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지만 또한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우리 인생은 다분히 우연의 연속이기도 하다. 내가 태어난 것도 그렇다. 내가 나 자신을 디자인 해서 태어나게 된 것도 아니고, 내 부모님이 나를 디자인 해서 태어나게 된 것도 아니다. 내가 잉태되는 것도 우연이 아닐 수 없다. 그날 수 없이 많은 정자 중 하나가 성공하여 지금의 내가 생기게 되었다. 내 부모님이 그 날 그 시각에 결합하지 않았으면 나의 존재는 영원히 불가능 했다. 부모님들이 서로 만나게 되고 결혼에 이르는 과정도 생각해 보면 수많은 우연의 요소가 크다. 그러니 내가 잘났다고 자만해도 안 될 것이고, 남만 못하다고 자소해도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결혼은 전혀 남남인 무촌(無寸)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일
교육처럼 중요한 활동도 없다. 건강이 중요하고 따라서 의술이 중요함은 말할 나위 없겠지만 교육이 개인뿐 아니라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중요성은 더욱 지대하다. 육체 건강을 주로 다루는 의술에 비하면 교육은 인간의 정신, 감정, 인생관, 철학관, 인성 등 전인(全人)을 다룬다. 교육 철학자 존 듀이는 “교육은 삶을 위한 준비가 아니고, 삶 자체다”고 말했다. 주로 개인의 복지를 다루는 의술에 비하면 교육은 과거와 현 사회의 산물인 동시에 그 사회의 미래를 움직인다는 면에서 그 영향력의 폭이 넓고 중요성이 막중하다. 넬슨 만델라는 “교육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라고 했다. 인간의 신체는 인종적으로, 시대적으로 보편성을 지니므로 의술의 도입이 가능한, 다분히 기술적인 분야다. 반면 교육은 다
필자가 35년간 미국에서 활동하고 2010년에 한국에 와서 크게 두 번 놀랐다. 필자의 정신세계 시계가 1974년에 멈춰 있었기에, 두 시대의 한국이 선명하게 비교된다. 도착하자 첫 눈에 놀란 것은 물론 눈부신 경제성장과 크게 윤택해진 생활이었다. 행복한 놀람이었다. 한 예로, 40년 전에는 신혼여행을 보통 2~3일 국내 명소, 명산 지역에서 보냈는데, 이제는 7~10일간 해외여행을 가고 있다. 중고등학생 수학여행도 종종 이와 비슷하고, 대학생들 일반인들도 개인 여행을 주로 해외에서 보낸다. 공공시설들도 많이 현대화되었고, 협소한 토지의 장점을 살려 교통 통신 등 인프라도 현대식이고 효율적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물질경제의 변화가 있어왔다. 한국에서 지내면서 필자는 두번째 크게 놀랐다. 이번에
다음 주에 두 가지 축제와 축하가 벌어진다. 한국인들은 자연의 은혜와 피땀 흘린 첫 결실을 조상께 감사하며 바치는 축제 중의 축제인 추석을 보낸다. 세계는 2017년 노벨상을 발표한다. 수십 년 피땀 흘려 이룬 연구 업적들을 축하하는 축하 중의 축하다. 필자는 2010년부터 7년 간 한국에서 역사의 흐름을 바꿀만한 거대한 정책 구호와 관심이 2년마다 급회전한 국가적 구호들의 공통점들과 그 결실들을 생각해본다. 첫째, 한국에서는 주로 정부가 연구 개발 사업을 주도한다. 정부가 주도하는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실전 경험도 계획도 없었던 기업, 학교, 연구 단체들이 자금을 정부에서 받으려고 유행하는 구호에 맞게 꾸민 안을 제출하고 정부에서 돈이 나오면 그제야 소유의식이 결여된 과제를 수행하
지난 칼럼에서 필자가 언급하였듯이 2010년부터 7년 간 한국에서는 역사의 흐름을 바꿀만한 거대한 정책 구호와 관심이 `글로벌`에서 `창조와 혁신`, `혁신과 융합`,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등으로 급회전해왔다. 그러나 약 2년 마다 바뀐 국가적 구호들이 과연 얼마나 알찬 결실을 맺었을까? 오늘은 `글로벌`과 `창조, 혁신`구호를 생각해 본다. 필자가 2010년 한국에 돌아왔을 때,`글로벌`이라는 문구가 만발함을 보았고. 많은 도시들이 `글로벌 시티`를 홍보하고 있었고 많은 정책들과 연구과제들도 `글로벌`을 중심 주제로 삼고 있었다. 그 무렵 수익금의 80%가 해외에서 들어오는 어느 회사 중역이 포항공대에서 특강을 하였다. 특강 중에 그는 “해외에서 효율적으로 일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이제 가을로 들어선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봄과 여름에 땀 흘려 씨 뿌리고 가꿔서 이제 결실을 거둬들이는 시기가 다가온다. 인생도 그러하다. 어려서 씨 뿌리고, 청년시기에 가꾸고, 장년에 결실을 거둬들인다. 노년에는 훈훈한 방에서 반려자와 인생을 회고하고 자식들과 함께 즐기며, 친구들과 세상 앞날을 이야기한다. 인생에 예외는 항상 있으나 `심은대로 거둔다`, `사필귀정`도 그 뜻이리라. 사업이나 프로젝트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우리 경제는 과거에 경제부흥을 위해 흘린 피땀의 결실이고, 지금도 흐르는 땀의 열매이다. 이제 우리는 애써 이룩한 경제발전의 선진 궤도를 한 단계씩 높이고 새로운 인지기술에 기초한 4차 산업혁명 경쟁에 피땀을 흘리는 선구적인 혁신자
