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그림 속에 빠진 듯… 맑은 호수 위를 거닐 듯눈부신 황홀함, 마케도니아
파란 그림 속에 빠진 듯… 맑은 호수 위를 거닐 듯눈부신 황홀함, 마케도니아
  • 홍성식기자
  • 등록일 2019.04.25 19:31
  • 게재일 2019.0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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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 하나의 풍경
마케도니아와 박철 시인
가끔 투명한 물빛이 여행자를 매혹하는 오흐리드에서 보낸 평화로운 일상이 그립다.
가끔 투명한 물빛이 여행자를 매혹하는 오흐리드에서 보낸 평화로운 일상이 그립다.

“사람들은 일상이 가장 큰 행복이란 걸 모르고 산다”고 말한 게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였던가? 아니면 발레리(Paul Valery)인가?

사실 ‘여행’은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길고 먼 여행을 떠나본 이들은 알게 된다. 넓은 범위에서 보자면 결국 여행도 ‘일상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한국인들에겐 이름도 낯선 ‘마케도니아’라는 나라의 조그만 마을 오흐리드(Ohrid)에서 한 달쯤 머문 적이 있다. 수백만 년 전 생성된 맑고 투명한 호수가 여행자의 심장을 설레게 하는.

느긋한 마음으로 오래 전에 축조된 정교회성당 주변을 거닐며 발칸반도의 비극적인 역사를 떠올렸고,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오흐리드 호수를 바라보며 요즘 말로 ‘멍때리기’를 했다. 숙소 주변을 떠돌아다니던 귀여운 고양이와 한나절 놀아준 기억도 난다.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 박철

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 4만원을 들고
영진설비 다녀오라는 아내의 심부름으로
두 번이나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삼거리를 지나는데 굵은 비가 내려
럭키슈퍼 앞에 섰다가 후두둑 비를 피하다가
그대로 앉아 병맥주를 마셨다
멀리 쑥국 쑥국 쑥국새처럼 비는 그치지 않고
나는 벌컥벌컥 술을 마셨다
다시 한 번 자전거를 타고 영진설비에 가다가
화원 앞을 지나다가 문 밖 동그마니 홀로 섰는
자스민 한 그루를 샀다
네 마음에 심은 향기 나는 나무 한 그루

마침내 영진설비 아저씨가 찾아오고
거친 몇 마디가 아내 앞에 쏟아지고
아내는 돌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나는 웃었고 아내의 손을 잡고 섰는
아이의 고운 눈썹을 보았다

어느 한쪽,
아직 뚫지 못한 그 무엇이 있기에
오늘도 숲속 깊은 곳에서 쑥국새는 울고 비는 내리고
홀로 향기 잃은 나무 한 그루 문 밖에 섰나
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아이는 숙제를 하고
내겐 아직 멀고 먼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 한국이나 유럽이나 ‘사람살이’의 풍경은 비슷하고…

익숙한 한국에서의 일상이 아닌 낯선 공간에서 보내는 일상이 지속되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란 세계 어느 도시나 유사하다는 걸 깨달았다.

오흐리드에서 만난 젊은 친구들도 포항의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미래와 연애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고, 그 문제들 때문에 울고 웃었다.

시장에서 과일과 채소를 파는 상인들의 부지런함 역시 한국과 마케도니아가 다르지 않았다. 거리에 펼쳐진 좌판 주위 왁자지껄한 소음도 판박이였다.

한국의 육개장과 흡사한 맛을 내는 스튜(Stew)가 맛있었던 식당의 주인 할머니는 50년을 함께 살아온 할아버지의 지나친 음주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 고민 역시 우리네 옆집 노부부가 다투는 이유와 똑같았다.

그랬다. 프랑스 시인이 간파한 것처럼 일상은 여행 이상의 웃음과 행복감을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이의 일상이 때마다 행복할 수는 없는 법. 가끔은 서글픔과 눈물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기도 한다.

따스한 햇볕 아래서 오흐리드의 평화로운 풍경 속을 걷던 어느 날. 갑작스레 기억 속에서 소환된 시 한 편이 있었다. 문학의 촉수를 일상으로 뻗어 독자들의 가슴을 울렁이게 한 박철(59) 시인의 절창(絕唱)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였다.


