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콜로세움 어떤 싸움도 축제가 될 수 없다한편의 시 하나의 풍경
로마와 시인 이성복
홍성식기자  |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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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8.11.01   게재일 2018.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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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의 유명 관광지인 콜로세움은 피로 점철된 제국의 비극적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 도착한 것은 뜨거운 햇살이 거리와 고딕의 건물을 태우는 한여름이었다.

알바니아에서 배를 타고 아드리아해(海)를 건너 ‘바리(Bari)’라는 이탈리아 소도시를 거쳐 나폴리에서 나흘을 묵었다. 그 기간 동안 “지구 위에서 가장 근사한 풍경”이라 이탈리아인들이 자랑하는 포지타노(Positano)와 아말피(Amalfi)를 다녀왔다.

절벽 위에 만들어진 고풍스런 레스토랑에서 눈이 부시도록 멋진 바다를 내려다보며 아말피 특산 레몬차를 마시고, 담백하고 맛깔스런 본토 피자를 점심으로 먹었지만 기분은 우울했다. 8개월을 넘어서고 있던 긴 여행이 건강에 이상을 가져왔다.

한쪽 눈의 시력이 급속하게 나빠졌고, 심지어 녹색과 파란색이 잘 구별되지 않았다. 찾아간 나폴리 병원에선 “스트레스와 누적된 피로가 이유인 것 같다”는 애매한 진단을 내놓았다. 기자도 이탈리아 의사도 영어가 서툴렀다.

말이 통하는 한국의 안과에 가서 정확한 원인과 치료법을 알고 싶었다. 여행을 지속할 것인지, 귀국할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 트레비 분수 주면을 가득 메운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  
▲ 트레비 분수 주변을 가득 메운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

▲ 이탈리아 거리에서 ‘시인 이성복’을 떠올리다

나폴리에서 기차를 타고 로마로 가서는 가장 먼저 저렴한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수소문했다.

‘몇 군데의 여행사와 항공권 발매 대리점을 돌아보고 숙소로 가는 길. 눈앞에 거대한 건물이 나타났다. 콜로세움(Colosseum)이었다.

책에서만 보던 걸 실물로 처음 대하는 날이었지만 정상이 아닌 컨디션 탓인지 가슴을 치는 감흥 따위는 없었다. 그저 고교 시절 읽었던 이성복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에 수록된 한 편의 시가 떠올랐을 뿐.

어떤 싸움의 기록(記錄)



그는 아버지의 다리를 잡고 개새끼 건방진 자식 하며

비틀거리며 아버지의 샤쓰를 찢어발기고 아버지는 주먹을

휘둘러 그의 얼굴을 내리쳤지만 나는 보고만 있었다

그는 또 눈알을 부라리며 이 OO놈아 비겁한 놈아 하며

아버지의 팔을 꺾었고 아버지는 겨우 그의 모가지를

문 밖으로 밀쳐냈다 나는 보고만 있었다 그는 신발 신은 채

마루로 다시 기어올라 술병을 치켜들고 아버지를

내리찍으려 할 때 어머니와 큰누나와 작은누나의 비명,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땀 냄새와 술 냄새를 맡으며

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소리 질렀다 죽여버릴 테야

법(法)도 모르는 놈 나는 개처럼 울부짖었다 죽여버릴 테야

별은 안 보이고 갸웃이 열린 문틈으로 사람들의 얼굴이

라일락꽃처럼 반짝였다 나는 또 한 번 소리 질렀다

이 동네는 법도 없는 동네냐 법도 없어 법도 그러나

나의 팔은 죄 짓기 싫어 가볍게 떨었다 근처 시장에서

바람이 비린내를 몰아왔다 문 열어 두어라 되돌아올

때까지 톡, 톡 물 듣는 소리를 지우며 아버지는 말했다.



이성복은 “아픔의 개인사를 우회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세상 저변에 상존하는 고통과 눈물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시인”으로 평가된다.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학교 불문과에서 공부했다. 서울 몇몇 대학에서 여러 차례 상경을 요청했지만, 그는 대구의 한 대학 강단을 떠나지 않았다.

‘어떤 싸움의 기록’은 동서양 철학을 작품 속에 탁월하게 녹여내는 중진으로 진화한 이성복이 젊은 모더니스트였을 때 쓴 시다.

이 작품에서 상소리를 내뱉으며 아버지와 다투는 이가 빚쟁이인지, 앙심을 품은 원수인지, 혹은 광기에 휩싸인 혈육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시인은 ‘싸움’이라는 단어가 가진 본질과 싸움의 민낯과 대면한 ‘인간’의 막막함에 문학적 촉수를 밀착하고 있다. 이를 통해 삶과 세계의 비의(秘義)를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 화산 폭발로 사라져버린 도시 폼페이도 슬픔의 역사가 새겨진 공간이다.  
▲ 화산 폭발로 사라져버린 도시 폼페이도 슬픔의 역사가 새겨진 공간이다.