어제는 8·15 광복절이었다. 72년 전 한국은 36년간의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났고 해방 후 일본의 강점기간 보다 두 배의 기간이 흘렀다. 우리는 얼마나 진정한 해방과 독립, 그리고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해방은 독립을 의미하고 독립은 자유를 의미한다. 독립과 자유는 동시에 책임을 수반한다. 얼마나 우리 각자가 자율적으로 스스로 책임을 지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얼마나 해방과 독립,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측정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전쟁, 사회, 카스트 관행 등 개인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극한 상황들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기는 하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는가? 물론 각자가 자율적으로 스스로 책임을 지고 행동하도록 허용하는 환경과 문화도 매우 중요하다. 한국에
필자는 미국에서 강의할 때 매 과목마다 미국 학생들에게 한자(漢字)를 하나 가르쳐 준다. 학생들에게 `사람(man)을 어떻게 한자로 쓰는지 가르쳐 주겠다, 이 글자는 쓰기는 간단하면서도 그 의미가 심오하므로 결코 잊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 다음, 사람 인(人)을 칠판에 크게 써 보인다. 학생들에게 왜 한자로 사람을 이처럼 표기하는가 질문하면, 한자를 전혀 모르면서도 미국학생들은 즉시 `사람들은 서로 의지하며 살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한국에서 지난 7년간 가르치면서 같은 질문을 하면 한국 학생들은 물론 그 의미를 잘 알고 있다. 필자는 이전 칼럼에서 우리가 얼마나 자연에 의존해 사는지, 자연으로부터 얼마나 막대한 혜택을 `공짜`로 받고 사는지 기술한 바 있다. 오늘은 우리가 얼마나 서로
한국이 경제적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뤘으나, 행복지수는 OECD 국가들 중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경제적 `성공`이 반드시 행복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알버트 슈바이처가 “성공이 행복의 열쇠가 아니고, 행복이 성공의 열쇠다”고 말했듯 행복지수를 높이는 것이 삶의 질은 물론,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성공`을 촉진시키는 촉매역할도 할 것이다. 필자는 지난 칼럼을 통해 포스텍 박태준 미래전략연구소가 2016년에 발간한 `행복지도 (Happy Map)를 만들었어요`라는 책자를 인용해 우리 자신을 한국을 사랑하는 외국인 관점에서 숙고해 보았다. 36인의 외국인 기고가들은 경제발전의 기적을 이룬 한국이 왜 행복지수는 뒤처져 있는가를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첫째,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행복할 시
2007년 미국 버지니아텍 대학에서 한국 시민권자인 대학생이 32명의 교수와 학생을 총살하고 17명을 중상에 빠지게 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당시 미국 역사상 한 개인이 저지른 최대의 총격 사건이었다. 다음날 내가 있었던 미국 대학에서 유학하던 여학생이 미국인들이 한국인들에게 폭력을 자행할 지 모른다는 공포에 질린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다. 당시 미국에서 30여 년 생활해 온 나는 이런 충격적인 일에 대해 3억 이상의 인구 중 몇몇 개인들이 산발적으로 폭행을 저지를 지 모르나 사회적으로 또는 집단적으로 그런 일은 없으리라고 말해주고 안심시키려 했다. 그래도 그는 불안해 하길래 2001년 이슬람 테러단들이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두 빌딩과 인근 빌딩들을 붕괴시키고 워싱턴의 국방성 건물을 공격하여 약
이제 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된다. 방학 중에 우리 자녀들은 어떻게 시간을 선용할까? 필자는 최근 혁신적 교육, 교육혁신, 창의교육, 영재교육 등에 관해 연구하면서 자녀교육은 자녀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교육`하면 보통 학생교육 또는 자녀교육을 생각하지만 실은 학생교육 이전에 교사교육, 교사교육 이전에 부모교육이 선행돼야 한다. 학생교육은 학교에서 교사들이 맡아주니 교사교육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교사는 무슨 교육에 집중해야 할까? 페스탈로치는 “읽기를 가르치는 학교도 있고 계산을 가르치는 학교도 있다. 그런데 왜 사람을 가르치는 학교는 없는가”라고 통탄하였다. 교사는 가르치는 전문 지식은 물론 스스로 교사로서의 소명감, 인간으로서 인성을 갖추어야 할
