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 앉은 상대방의 왼쪽 어깨 너머로 에펠탑 꼭대기가 보이는 프랑스 파리의 소박한 야외 카페. 가게 안 스피커에선 니콜로 파가니니(Niccolo Paganini)의 ‘라 캄파넬라(La Campanella)’가 흘러나오고 있었다.클래식에 관해 아는 바 적지만 저건 분명 여성 바이올린 연주자다. 정돈되고 세밀한 현악기 소리가 해질 무렵 도시의 공기를 감미롭게 만들어줬다.천재성과 광기 사이에서 일생을 어지럽게 살아야했던 절름발이 화가 툴루즈 로트렉(Toulouse Lautrec·1864-1901)이 좋아했을 법한 포도주를 주문했다. 낯선
어머니의 남자 - 고운기섣달 그믐밤 잠깐 정신이 들었을 때어머니는큰오빠가 가자한다고 또렷이 말했다누구 오빠?우리 큰오빠…여동생이 한 번 더 물었어도 같은 말을 했다기쁜 듯의기소침한 듯어떤 제삿날이었을까묵묵히 지방을 써주고 가던방 어두운 한 구석의 사내를나 또한 어렴풋이 기억한다마흔 갓 넘기었나,어머니의 큰오빠 나의 큰 외숙부는전쟁통에 홀로 된 여동생의 안부를지방 써주는 날에 와서 확인하던 것인데나는 이승에서 그의 모습이그날 단 한 번으로 가물거릴 뿐이다친정아버지도 아니고아이 둘씩 낳아준 두 남자도 아니고눈이 팔팔 내리던정월 초하룻날
그간 여행했던 유럽 다른 나라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펼쳐지는 푸른 들판은 한국의 1970~80년대 시골 풍경과 닮아있었고, 빨간 지붕의 야트막한 집들이 정겨움을 불렀다.수도인 티라나(Tirana)는 물론 마을 앞을 평화롭게 흐르는 강이 인상적인 조그만 도시 베라트(Berat)에도 이슬람교 성당인 모스크(Mosque)가 높은 첨탑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익숙하고, 또 다른 면에선 생경한 모습들.동유럽 발칸반도에 자리한 알바니아는 1479년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았다. 그 영향 때
“사람들은 일상이 가장 큰 행복이란 걸 모르고 산다”고 말한 게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였던가? 아니면 발레리(Paul Valery)인가?사실 ‘여행’은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길고 먼 여행을 떠나본 이들은 알게 된다. 넓은 범위에서 보자면 결국 여행도 ‘일상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한국인들에겐 이름도 낯선 ‘마케도니아’라는 나라의 조그만 마을 오흐리드(Ohrid)에서 한 달쯤 머문 적이 있다. 수백만 년 전 생성된 맑고 투명한 호수가 여행자의 심장을 설레게 하는.느긋한 마음으로
풍문을 통해 상상은 했었다. 그러나 마주한 실상은 조잡한 상상력을 훌쩍 뛰어넘었다. 눈처럼 새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건축물. 1cm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균형미와 완벽한 좌우 대칭. 거기에 미려한 곡선의 아름다움까지.이미 수십 년 전부터 인도를 여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세계 최고의 석조 건물”이라 칭송받아온 타지마할(Taj Mahal) 앞에는 기자를 포함한 100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놀라움의 순간’을 사진기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타지마할은 외형적 아름다움과 함께 건물이 만들어진 낭만적 내력까지 유명하다. ‘왕의 불멸
‘국경(國境)’이란 단어를 발음하면 이상스레 어둡고 탁한 느낌이 몰려온다.이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국경이라고 하면 정치·이념적 적으로 규정된 북한을 먼저 떠올리는 탓이 아닐까?누구도 쉽게 넘어갈 수 없는 ‘금지된 선(線)’인 남한과 북한의 국경.하지만 유럽이나 인도차이나 반도를 여행하다 보면 생각이 바뀐다. 그곳에서 국경을 넘는다는 건 공무원에게 여권을 내밀고 조그만 도장 하나를 찍어 달라 청하는 ‘수월한 요식 행위’ 정도에 불과하다.기자의 경험에 의하자면 오스트리아에서 슬로바키아, 헝가리에서 슬로베니아, 터키에서 이란, 라오스에서
서울 한복판 광화문엔 교보문고라는 한국에서 가장 큰 책방이 있다. 하루에 수만 명이 지나다니는 그 서점의 바로 앞엔 아래와 같은 문구를 새긴 커다란 석비(石碑)가 있어 눈길을 사로잡는다.“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가끔 서울에 가서 그 앞을 지날 때면 이상하게 우울해진다. 이제는 누구도 감동시키거나 설득시키기 힘든 낡은 레토릭(Rhetoric)이기 때문이다. 책과 인간의 관계를 명료하게 요약한 글귀. 하지만 이제는 아무도 그 문구를 눈여겨보지 않는다. 그저 못 본 척 스쳐 지날 뿐. 이는 ‘책의 시대’가 망해버렸음을
