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고 아쉽고 아쉽지만 잘 가.. 청춘
아쉽고 아쉽고 아쉽지만 잘 가.. 청춘
  • 홍성식기자
  • 등록일 2019.11.28 20:10
  • 게재일 2019.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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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와 안도현 시인
파리… 저물 무렵부터 새벽까지

센강 물결 소리만이 정적을 깨우는 고요한 파리의 새벽.

마주 앉은 상대방의 왼쪽 어깨 너머로 에펠탑 꼭대기가 보이는 프랑스 파리의 소박한 야외 카페. 가게 안 스피커에선 니콜로 파가니니(Niccolo Paganini)의 ‘라 캄파넬라(La Campanella)’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클래식에 관해 아는 바 적지만 저건 분명 여성 바이올린 연주자다. 정돈되고 세밀한 현악기 소리가 해질 무렵 도시의 공기를 감미롭게 만들어줬다.

천재성과 광기 사이에서 일생을 어지럽게 살아야했던 절름발이 화가 툴루즈 로트렉(Toulouse Lautrec·1864-1901)이 좋아했을 법한 포도주를 주문했다. 낯선 도시의 밤이 서서히 다가와 목덜미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지인에게 소개 받아 그날 처음 만난 청년의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북아프리카 모로코에서 프랑스로 이민 왔다고 했다. 고생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들과 딸, 손자를 잘 키워냈다. 한국 대학에서 1년간 교환학생으로 있었다는 청년은 프랑스어는 물론 영어와 한국어까지 능숙했다. 세칭 ‘글로벌시대에 어울리는 20대’였다.

 

저물 무렵 -안도현



저물 무렵 그 애와 나는 강둑에 앉아서

강물이 사라지는 쪽 하늘 한 귀퉁이를 적시는

노을을 자주 바라보곤 하였습니다

둘 다 말도 없이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 애와 나는 저무는 세상의 한쪽을

우리가 모두 차지한 듯 싶었습니다

얼마나 아늑하고 평화로운 날들이었는지요

오래오래 그렇게 앉아 있다가 보면

양쪽 볼이 까닭도 없이 화끈 달아오를 때도 있었는데

그것이 처음에는 붉은 노을 때문인 줄로 알았습니다

흘러가서는 되돌아오지 않는 물소리가

그 애와 내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이는 동안

그 애는 날이 갈수록 부쩍 말수가 줄어드는 것이었고

나는 손 한 번 잡아주지 못하는 자신이 안타까웠습니다

다만 손가락으로 먼 산의 어깨를 짚어가며

강물이 적시고 갈 그 고장의 이름을 알려주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자랑이었습니다

강물이 끝나는 곳에 한없이 펼쳐져 있을

여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큰 바다를

그 애와 내가 건너야 할 다리 같은 것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습니다

날마다 어둠도 빨리 왔습니다

그 애와 같이 살 수 있는 집이 있다면 하고 생각하며

마을로 돌아오는 길은 늘 어찌나 쓸쓸하고 서럽던지

가시에 찔린 듯 가슴이 따끔거리고 아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애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술을 포개었던 날이 있었습니다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애의 여린 숨소리를


열 몇 살 열 몇 살, 내 나이를 내가 알고 있는 산수 공식을

아아 모두 삼켜 버릴 것 같은 노을을 보았습니다

저물 무렵 그 애와 나는 강둑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가 세상을 물들이던 어린 노을인 줄을

지금 생각하면 아주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프랑스 파리 에펠탑 주변의 저물 무렵 풍경.
프랑스 파리 에펠탑 주변의 저물 무렵 풍경.


▲석양이 질 때면 떠오르는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있다



프랑스어도 영어도 서툰 기자에게 한국말을 곧잘 하는 청년은 자연스럽게 친구가 됐다. 무슬림이라 술을 한 잔도 마시지 않았지만, 한국 유학의 경험 때문인지 주석(酒席)의 분위기를 맞출 줄 알았다.

나이에 관계없이 사내 둘이 만났으니 ‘여자’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여자 이야기는 곧 ‘첫사랑’에 관한 기억으로 이어졌다. 스물다섯 살 어린 ‘파리 친구’는 노래를 잘 부른다는 연인 이야기를 길게 했다.

그 아기자기한 스토리를 고개 끄덕여 들어주며 떠올린 시가 있었다. 청춘을 아프게 반추하는 안도현의 절창 ‘저물 무렵’이다.



