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의수<br /><br />전 포스텍 교수·경제학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경제학

지난 칼럼에서 필자가 언급하였듯이 2010년부터 7년 간 한국에서는 역사의 흐름을 바꿀만한 거대한 정책 구호와 관심이 `글로벌`에서 `창조와 혁신`, `혁신과 융합`,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등으로 급회전해왔다.

그러나 약 2년 마다 바뀐 국가적 구호들이 과연 얼마나 알찬 결실을 맺었을까? 오늘은 `글로벌`과 `창조, 혁신`구호를 생각해 본다.

필자가 2010년 한국에 돌아왔을 때,`글로벌`이라는 문구가 만발함을 보았고. 많은 도시들이 `글로벌 시티`를 홍보하고 있었고 많은 정책들과 연구과제들도 `글로벌`을 중심 주제로 삼고 있었다. 그 무렵 수익금의 80%가 해외에서 들어오는 어느 회사 중역이 포항공대에서 특강을 하였다.

특강 중에 그는 “해외에서 효율적으로 일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느냐?”고 청중에게 물었다. 즉각 청중으로부터 “영어”라고 첫 대답이 나왔다. 그는 “아니다. 영어는 기본이다”고 하면서 잘라버리고 “그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다”라는 대답을 제시했다.

문화란 무엇인가? 사회 성원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고 행하는 생각, 생활, 관습, 제도들이 문화를 이룬다. 남들 다하는 것이 문화이고, 아무 생각 없이도 자동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문화의 힘이다. `글로벌 문화`의 척도를 필자는 `얼마나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거주하려 하고 불법체류자들이 계속 늘어나 골머리를 앓는가`에 두고자 한다.

1년에 100만 명씩 이민자를 받아들이는데도, 1천200만 명의 불법체류자로 고민하는 미국트럼프 정부의 이민 제한정책을 한국인들은 일반적으로 반대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학생들, 전문가들에 대해 높은 반감을 갖고 있다. 한국은 언제쯤 다양한 외국인들이 거주하고 불법거주자들이 계속 늘어나 골머리를 앓는 `행복한 고민`을 하는 나라가 될까?

그런데 2012~2013년 경에 `글로벌`이 `창조`와 `혁신`으로 바뀌어 한국 경제는 `창조경제`로 탈바꿈했다. 2013년 어느 신문 기사를 잊을 수 없다. `창조경제안을 제출하라`했더니 기존안(案)에 `창조`문구만 덧붙여 가져오더란다. `창조`로만 끝나지 않고 `미래`를 더해 `미래 창조`가 범람했다. 인간 활동이 근본적으로 미래를 향한 것이니,`미래 창조`는 모양새를 부리는 군더더기라고 혹평받을 만 하다.

창조란 무엇이고, 혁신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창조와 혁신의 척도로 필자는 스티브 잡스가 2011년 10월에 서거했을 때, 월 스트리트 저널의 기사를 사용하고자 한다.

그 기사는 나무의 비유를 사용하면서, 잡스가 세운 애플회사가 나무의 열매라면, 나뭇가지들은 `사고하고 창조하는 자유`이고, 줄기는 `사유 재산을 보호하는 제도`이며, 뿌리는 `헌정 민주주의(Constitutional Democracy)`라고 규정했다. 이 비유는 애플이라는 열매를 기술의 발전으로 보다 개인의 자유와 헌정의 결실로 묘사한다.

이처럼 과학과 공학은 창조와 혁신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수단이고 도구일 뿐이다.

나아가 창조와 혁신은 단순히 새로운 기계, 기술개발에 그치지 않고, 사회 행위와 문화를 변화시키고 경제적 가치를 더할 때 진정한 결실을 맺는다.

효용성이 높을수록, 비용이 낮을수록 가치가 커진다. 비용은 주로 생산기술에 의해 정해지는 반면, 효용성은 소비자들의 가치의식과 사회경제 행위에 의해 정해진다.

이처럼 창조와 혁신의 꽃과 열매는 개인의 자유와 자주성(autonomy)을 장려하는 사회환경 또는 문화 안에서 번성한다.

어느 교수는 한국 풍토를 충격적이고 실망적으로 내게 묘사했다.

그는 “한국이 개인없는 개인 이기주의 사회”라고 표현했다.

이는 한국 사회의 창의성과 기술적 사회적 혁신을 저해하는 가장 심각한 걸림돌이고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해 필자도 그와 의견을 같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