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시 하나의 풍경
태국 바다와 최영미 시인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인간과 세상은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라는 철학적 물음이 떠오른다.

짙푸른 물빛과 투명하게 빛나는 햇살. 태국의 바다는 문학으로 세상의 중심이 되고자했던 청년들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그들 사이에선 ‘전설’로 떠도는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아르튀르 랭보(Arthur Rimbaud·1854~1891). 그가 만약 살아 푸켓과 파타야의 파도를 보았다면 어떤 절창을 만들어냈을까?

일 년 내내 더위만 지속되는 남국. 태국에선 가만히 있어도 줄줄 흐르는 땀이 사람을 힘들게 한다. 거기에다 폭염과 잠복한 게릴라처럼 일상을 습격하는 스콜(Squall). 사람을 축축 늘어지게 만드는 눅눅한 습기에 두 손 들고 항복해야 하는 나라.

여행 기간 대부분 하늘은 물에 젖은 담요처럼 내려앉고 바다는 길 잃은 아이처럼 울어댔다. 흩뿌리는 소나기를 보며 방파제에 서서 듣는 파도소리는 흡사 천둥소리처럼 두렵고도 장엄했다. 낯선 나라의 익숙지 않은 날씨처럼 심란해진 마음은 쓸쓸함을 부르고, 그 쓸쓸함은 아주 먼 기억을 느리게 소환했다. 빛나는 태양 아래서의 우울증이라니….

어울리지 않았지만 닥쳐온 진솔한 감정을 떨쳐낼 이유 또한 없었다.

소설가 김훈(71)의 말을 빌리자면 시인이란 “누런 해가 뜨는 곳에서 다시는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을 슬픈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이다.

유럽과 중국 관광객이 하나 둘 빠져나간 황량한 해변, 서늘하고 푸른 바다의 적막감이 마구잡이로 밀려왔다.

그것들과 만났으니 술 한 잔이 간절해질 수밖에. 나무로 만든 계단이 삐걱거리는 항구의 조그만 카페에 홀로 들어섰다. 오징어회나 우럭매운탕처럼 눈에 익은 안주는 없지만, 큼직한 게와 새우를 튀겨 독한 태국산 버번(bourbon) 위스키를 몇 잔이고 들이켰다.
 

속초에서

바다, 일렁거림이 파도라고 배운 일곱 살이 있었다

과거의 풍경들이 솟아올라 하나 둘 섬을 만든다
드문드문 건져 올린 기억으로
가까운 모래밭을 두어 번 공격하다보면
어느새 날 저물어
소문대로 갈매기는 공 없이 어깨춤을 추었다
지루한 비행 끝에 젖은 자리가 마를 만하면
다시 일어나 하얀 거품 쏟으며 그는 떠났다
기다릴 듯 그 밑에 몸져누운 이마여
자고 나면 한 부대씩 구름 몰려오고
귀밑털에 걸린 마지막 파도 소리는
꼭 폭탄 터지는 듯 울렸다

바다, 밀면서 밀리는 게 파도라고 배운 서른두 살이 있었다

더 이상 무너질 것도 없는데 비가 내리고
어디 누우나 비 오는 밤이면 커튼처럼 끌리는 비린내
비릿한 한 움큼조차 쫓아내지 못한 세월을
차례로 무너뜨리며 밤이 깊어가고
처벅처벅 해안선 따라 낯익은 이름들이 빠진다
빨랫줄에 널린 오징어처럼 축 늘어진 치욕
아무리 곱씹어도
이제는 고스란히 떠오르지도 못하는 세월인데
산 오징어의 단추 같은 눈으로 횟집 수족관을 보면
아, 어느새 환하게 불 켜고 꼬리 흔들며 달려드는 죽음이여
네가 내게 기울기 전에 내가 먼저 네게로 기울어가리.

▲ 낯선 해변 술집에서 떠올린 ‘한국의 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달콤한 취기가 밀려왔다. 다시 방파제를 향했다. 철썩대며 밀려오는 파도의 하얀 포말을 깔깔거리며 반기는 얼굴, 푸른 눈동자의 연인들이었다.

5~6살로 돼 보이는 딸을 무등 태워 바닷물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는 젊은 아버지의 환한 웃음도 참으로 보기 좋았다.

가득한 부러움으로 그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다 오래 전 인류학자들의 전언을 떠올렸다. “지구 위 모든 생명은 바다에서 왔다.”

그 바다가 선물하는 새하얀 파도가 무람없이 밀려드는 조용한 이국의 해변.

낯선 바다에서 익숙한 한국의 동해안이 갑작스레 떠오른 건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더불어 시인 최영미(58)의 가슴 아픈 문장으로 채워진 시 한 편이 눈앞으로 흘러가는 걸 봤다. ‘속초에서’다.