▲빛나는 ‘연애시대’는 중년들에게도 있었으니…



지금이야 신세대들로부터 ‘고루한 아저씨’ 취급이나 받고 살지만, 1980~1990년대 청춘을 보낸 중년에게도 왜 찬란한 ‘연애’가 없었겠는가. 흰 머리카락이 날마다 늘어가는 기자와 친구들도 마찬가지.

스마트폰도 멀티방도 없던 시절의 연애는 단순하고 유치했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언제 수업을 마칠 지도 모르는 ‘고등학교 3학년 오빠’를 교문 앞 골목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감청색 교복 치마의 열일곱 여고생이 적지 않았고, 여자 친구의 생일선물로 한 달 용돈을 모두 털어 주머니 위에 말(馬)이 그려진 청바지를 사는 소년도 흔했다.

20세기 말 ‘연애시대’는 가난하고 순박했다. 그랬기에 애처롭지만 아름다울 수 있었다.

시인 안도현은 1980년대에 청춘을 보낸 사람. 앞서 인용한 시에서 웃음보다는 눈물, 환희보다는 우울의 향기가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 아닐지.

아무리 찾아봐도 데이트 할 장소가 없어 해가 지는 강둑에 나란히 앉아 불과 몇 십 km 떨어진 이웃 도시의 이야기나 들려주고, 듣는 것 외엔 별반 할 게 없었던 어린 연인들.

짧디짧은 한 번의 입맞춤이 일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는 연애. 그렇다고 이걸 ‘21세기식 사랑’보다 아래의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지난 세기에 10대와 20대를 보낸 이들에게 저물 무렵의 어스름과 곧 다가올 농밀한 어둠은 ‘우리가 세상을 물들이는 어린 노을’임을 깨닫게 해줬다. 그 힘으로 그들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중년들에게 과거는 모두 ‘아늑하고 평화로운 날들’로 기억될 수 있는 것.

그나저나 안도현의 시를 중년이 돼 다시 읽으니 궁금해진다. 요즘 젊은 친구들도 첫 키스를 아래와 같이 수줍게 기억할까?

“어느 날 그 애와 나는/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술을 포개었던 날이 있었습니다/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애의 여린 숨소리를/열 몇 살 열 몇 살, 내 나이를 내가 알고 있는 산수 공식을/아아 모두 삼켜 버릴 것 같은 노을을 보았습니다…”.

파리에서 만나 단번에 친구가 된 프랑스 청년(오른쪽).
파리에서 만나 단번에 친구가 된 프랑스 청년(오른쪽).


▲옛일을 떠올리며 새벽까지 파리의 밤거리를 걷다가



이민자의 손자인 프랑스 청년으로 인해 유쾌했던 저녁 자리가 끝이 났다. 악수를 나누고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

그러고 나니 다시 혼자가 됐다.

해가 지자마자 일찍 숙소로 돌아가 씻고 잠드는 건 아이들에게나 어울릴 일이지 오십에 가까운 중년사내의 여행 스타일은 아니다.

파리의 어둠과 서유럽의 밤을 좀 더 살펴보기로 하고 정한 곳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포항 영일대해수욕장 해변을 산책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기분으로.

에펠탑 밑 벤치엔 한 세기 전 그랬듯 그날도 밀어(蜜語)를 속삭이는 연인들이 가득했고, 불 밝힌 골목의 고풍스런 극장에선 화려한 쇼가 펼쳐진다는 걸 홍보하고 있었다.

더 한적하고, 더 어둡고, 더 낯선 장소로 가고 싶었다. ‘예술과 낭만의 절정’이라는 파리의 밤, 그 반대편의 맨살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 싶었다. 취기 탓만은 아니었다.

이윽고 한참을 걸어 도착한 센강의 지류. 오렌지빛 가로등이 드문드문 자리를 지켰으나 주위는 인적이 드물고 캄캄했다. 마침내 ‘거대 도시’ 파리에서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잠깐 사이에 눈이 어둠에 익숙해졌다. 그때였다. 강 건너편 젊은 남녀 한 쌍이 눈에 들어온 것은. 일부러 보려한 건 아니지만 둘의 입맞춤은 길고도 뜨거웠다.

순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내게는 저런 청춘시절이 다시 오지 않겠지’란 생각이 들었고, 무어라 말할 수 없을 만큼 슬퍼졌다.

그러나 그 슬픔과는 별개로 센강의 물소리는 신지아의 바이올린 연주처럼 청아하고 아름다웠다. 아이러니한 파리의 새벽녘이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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