돌계단을 오르고 고생한 파노라마 같은 순간들이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또는 등산의 길에서 항상 고맙게 대해준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가슴속에 깊이 새겨야할 인생 좌우명 같은 생각들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단풍이 /사람 마음을 혹하게 하는가. //신비의 설악을 감고 돌아 /명당이 된 봉정암에서 /오랫동안 참선하는 사이에 /내심에 가득 찬 기도는 /자연을 닮고 싶다는 욕심 뿐. //별빛마저 고운 밤에 /한밤을 지세우고서 /경건히 맞는 이 아침이 /가슴 아리게 다가섬은 /수행길이 멀다는 아쉬움인데 //힘들어도 서럽지 않게 사는 법을 /설악은 묵언으로 말해주고 있다.”

지금까지 많은 등산을 했지만 이번 등산은 의미가 깊다. 가을이 익는 설악산의 멋진 풍광 속에서 가족을 위해 기도차 아내와의 동행이 마냥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쓰게 된 의의 `설악의 묵언` 시처럼 인생길을 동행하면서 참된 가치와 사랑을 자연에서 배우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봉정암에서 1박을 하고서 2일차 등산은 오세암과 영시암을 지나 백담사로 가서 이번 등산을 마감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코스의 등산기는 필자가 지난 6월에 등산을 다녀와서 백담사~영시암~오세암 코스에 대해 자세한 등산기 <경북매일 6월 14일자>를 쓴 적이 있어 참고할 것을 당부하면서, 그 구간에 대한 별도의 등산기는 여기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어쨌든 가을이 깊어가는 시기에 단풍이 가장 아름답게 물든다는 설악산을 1박 2일간 다녀온 이번 등산은 내겐 의미가 깊다. 특히 그 일행 가운데 등산에는 초보인 집사람과 친구분이 따라 나서서 동행한 소중한 시간들은 등산이 인생같다는 훌륭한 가르침이어서 고마움을 느낀다.

 

▲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글·사진=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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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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