지난달에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을 기념하였다. 새 대통령도 선출하였다. 그래서 한국사회가 얼마나 더 좋아질까? 하루 아침에 세상이 달라지고 나 자신이 크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나 개인과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한 중요한 질문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으면 오늘의 시련이 시련이 아닐 것이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으면 오늘의 편안함이 가시방석 같으리라. 다음과 같은 단순하나 중요한 질문들을 던져 본다. 어린이들이 내가 얼마나 위함 받는 지에 관심을 갖는가. 아니면 부모님과 가족들을 위해 어떻게 더욱 애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스승들은 제자들로부터 내가 얼마나 대접받는가에 집중하는가, 아니면 제자들을 위해 어떻게 더욱 애쓸 수 있는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월 생활비가 얼마일까? 필자가 계산해 보겠다. 어렵지 않다. 각자의 한달 생활비는 천문학적 비용이다. 먼저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수물을 생각해보면, 하루에 세 번 먹는 음식이 있다. 한끼만 걸러도 고통스럽다. 그러나 안 먹고도 5주 정도는 생존한다. 더 긴요한 것이 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마시는 물이다. 물을 섭취하지 않고도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5일 정도 생존할 수 있다. 더 급박한 것이 있다. 인간은 공기를 5분만 섭취하지 않아도 생명이 끊어지게 된다. 탄광이 붕괴돼 사람이 나오지 못하면, 먼저 공기 공급이 급선무다. 그 다음이 물 공급이다. 그리고 음식이다. 우리는 공기를 돈 주고 사 마시지는 않는다. 부유한 사람에게도 가난한 사람에게도 모두 공짜다.
오늘은 대통령을 선출하는 중요한 날이다. 나는 새로운 대통령에게 한 가지 꼭 부탁하고 싶다. 미국에서 35년간 생활하고 2010년 한국에 돌아와 보니 그리도 가난했던 한국이 이룬 눈부신 경제발전에 놀라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총 국민생산액이 세계 10위까지 육박했고 일인당 국민생산액은 세계평균의 약 두 배 반으로 올랐으며, 수출입 총 무역액이 국민생산액만큼 왕성해져 세계 10위권에 안착하였고, 중공업과 IT분야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를 제압하며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고 `아시아의 호랑이나라` 중 하나임을 실감케 했다. 1960~70년대와 확연히 다른 세상이 되어 산에는 푸른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산과 산을 긴 터널과 높은 다리로 연결해 하늘을 달리는 듯한 상쾌한 기분에 자랑스
다음달 5월에는 어린이 날, 어버이 날이 있다. 8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몇 주 전에 `어머니 은혜` 동요를 들으며 눈물에 젖어 있었다. 네 아이를 기른 경험이 있기에, 낳고 기르는 부모의 은혜를 어디에도 비할 수 없음을 내 아내와 나는 실감하며 그래서 자녀를 손수 기른 모든 부모들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동요의 2절을 들으며 깊은 묵상에 잠겼다. “넓고 넓은 바다라고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넓은게 또 하나 있지. 사람 되라 이르시는 어머니 은혜, 푸른 바다 그보다도 넓은 것 같애.” “사람 되라”고? 어머니가 사람을 낳았지 짐승을 낳았나? 맞았어. 사람이면 다 사람인가? 사람다운 사람이 사람이지. 그래서 “사람 되라”이르시는구나. 1986년 중학교
나 자신을 거울에 비춰보고, 자신의 모습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종종 발견한다. 녹음된 내 음성을 들어봐도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다. 스포츠팀들이 자신들의 플레이를 녹화해 리뷰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 남의 피드백이 필요한 것도 그 이유이리라. 교육자들도 그들의 가르치는 것을 동영상으로찍어 스스로 리뷰하거나 다른 이들로 하여금 관찰하도록 하고 피드백을 받는 것은 교육의 질을 높이는 필수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 하겠다. 외모만 아니라 내 자신의 내모도 그러하다. 그래서 “자신을 알라”는 동서고금 지혜의 말은 내 자신이 성숙해질수록 더 쉽지 않음을 느끼게 되는가 보다. 독일에서 서양사를 공부하고 연구한 한 교수는 자국의 역사는 자국인이 쓴 기록뿐 아니라 자국에 대한 타국인들의 기록도 참고해
필자는 대학을 마치고 3년의 사회생활 후 1974년에 미국으로 떠나면서 미국의 개인주의 사회보다 동양의 공동주의 사회가 더 낫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개인주의는 `개인의 자유대로 생활하니 무질서하고 무책임하지 않겠나`고 생각했었고 공동주의는 `공동의 이익을 구하니 질서와 책임감이 지배하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살아보니 무질서 가운데 질서가 있음을 발견하게 됐고, 개인의 책임이 동양문화에서 보다 더 강하게 지켜짐을 발견하게 됐다. `왜 그럴까?` 생각하다보니 문득 `그럴 수 밖에 없구나` 무릎을 쳤다. 나의 개인주의를 지키려면, 남의 개인주의도 존중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진정한 개인주의는 서로의 개인을 존중해주는 사회를 형성하게 된다는 역설적인 결과가 신기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