▲ 아름다운 세상이란 ‘기댈 사람’이 곁에 있는 것

새하얀 살결을 가진 어린 자식의 어깨를 안아주는 아버지의 듬직한 팔뚝이 없다면, 밀려오는 파도에 새파랗게 질린 입술에 가 닿는 연인의 입맞춤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그 애정과 연민의 힘이 세상을 이어가는 것이 아닐지.

마침내 태국의 바다에서도 까무룩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들었다. 몇몇 여행자들은 어두운 길을 걸어 다시 한 번 방파제로 가거나, 좀 더 농밀한 취기를 위해 또 다른 술집을 찾아 나서고 있었다.

난바다로 불빛을 비춰 길 잃은 배를 항구로 귀환시키는 등대와 느닷없이 찾아온 슬픔과 물기 어린 비애를 안고 산책에 나선 사람들의 앞을 밝혀주는 가로등만이 쓸쓸하게 불을 밝히는 밤.

세상과 인간의 비애를 남들보다 일찍 깨달은 최 시인은 ‘일렁거림이 파도라고 배운 일곱 살’을 서럽게 기억하며 ‘하얀 거품 쏟으며’ 제 곁을 떠나간 것들을 그리워했다.

하지만 최영미의 그리움은 마냥 아래로만 침잠하지 않았다.

‘더 이상 무너질 것도 없는’ 삶이고 세상이지만 희망의 실마리를 놓치지 않는다. 그렇기에 ‘환하게 불 켜고 꼬리 흔들며 달려드는 죽음’ 앞에서도 이렇게 노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네가 내게 기울기 전에 내가 먼저 네게로 기울어가리”라고.

맞다. 제 곁에 기울어가거나, 기댈 사람이 있는 이들은 외롭지 않은 법. 그 따스함이 인간을 무엇보다 큰 힘으로 위로하니까.

▲ 막막한 바다를 항해하는 게 인간의 삶이지만…

태국에서나 우리나라 동해에서나 마찬가지로 우뚝 서 뱃사람들의 길잡이 역살을 하는 등대를 봤다. 제 안에 간직한 안타까운 빛으로 세상의 막막한 어둠을 잠시 잠깐이나마 비추는 등대의 몸부림에 심장이 서늘해졌다.

생명이 없는 등대지만 그것에서 ‘착하고 믿음직한 향기’가 풍겨왔다. 소리 내 말하지 않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세상엔 등대만큼도 선량한 인간이 드물다”는 엄정한 사실을.

바다와 파도를 처음 만난 것처럼 설렘 가득했던 그날. 기자는 ‘환하게 불 밝힌 죽음이 꼬리 흔들며 달려들기’ 전에 나의 아픔보다 타자의 슬픔 속으로 먼저 기울어 가겠다는 결심을 했다.

아래 졸시는 그 결심을 주절주절 표현한 것이다. 아무리 부정해도 우리는 결국 자신의 존재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그저 ‘떠도는 사람’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더더욱 ‘내가 누군지’ 알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바다, 출생의 비밀

범선으로 요하네스버그를 떠나 마다가스카르에 도착한 아버지는 목덜미에 나비를 문신한 인도계 아프리카인. 파타고니아에서 태어나 해변으로 밀려온 혹등고래를 치료해준 엄마는 마드리드 뱃사람과 아르헨티나 원주민의 피가 섞인 붉은 얼굴의 메스티소였다.

바나나를 따서 남태평양 폴리네시아 군도를 오가던 아버지는 초록빛 빙산을 타고 보라보라섬 사촌언니를 찾아온 엄마를 에메랄드빛 산호초가 꺼이꺼이 우는 타히티 북부 갈대숲에서 만났다. 1871년 여름이었다.

엄마는 망고스틴 여섯 개를 건네는 아버지의 흙 묻은 손바닥을 얼굴로 가져가 달콤하게 핥았다. 둘이 몸을 섞은 얕은 바다에선 일만 년에 한 번 꽃을 피운다는 맹그로브 사이로 뜨거운 바람이 웅얼거렸다. 원주민들은 뜨지 않는 달을 기다렸다.

여섯 달 후. 아버지는 이슬람양식으로 만들어진 바닷빛 타일을 실은 목선을 타고 바그다드로 떠났다. 움직이는 섬에 오른 엄마 역시 북서쪽으로 흘러갔다. 외눈박이 숙부가 야자유 일곱 병을 들고 나와 배웅했다. 동아시아 낯선 항구에 도착한 엄마는 백년 후 사내아이를 낳았다. 나는 1971년 부산에서 첫울음을 터트렸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사진제공/구창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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