▲ 연애편지를 잘 쓰던 병약한 소년, 시인이 되다

시를 쓴 박철과는 가끔 만나는 사이다. 그래서였다.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몇 해 전 시끌벅적한 술자리에서 들을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병약했던 한 소년. 공부도 운동도 시원찮았다. 하지만 그의 낭랑하고 물기 젖은 문장은 또래 소녀들을 노란 우산 쓰고 논둑길에서 서성이게 만들었다. 이에 대해 박철은 이렇게 고백했던가.

“나도 한때 사랑을 했다. 그러나 그 사랑의 절반은 연민이었음을 안다.”

소년은 나이를 먹어가며 연애편지가 아닌 시를 쓰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렀다. 변두리 극장에서 여고생의 손목을 수줍게 잡던, 그 떨리는 손으로 쓴 몇 편의 시가 문예지 ‘창작과비평’에 실린다. 스물여덟이었다.

그 나이가 되도록 세상과 화해하지 못하고, 겉돌기만 하던 박철. 절망과 술로 탕진한 청춘이 헛되지 않았음을 아버지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아버지, 제가 시인이 됐습니다.”

이 땅의 아버지들이란 아들에게 친절한 경우가 별로 없다. 박철의 부친은 기쁨을 숨긴 채 속에 없는 타박을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믿으라고? 사실이면 ‘시인 증명서’를 가져와 봐라.” 알다시피 ‘시인 증명서’라는 문서는 세상에 없다.

청년시인 박철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불혹(不惑)을 넘겼다. 돈 버는 능력에 관계없이 남편을 아끼는 착한 아내와 눈매가 고운 두 딸을 얻었다. 가난이 불행의 동의어는 아니라며 일부러 소리 높여 웃었다.

▲ ‘눈물’과 ‘낭만’이 뒤섞인 인간의 일상

어느 날 시인의 집 하수구가 막혔다. 세상엔 못 하나 박지 못하는 사내들도 많다. ‘영진설비’ 아저씨가 수리를 나왔다. 출장비와 노임은 도합 4만 원. 박철의 아내가 말했다. “며칠 안에 인편으로 보내드릴게요.”

꼬깃꼬깃 4만 원을 챙겨 넣고 시인은 아내의 심부름을 나섰다. 삐걱거리는 자전거 위로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졌다. ‘목이나 축이고, 잠시 쉬었다 가지 뭐.’

럭키슈퍼 평상. 쑥국새가 우는 환청 속에 노임은 내처 마셔버린 맥주 값이 되고. 시인의 첫 번째 영진설비 행은 무산된다.

그리고 두 번째. ‘이번에는 한눈팔지 말아야지.’ 럭키슈퍼 맥주의 유혹을 뿌리치고, 포장마차 소주 한잔의 손길도 떨쳐내며 시인의 자전거가 달렸다.

그러나 아차! 바로 그때 조그만 화원 앞 쓸쓸히 서있는 자스민 한 그루가 시인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게 뭐람. 짐작처럼 노임은 자스민 화분으로 바뀐다. 다시 영진설비 행은 무산.

참다못한 영진설비 아저씨가 찾아온다. “대체 난 뭘 먹고 살라는 겁니까?”

아내가 슬픈 눈으로 시인을 돌아본다. 박철은 말없이 웃으며 엄마의 손을 꼭 쥔 채 ‘시인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딸의 고운 눈썹만을 쳐다본다.

끝끝내 시인은 “쑥국새가 울었기 때문이야” 혹은, “향기 잃은 나무 한 그루가 쓸쓸해 보여서 그랬어”라는 변명을 아내와 딸에게 하지 못했다.

박철의 문단 선배인 신경림(83)은 눈물겹지만 낭만 가득한 시인의 일상이 담긴 이 작품을 읽고는 “밀린 노임을 갚으러 가다가 그 돈으로 자스민을 살 수 있는 박철은 꿈꾸는 사람”이라며 어깨를 다독였다고 한다.

사실 시인만이 아니다. 쉽지 않겠지만, 우리 모두는 ‘일상’에서 ‘꿈’을 발견하며 살고 싶다. 한숨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내고, 절망의 순간에도 좌절하지 않고 빛나는 내일을 설계하는 인간으로.

멀고 먼 동유럽 마케도니아 오흐리드,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곳’. 두 도시 사람들 모두의 일상이 불행보다는 행복에 가까웠으면 좋겠다는 꿈을 가져본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사진제공/류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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