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기차는 추억의 힘으로 달린다
세상 모든 기차는 추억의 힘으로 달린다
  • 홍성식기자
  • 등록일 2019.01.03 19:13
  • 게재일 2019.0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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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와 곽재구 시인
인도 기차에서 만난 할머니와 손자.

아득하게 깔린 레일 위를 덜컹거리며 달리는 기차를 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옛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추억 없이 존재하는 인간이란 세상에 없다.

2019년 오늘의 한국은 시속 300km에 육박하는 초고속 열차가 보편화됐고, 북쪽 끝 서울에서 남쪽 끝 부산까지 2시간 30분이면 가닿는다. 서울과 호남의 끝자락, 서울과 강원도 역시 마찬가지. 아침 일찍 출발해 업무를 보고 오후에 돌아오는 것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그건 ‘꿈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비둘기호 혹은, 통일호라는 이름의 한국 기차들은 시속 60km 안팎의 느린 속도로 이 땅을 오르내렸다. 승객들의 지루한 시간을 견디게 해주려 객차 안에선 삶은 달걀과 사이다, 김밥과 땅콩 따위를 팔았다.

조그만 수레를 밀며 판매원이 지나갈 때면 과자를 사 달라 떼쓰는 아이와 “자꾸 이러면 혼난다”고 야단치는 엄마를 보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비행기나 버스보다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걸 좋아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지나간 날의 낭만과 추억을 소급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하고 싶은 것이다. 기자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호찌민에서 나트랑까지 남중국해의 푸른 물결을 보며 달렸던 베트남 기차여행, 이스탄불에서 에르주룸을 향해 32시간을 꼬박 달린 터키 기차여행, 열차의 속도가 자전거만큼 느렸던 동유럽 알바니아에서의 여행 등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았다.
 

사평역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꼴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 느리게 달리는 열차에서 떠올린 ‘청춘의 기억’

이처럼 여러 차례의 기차여행 중 ‘추억과 함께 달린’ 최고의 경험은 인도에서였다.

인도의 경제수도 뭄바이에서 서부 해안 지역인 고아로 갈 때는 엄청나게 긴 기차를 탔다. 바닥은 지저분했고 속도는 한국의 고속열차에 비할 바 아니었지만, 거기서 만난 인도 사람들은 너나없이 여행자에게 친절했다. 그들의 환한 웃음이 부러웠다.

남부 깨를라에서 호수와 평원 사이를 달리던 인도 기차의 낭만도 잊을 수 없다. 객차 안에서 200~300원 남짓의 돈으로 즐기던 따뜻한 홍차 한 잔의 여유 또한 근사했다. ‘청춘’이란 이름으로 빛났던 20대의 추억이 절로 떠올랐다.

인도 중부 산악지대 우티에 머물던 시기엔 선로가 좁은 협궤열차에 타고 산에 오르는 체험도 했다.

그곳 조그만 간이역에서 맥주를 마시며 ‘오지 않는 기차’와 ‘더디게 오는 삶의 행복’을 기다리던 말수 적은 한 시인을 떠올렸다. 곽재구(65). 그의 시 ‘사평역에서’는 많은 문학청년들이 아껴온 작품이다.

인도 기차에서 만난 할머니와 손자.
인도 기차에서 만난 할머니와 손자.

▲ 그리움과 눈물 통해 ‘희망’을 지켜낸 시인

‘사평역에서’는 오래된, 그러나 세월을 뛰어넘어 아름다움을 발하는 작품이다. 쓸쓸한 풍경 속 하나의 이야기가 그물처럼 치밀한 의미망 안에서 생동감을 얻고 있는 보기 드문 절창.

곽재구 시인은 1981년 이 시를 통해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왔다. 어떤 문학평론가는 ‘사평역에서’를 “아름다움을 말하기 힘들었던 1980년대를 끝끝내 극복해낸 최고의 서정시”로 평가하기도 한다.

