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빛으로 세상을 껴안은 청춘을 추억하다
황홀한 빛으로 세상을 껴안은 청춘을 추억하다
  • 홍성식기자
  • 등록일 2019.01.17 19:56
  • 게재일 2019.0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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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 하나의 풍경
태국의 여행자 거리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청춘들. 그들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눈부셨다.

 

아주 먼 옛날이 아니다. 겨우 20~30년 전 청춘들은 아래와 같은 문장에 매혹됐다.

“꿈을 꾸는 자는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

시간을 좀 더 뒤로 돌려보자. 16세기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청춘은 불안전한 주식에 투자할 권리가 있다”는 말로 젊은이들을 고무시켰다. 이와 유사한 말을 한두 가지만 더 인용한다.

“청춘은 누가 부추기지 않아도 제 가슴 안에서 스스로 모반을 꿈꾼다.”

“젊음, 그것은 빛이 없어도 스스로 반짝이는 보석에 다름없다.”

가장 빛나는 생의 한때, 다시는 되돌릴 수 없기에 아름다운 시절.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청춘을 예찬하는 문장은 고금과 동서양을 불문하고 어디에나 가득하다. 청춘이 아름다운 것은 그 단어의 배후에 ‘꿈’과 ‘모험’이 있기 때문이다. 도전과 모험, 새로운 시도와 시행착오가 없는 청춘이란 ‘앙꼬 없는 찐빵’이다. 안정적인 일상과 충분히 예측 가능한 미래를 은유하는 ‘안전한 주식’은 언제나 모반을 꿈꾸는 청춘과 어울리는 단어가 될 수 없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스스로 반짝이는 보석이 되기 위해 새로운 길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것. 이게 바로 ‘불안전한 주식’이고 젊은이는 그 주식에 투자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태국 카오산 로드와 윤동주



사랑스런 추억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조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운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주어,



봄은 다 가고…

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 태국 ‘여행자의 거리’에서 만난 청년들



동남아시아 여행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카오산 로드’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태국의 수도 방콕에 자리한 ‘여행자들의 거리’ 카오산 로드. 한 해 수백만 명의 젊은 배낭여행자들이 이곳에 모여 정보를 나누고, 친구를 만들며, 스스로의 빛나는 청춘을 확인한다. 20대 초중반 청년들의 환호와 웃음소리가 가득한 공간. 지난해 여름 카오산 로드를 찾았다. 다섯 번째 방문이었다.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엔 여행자가 정말 많다. 자정을 넘긴 시간임에도 거리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앞서 언급한 ‘불안정한 주식’에 투자한 청춘들이 절대다수였다.

영국에서 왔다는 친절한 여대생들은 즐거움에 겨워 낯선 사람의 사진기를 바라보며 거침없이 웃어보였고, 흥겨운 댄스뮤직이 흘러나오는 카페 앞에선 신나는 즉석 춤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밤의 거리에서 만난 청년 넷은 캐나다와 독일에서 왔다고 했는데, 그날 처음 본 사이임에도 이미 ‘절친’이 돼있었다. 그들의 밝은 표정과 넘치는 기운이 부러웠다. 윤동주(1917~1945)가 쓴 시 ‘사랑스런 추억’의 마지막 구절이 절로 떠올랐다.



▲ 고통 속에서도 희망과 꿈을 잃지 않아야 청춘



많은 한국인들이 아픔과 아름다움으로 기억하는 시인 윤동주는 ‘청춘을 살다가’ 스물여덟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보낸 젊은 날은 일제강점기와 겹쳐 있었고, 분명 행복하지만은 않았을 터.

투명하고 뜨거운 영혼을 지낸 채 짧게 지상에 머물다 간 윤동주는 자신 앞에 닥쳐온 수난과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어둡고 습하며 빈곤한 생활 속에서도 삶과 철학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았던 청년 시인은 자신과 더불어 나라를 끌어안고자 했다. 주위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애정 또한 버리지 않고 살았다. 그러한 삶의 태도는 그가 남긴 작품들 속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사랑스런 추억’ 속에선 눈물과 웃음, 희망과 절망이 동시에 느껴진다. 고뇌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사람의 그림자가 읽힌다.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있는 서글픈 상황임에도 눈부신 햇빛 속을 날아가는 비둘기를 바라보며, 미래를 은유하는 기차를 기다리는 ‘청년 윤동주’.

그렇기에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버리지만’ 시인은 이를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정거장 가까운 언덕에서’ 새롭게 떠오를 내일의 태양을 기다리며 이렇게 조용히 노래할 뿐.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 다시 사랑과 여행이란 ‘젊음의 단어’를 찾아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유럽과 북미의 젊은이들도 청춘시절의 윤동주와 다를 바 없지 않을까?

걱정 하나 없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처럼 낯선 도시의 여행자가 돼 밤새 떠들고 마시지만, 그들의 삶 속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있을 게 분명하다. 인간 모두는 저마다의 고민과 아픔 하나씩은 가지고 산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유럽 전체를 휩쓸고 있는 낮은 성장률과 높은 실업률은 청년들을 낭떠러지로 몰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곳 청년들 또한 도전과 모험보다는 안정과 안락을 지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게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어둠의 터널’을 제 힘으로 빠져나와 밝은 빛과 만나려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청년들 또한 많다.

또래들 다수가 안정된 직장과 편안한 삶에 매달릴 때 자신은 ‘불안전한 주식’에 과감히 투자한 용기 있는 이들을 만난 방콕 카오산 로드.

그들이 청춘을 걸어 투자한 것은 다름 아닌 거침없는 모험과 때론 무모해 보일 수 있는 꿈이었다. 여행 또한 모험과 꿈의 일부인 것이 분명하다.

아래는 기자가 ‘꿈’과 ‘모험’이라는 불안전한 주식에 투자했던 청춘을 기억하며 쓴 졸시다. 우리들 젊은 시절엔 사랑을 향한 에너지 또한 뜨겁고 선명했다.

보잘것없는 문장이지만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번민하는 오늘날의 청춘들에게 작은 위로나마 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진심을 다해 세상 ‘모든 청춘들’을 응원한다.



동백을 보며



구차히 살아온 내게도

우리라는 단어 유효할 때 있으니

손톱 끝마다 멍울지는 그리움

비 내리지 않아도

스스로 목을 꺾어온 세월

주름 잡힌 어머니의 눈가에 피는 꽃



신도 시기할 순홍(純紅)의 정염으로

좋다. 지루했던 겨울 서성거림의

종지부를 찍고

순결한 걸음으로 오라

여윈 가슴 모두 벌써 울컥이고 있다



붉게 맺혀 떨어지는 선혈의 기억들

이미 지쳐버렸을지 모를

나를 기다리는

쉬이 꺾어지는 모가지로

참지 못할 그리움 견뎌내는

스무 살

피 흘리는 사랑이여.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사진제공/구창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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