▲ 로마 정치가들이 펼친 고대(古代)의 ‘3S 정책’

콜로세움은 ‘싸움의 공간’이었다. 그래서였다. 로마의 거리에 서서 기자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세상엔 축제가 되는 싸움도 존재할 수 있을까?”

플라비우스 원형경기장(Amphitheatrum Flavium)이 정식 명칭인 콜로세움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해 티투스 황제 때 완성됐다.

직경이 180m에 달하고 둘레가 530m에 가깝다. 바깥에 세워진 벽의 높이도 50m에 육박한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콜로세움은 ‘커다란 투기장’과 다름없었다.

여기선 목숨을 건 검투사들의 시합이 열렸고, 사자와 호랑이, 곰과 하마, 코뿔소와 코끼리 등의 동물을 사형수와 싸움 붙였다.

기독교가 박해받던 시절엔 기독교도들을 집단적으로 고문하고 학살한 공간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대다수 로마 정치가들은 우매한 대중이 세상사를 비판적으로 자각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 콜로세움은 그런 정치가들의 욕망과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보는 게 역사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무료로 입장해 빵과 포도주를 제공받은 로마의 대중들은 죽고 죽이는 ‘사람 대 사람’ ‘동물 대 동물’ ‘사람 대 동물’의 선혈 낭자한 싸움을 보며 콜로세움을 함성으로 채웠다.

어떤 변명을 가져다붙여도 결국 콜로세움은 ‘처참한 싸움의 공간’임을 부정할 수 없다.

콜로세움을 만든 로마의 지배계급은 스크린(Screen), 스포츠(Sports), 섹스(Sex)를 통해 사람들의 정치적 관심과 변혁의 욕구를 차단하는 ‘3S 정책’을 일찍 실천(?)한 선구자였던 것일까?

앞서 “축제가 되는 싸움도 존재할까”라는 자문에 대한 자답(自答)을 내놓을 때가 됐다. “그렇지 않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여러분들은 어떤가?
 

  ▲ 푸른 바다가 매혹하는 이탈리아의 항구 도시 나폴리.  
▲ 푸른 바다가 매혹하는 이탈리아의 항구 도시 나폴리.

▲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지 않은 이유는?



콜로세움을 돌아본 다음 날은 로마를 찾은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가게 된다는 스페인 광장과 트레비 분수를 찾았다.

오드리 헵번(1929~1993)이 출연한 영화 ‘로마의 휴일’에 등장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린 스페인 광장은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갖가지 꽃으로 장식된 계단에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는 여행자들이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

“뒤돌아서서 동전을 던지면 로마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이야기로 유명한 트레비 분수 인근도 마찬가지였다. 그곳 역시 구름처럼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높이 26m, 너비 20m의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이 분수는 웅장함과 미적 완성도 두 가지 면에서 주목받는다. 새하얀 대리석이 여름날 태양을 받아 보는 이의 눈을 부시게 했다.

교황 클레멘스 12세가 준비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사람은 로마의 건축가 니콜라 살비. 트레비 분수가 완성된 때는 1762년이다.

분수 가운데 조각된 바다의 신(神) 넵투누스(Neptunus)와 양 옆에 선 여신의 생동감이 수 세기의 세월을 뛰어넘어 분수를 찾는 이들을 매혹하고 있었다. 오후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자 ‘가톨릭 문화의 성지’로 불리는 바티칸(Vatican City)도 찾았다.

그날 왜 기자는 ‘빛나는 로마의 영광’이 아닌 ‘콜로세움에 흥건했던 피’를 먼저 떠올렸을까.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온 밤엔 낡은 식탁에 앉아 아래와 같은 형편없는 시를 끼적였다.



테베레강(江), 늑대와 만나다



캄피톨리오 광장과 스페인 계단을 채운 이방인들

베니토 무솔리니와 오드리 헵번

이탈리아를 암흑시대로 몰아간 퇴행의 파시즘

자전거를 탄 하얀 여배우의 입술에 묻은 젤라또

그러나, 무슨 상관

여행이 아닌 관광을 온 이들은

심각한 생각을 멈추고 바티칸의 비둘기들과 논다



이민족 피와 눈물 위에 건설된 로마

뻗어나가길 멈추지 않던 영토는

인간 욕망의 한계없음을 비명 속에 증명했고

불타는 도시를 보며 시를 읊는 미치광이를 만들었다

콘스탄티노플이냐? 이스탄불이냐?

두 제국 왕의 싸움에 문맹의 노예들만

칼날 앞에 쓰러진 풀잎이 되고



광포한 노인처럼 허물어진 콜로세움

검투사 잘린 팔다리에 흐르던 피 같은

붉디붉은 석양이 떨어진다

모두가 아픈데 아무도 상처를 찾지 못했다

15유로 싸구려 게스트하우스

삐걱거리는 낡은 침대에 누워

테베레강을 배회하는 늑대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고 싶지 않았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돌아온 지 한참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모르겠다. 왜 다른 대부분의 관광객들처럼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지 않았는지. 로마에 다시 가고 싶지 않아서? 그게 아니면 슬픈 시(詩)를 불러온 ‘싸움의 역사’가 싫어서?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사진제공/구창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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