지도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평역’에 모여든 사람들. 세상이 그들에게 준 상처로 인해 옹기종기 앉은 이들의 얼굴은 모두 어둡다. 대합실 밖에는 언제 그칠지 모르는 눈이 퍼붓고, 조그만 역 안 공기는 서늘하고 차갑다.

과거로부터 시작된 슬픔이 걷히지 않은 ‘지금 이곳’ 사평역엔 웃음보다는 한숨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그러나 모든 걸 여기에서 끝낼 것인가? 이게 마지막인가?

시인은 독자들에게 답한다. “아니다. 우리 모두는 미래로 은유될 수 있는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라고. 기억을 소환하는 그 위로는 따스하고 포근하다. ‘사평역에서’는 추억의 힘으로 절망이 아닌 희망을 만들어내는 노래다.

곽재구는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 다음과 같은 희망적 메시지를 남겨 놓는다.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재차 부연하지 않아도 그리움과 눈물이 ‘진실’의 또 다른 측면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 진실을 향한 ‘불빛’을 지켜내려는 태도. 이것은 희망을 가진 자만이 취할 수 있는 행위임이 분명해 보인다.

객차에 오른 한 사람, 한 사람의 추억을 싣고 달리는 기차. 그 기차가 도착하거나 떠나는 공간인 간이역. 곽재구 시인은 거기서 세상의 진실과 희망을 발견해낸 것이다. 이미 38년 전 청년시절에.

▲ 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들

추억이란 아름다움과 서러움, 빛남과 어두움과는 무관하게 인간을 애틋하게 만든다.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는 기억 모두가 행복이거나 불행일 수는 없다. 때로는 웃음이, 더 많은 순간은 울음이 지배하는 게 삶이고 세상이다.

터무니없는 배짱 하나만으로 인도와 베트남, 터키와 알바니아를 떠돌아다니던 시절이 기자에게 있었다.

세월이 흐른 뒤 그때의 기차여행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세상 모든 기차여행과 스쳤던 간이역이 ‘행복’으로만 기억되지는 않을 터. 그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세상사 이치가 아닐까.

아무리 오래 살아도 ‘타향’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서울에서의 18년. 기차와 닮은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했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즐거웠던 기억을 애써 되새기며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다. 그런데 아직도 ‘기다리는 그것’이 정확히 뭔지 모르겠다. 아래 졸시는 그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다.
 

인도의 역 주변에서 만난 수도자들. 이들은 어떤 희망을 품고 살아갈까?
인도의 역 주변에서 만난 수도자들. 이들은 어떤 희망을 품고 살아갈까?

지하철 신림역에서

한강 건너 당산역을 지나 신림역으로 간다. 원자력발전소가 가동을 멈췄다는 뉴스를 검색하면 날아오는 찜통 속 열기. 끝없이 순환하는 지하철 2호선은 멈추는 방법을 잊었고. 형광등 빛에 찔린 눈알이 아팠다. 죄 없이 갇힌 지긋지긋한 수형의 나날이 끝나면 토성으로 가야할까? 신림동 가난한 이들에겐 햇살조차 인색하고.

공황장애와 조울증의 다른 이름 신림동. 이제 누구도 대화의 상대를 찾지 않는다. 말수 적어진 소녀들은 흙냄새 가득한 침향목처럼 무거워진지 오래. 득실대는 사내들이 만든 시끄러운 침묵에 포위된 신림동은 서울의 무인도다. 외떨어진 성채에는 이끼가 끼지 않고. 두려운 건 수백만의 비명으로 어지러운 홀로코스트만이 아니다.

신림동은 술 마시지 않고도 취하는 동네. 삐걱거리는 침대에 누워 텔레비전 속 시베리아 호랑이를 만난다. 저토록 아름다운 짐승이 지구 위에 3천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니. 아비 죽었을 때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찔끔. 다시 생겨난다면 한빈한 신림동 독신가구주가 아닌 아무르 강변 어슬렁대는 호랑이로 살고 싶다. 포수 총에 맞고도 제 울음만으로 백 리 밖 산천을 떨게 만드는.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사진제공/류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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