‘늙는다는 것’과 ‘사라진다는 것’은 어느 인간에게나 서글프고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누구도 노화와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우스개처럼 “불공평한 세상이지만 이 두 가지에서만은 평등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하는 염세주의자도 존재한다.죽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는 욕망은 동양과 서양이 다르지 않았고, 남성과 여성의 공통된 바람이었으며, 시대가 바뀌어도 그 지향은 변하지 않았다.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제(秦始皇帝)는 나라 안팎으로 사람들을 보내 불로초(不老草)를 찾게 했다. 이 ‘불가능한 프로젝트’에 젊은 남녀 3천 명이 동원됐
자신 내부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영혼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사람과 한 번도 그 목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앞의 경우가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여행을 꿈꾸는 삶을 산다면, 후자는 아이들이 부르는 단조로운 동요와 같은 일상을 그저 견디고 있을 뿐, 안타깝게도 일탈의 용기를 내지 못한다. 세상에는 이처럼 두 가지 부류의 인간이 있다.인생이란 단 한 번이다. 과연 우리는 어떤 부류의 인간이 되기를 열망해야 할까?이런 질문과 마주 섰을 때 시인과 여행가들은 이렇게 말한다.“한 번 뿐인 인생이니, 당신의 영혼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짙푸른 물빛과 투명하게 빛나는 햇살. 태국의 바다는 문학으로 세상의 중심이 되고자했던 청년들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그들 사이에선 ‘전설’로 떠도는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아르튀르 랭보(Arthur Rimbaud·1854~1891). 그가 만약 살아 푸켓과 파타야의 파도를 보았다면 어떤 절창을 만들어냈을까?일 년 내내 더위만 지속되는 남국. 태국에선 가만히 있어도 줄줄 흐르는 땀이 사람을 힘들게 한다. 거기에다 폭염과 잠복한 게릴라처럼 일상을 습격하는 스콜(Squall). 사람을 축축 늘어지게 만드는 눅눅한 습기에 두 손 들고 항복
아주 먼 옛날이 아니다. 겨우 20~30년 전 청춘들은 아래와 같은 문장에 매혹됐다.“꿈을 꾸는 자는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시간을 좀 더 뒤로 돌려보자. 16세기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청춘은 불안전한 주식에 투자할 권리가 있다”는 말로 젊은이들을 고무시켰다. 이와 유사한 말을 한두 가지만 더 인용한다.“청춘은 누가 부추기지 않아도 제 가슴 안에서 스스로 모반을 꿈꾼다.”“젊음, 그것은 빛이 없어도 스스로 반짝이는 보석에 다름없다.”가장 빛나는 생의 한때, 다시는 되돌릴 수 없기에 아름다운 시절.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가난은 실체가 아닌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 풍경’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빈자가 10가지 걱정이 있다면 부자는 100가지 걱정을 하고 산다”는 옛말에 기대 현재의 곤궁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하지만 현실을 살아가면서 그런 느긋한 태도를 취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왜냐? 가난이란 그 자체로 인간을 위축시키고 주눅 들게 하는 탓이다.각종 신문과 방송을 통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가난한 이들의 슬픈 사연’은 우리를 서글픔으로 이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아래와 같은 소식을 보자.10~20만원의 단칸방 월세가 없
아득하게 깔린 레일 위를 덜컹거리며 달리는 기차를 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옛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추억 없이 존재하는 인간이란 세상에 없다.2019년 오늘의 한국은 시속 300km에 육박하는 초고속 열차가 보편화됐고, 북쪽 끝 서울에서 남쪽 끝 부산까지 2시간 30분이면 가닿는다. 서울과 호남의 끝자락, 서울과 강원도 역시 마찬가지. 아침 일찍 출발해 업무를 보고 오후에 돌아오는 것이 어렵지 않다.하지만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그건 ‘꿈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비둘기호 혹은, 통일호라는 이름의 한국 기차들은 시속 60k
