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의수<br /><br />전 포스텍 교수·경제학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경제학

이제 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된다. 방학 중에 우리 자녀들은 어떻게 시간을 선용할까?

필자는 최근 혁신적 교육, 교육혁신, 창의교육, 영재교육 등에 관해 연구하면서 자녀교육은 자녀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교육`하면 보통 학생교육 또는 자녀교육을 생각하지만 실은 학생교육 이전에 교사교육, 교사교육 이전에 부모교육이 선행돼야 한다.

학생교육은 학교에서 교사들이 맡아주니 교사교육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교사는 무슨 교육에 집중해야 할까? 페스탈로치는 “읽기를 가르치는 학교도 있고 계산을 가르치는 학교도 있다. 그런데 왜 사람을 가르치는 학교는 없는가”라고 통탄하였다.

교사는 가르치는 전문 지식은 물론 스스로 교사로서의 소명감, 인간으로서 인성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최근 교육의 나라라고 호칭되는 핀란드에서는 교사가 되려면 모두 석사 이상의 특별 사범대학 훈련을 받도록 제도화 되어 있다. 사범대학에서는 전문 지식은 물론 인성교육에 집중한다. 교사들과 각 학교에 교육의 자율권을 부여하는 것은 물론이다.

우리도 교사들의 자질과 그들 자신의 사명감을 보다 중요시하고, 그들의 신분을 사회적으로 그리고 학생들 앞에서 보다 소중히 해줘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교사들과 대화해 보니 교육다운 교육을 시행하는데 태산 같은 큰 걸림돌이 가로막고 있다.

장시간 자녀들을 과외시키고 또한 학교에서도 입시 위주의 교육을 요구하는 부모들이 자율적이고 교육다운 교육을 어렵게 한다고 교사들은 하소연한다.

그래서 부모들과 말해보니 자기 자녀들이 장시간 학원과 학교에서 입시 위주의 교육을 위해 비싼 돈 쓰고, 잠과 운동, 사회활동도 제대로 못하는 것을 좋아하는 부모는 없었다.

다만 아직도 학벌과 사회신분이 중요한 사회에서 내 자녀가 남보다 앞서려면 남들 하는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부모들의 하소연이다.

진퇴양난이다. `남들이 입시위주, 과외를 안 시키면, 나도 안 할 수 있다`는 말뿐이지, 앞장서는 부모는 보기 어렵다. 손가락으로 남을 탓하면, 다른 세 손가락은 나를 향하고 있다.

자녀에게 첫 교사는 당연히 부모다. 교육은 아기가 태어나면서 시작되고 평생 지속된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어머니 은혜` 동요는 이처럼 노래한다.

“사람되라 이르시는 어머니 은혜, 푸른 바다 그보다도 넓은 것 같애.”

어버이의 은혜는 물질적 보살핌은 물론 “사람되라”는 가르침에 있다. 사람이면 다 사람인가? 사람다운 사람이 사람이지.

교육 철학의 대가인 존 듀이는 “교육은 인생의 목적을 넘어 인생 자체이다”고 갈파했다.

학생 시절 독일의 권위주의적이고 지식암기 위주의 교육에 항거하다가 쫓겨나기까지 했던 아인슈타인은 “교육은 사실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고력을 훈련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2013년 8월에 발표된 `창조경제를 견인할 창의인재 육성방안`에 이런 문구가 있다.

“학벌·경쟁위주의 교육·채용환경 등으로 창의인재 육성에 한계가 있다.”

태산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 학벌·경쟁위주의 교육·채용환경을 깨기 위해 정부의 교육·고용정책이 수없이 바뀌어 오고 있다.

누가 `학벌·경쟁위주의 교육·채용환경`을 형성하고 있는가? 현 사회의 주축인 30~50대의 부모들이다. 사회를 이끌어 온 60~70대 조부모들이다. 이 기성세대들이 `개인없는 개인 이기주의 사회`의 주역들이다. 창의인재 육성에 한계가 되는 학벌·경쟁위주의 교육·채용환경을 혁신하는데 우리가 앞장서야 한다. 창의인재 육성에 걸림돌을 제거하자. 태산을 넘어가자.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