이제는 한국 관광객들에게 익숙한 유럽과 북아메리카와 달리 아직은 ‘미지의 땅’으로 인식되는 인도. 여전히 물질이 아닌 정신의 우월성을 믿고, 세상 모든 사물에 신(神)의 숨결이 스며있다고 생각하는 인도 사람들.운 좋게도 30일쯤 그 나라를 여행하며 인도의 속살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는 건 기자 인생 ‘최고의 행운’이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그만큼 ‘인도 여행’은 기다리고 바랐던 것이었다.짙푸른 남중국해 위를 날아 홍콩을 거쳐 도착한 인도의 ‘경제 수도’ 뭄바이(Mumbai). 그런데 이게 뭐지? 국제선 비행기가 오가는 공항이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착각 속을 산다. 자신이 발 디딘 땅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혹은 지구가 나를 가운데 놓고 자전과 공전을 한다는.이런 터무니없는 착각과 미망(迷妄)에서 벗어나면서부터 우리는 ‘어른’이 된다. 그런데 그건 행복할까? 이 땅에서 힘없는 어른이란 겨우 ‘외롭고 우울하며 더불어 아무 것도 아닌 존재’에 불과한데.인천공항을 차고 오른 비행기가 10시간 30분을 날아 호주의 브리즈번에 도착할 즈음. 내려다본 바다는 막막하고 드넓었다.지구라는 땅덩어리 전체를 보자면 호주 역시 하나의 ‘섬’이다. 그러나 그 섬이 기자가 50년 가깝게
인도차이나 반도 가운데 위치한 라오스는 ‘가난한 사람들의 환한 웃음’과 ‘여행자에게 베푸는 친절’로 기억되는 나라다. 얼마 전부터 TV 여행 프로그램에 자주 소개된 탓에 급속도로 ‘특색 없고 흔한 동남아 관광지’로 변해가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문명의 때가 덜 묻고, 영악한 장사치들의 속임수가 비교적 덜한 곳. 라오스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도인 비엔티안에서 여행을 시작해 ‘작은 유럽’으로 불리는 강변마을 방비엔을 거쳐, 불교 유적이 매혹하는 루앙프라방을 향해 가는 북쪽 코스를 선호한다. 조금 더 모험심을 발휘한다면 낯선 원시의 향기가 곳곳에 산재한 라오스 남부 팍세, 시판돈, 사완나켓을 둘러볼 수도 있다. 젊은이들은 이 루트도 곧잘 선택한다. 영어를 못하는 이들조차 길을 묻는 외
‘몽골’이란 단어를 발음할 때면 어디선가 풀꽃 향기가 나는 것 같다.실제로도 몽골은 초원의 나라다. 그 너른 풀밭에서 유목하는 것으로 대다수 국민들이 생계를 유지한다. 떠돎과 유랑이 보편적인 국가.수도인 울란바토르(Ulan Bator)의 풍광은 아시아의 보통 대도시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늘어선 상가와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 가게, 양고기 구이와 몽골 특산 보드카를 파는 카페와 식당들….몇 해 전. 기자는 시인과 소설가가 대부분이었던 여행단에 끼어 몽골을 찾았다. 낮에는 박물관과 몽골의 대학을 찾아 세미나와 회의를 진행했고, 어둠이
북한의 송이버섯이 왔고, 남한의 제주도 귤이 갔다.미국을 주축으로 한 국제사회의 엄혹한 제재. 그 속에서 70년을 헤어져 살았던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미래를 위해 ‘화해의 선물’을 주고받았다.송이버섯과 귤의 향기가 핵무기로 인해 얼어붙은 이 땅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줄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누가 있어 쉽게 할 수 있을까.그러나 오래 전 철학자들의 전언처럼 “희망이란 절망의 끝에서 잉태되는 것”이 아닐지. 낙관은 언제나 비관을 가까스로 제압하며 우리의 앞길을 열어왔다.어둠이 없다면 빛도 없고, 밤의 적막이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 도착한 것은 뜨거운 햇살이 거리와 고딕의 건물을 태우는 한여름이었다.알바니아에서 배를 타고 아드리아해(海)를 건너 ‘바리(Bari)’라는 이탈리아 소도시를 거쳐 나폴리에서 나흘을 묵었다. 그 기간 동안 “지구 위에서 가장 근사한 풍경”이라 이탈리아인들이 자랑하는 포지타노(Positano)와 아말피(Amalfi)를 다녀왔다.절벽 위에 만들어진 고풍스런 레스토랑에서 눈이 부시도록 멋진 바다를 내려다보며 아말피 특산 레몬차를 마시고, 담백하고 맛깔스런 본토 피자를 점심으로 먹었지만 기분은 우울했다. 8개월을 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