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한 언어와 유려한 이미지를 구사하며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동화적 상상력으로 개성적인 시세계를 펼쳐온 김성규 시인의 두번째 시집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창비)가 출간됐다. 5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폐허에 다름 아닌 자본주의 사회의 폭력과 삭막한 “세계의 적나라하고 추악한 양상들을 땀내 나는 언어로 기록해나”(조재룡, 해설)가며 부조리한 현실의 이면을 새롭게 인식하는 깊은 사유의 세계를 보여준다.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서정적인 목소리와 그늘진 삶의 비참한 풍경을 예민하게 포착해내는 냉정한 시선이 돋보이는 “처연한 아름다움과 절절한 울림이 있는”(송찬호, 추천사) 시편들이 불행한 삶의 고통 속에서 희망마저 잃고 살아가는 슬픈 존재들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깊은
프랑스와 아프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세 여성의 삶을 교차시키며 내면의 강인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세 여인`(문학동네)은 2009년 공쿠르상 수상작이자 국내 처음으로 소개되는 마리 은디아이의 작품이다. 세네갈계 프랑스 작가 마리 은디아이는 등단 이래 어떤 문학적 범주에도 속하지 않는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왔으며, 클래식하고 섬세한 문체와 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공간, 특히 작품 속에 스며 있는 기묘함으로 프란츠 카프카에 비견되기도 했다. `세 여인`은 세 편의 이야기, 세 개의 소우주 속에 담긴 세 여성의 운명을 그리고 있다. 그들은 모두 아프리카 대륙과 프랑스, 더 정확히 세네갈과 프랑스 사이에서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여성들이다. 오래전 가족들에게 회복될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뼛속까지 이기적인
오늘날 독일문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독일이 낳은 가장 위대하고 대담하고 야심 찬 문학가 (…) 둘도 없는 희곡작가였으며―둘도 없는 산문작가이자 소설가”(토마스 만)로 손꼽히는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Heinrich von Kleist, 1777~1811)의 중단편소설집 `미하엘 콜하스`(창비)가 출간됐다. 이 작품집은 표제작 `미하엘 콜하스`외에 `O. 후작 부인` `칠레의 지진` `싼또도밍고 섬의 약혼` `로까르노의 거지 노파` `주워온 자식` `성 체칠리아 또는 음악의 힘` `결투` 등 클라이스트 중단편 여덟편 전체를 완역해 묶어 냈다. 클라이스트 특유의 문체를 그대로 살리고자 문단 구분, 간접화법과 직접화법 등을 충실히 따라 옮기되, 잘 읽힐 수 있도록 세심하고 정확한 한국어 문장을 구
2012년 최고의 인문서로 꼽힌`피로사회`의 저자 한병철 교수(베를린 예술대학)의 책 `시간의 향기`(문학과지성사)가 번역·출간됐다. `시간의 향기`(2009)는 `피로사회`(2010)의 전작으로 현대사회에서 모든 시간이 노동의 인질이 되었다고 진단한다. 모든 시간은 일의 시간이고, 여가시간도 일의 시간을 준비하는 보조적 의미밖에 지나지 못한다는 것. 왜 나는 늘 시간이 없고 시간에 쫓길까? 왜 시간은 그토록 빨리, 그토록 허망하게 지나가버리는 것일까? 그토록 바쁘게 지냈음에도 어째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을까? 나는 주어진 많은 시간을 요령 있게 활용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낭비하고 있는 것일까? 이 책`시간의 향기`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느끼고 있는 이러한 일상적 의문들에 대한 근본적인
“그 밤에 문득 나는 달에게 우리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짧은 형식의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것이었으면 하는 마음도 함께 일렁거렸다.” `문득`이라 말했지만, 이 이야기들은 작가의 마음 한구석에서 꽃피울 날을 기다렸던 것 같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글, `달이 듣고 함빡 웃을 수 있는 이야기` `달이 듣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이야기`를 엮은 짧은 소설집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문학동네)는 작가 신경숙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경쾌하고 명랑한 작품집이 아닐까 싶다. “패러독스나 농담이 던져주는 명랑함의 소중한 영향력은 나에게도 날이 갈수록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명랑함 없이 무엇에 의지해 끊어질 듯 팽팽하게 긴장된 삶의 순간순간들을 밀어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작가의
`파리를 생각한다` `파리의 장소들`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 등으로 이어지는 저서에서 에세이와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파리와 프로방스의 골목에 숨어 있는 `사색과 영감의 장소`들로 독자들을 이끌었던 사회학자이자 작가 정수복이 신작을 펴냈다. 그가 이번에 걸어들어간 곳은 특정 도시나 마을이 아닌 `책과 독서가들이 있는 시간과 공간`이다. 그에게 독서란 단지 `발`을 움직이지 않을 뿐, 언제나 `지금-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떠나 새로운 풍경과 사람들을 만나는 또다른 의미의 `산책`이었다. 그는 산책할 때마다 늘 가방 속에 책을 넣고 다녔고, 그가 산책하는 곳에는 늘 책과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의 산문집 `책인시공`은 여러 사람들이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다양한
2009년 창비신인시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주하림(27) 시인이 첫 시집 `비벌리힐스의 포르노 배우와 유령들`(창비)을 출간했다. 등단 4년 만에 펴내는 이 시집에서 시인은 생경하고 감각적인 언어와 현란한 이미지가 톡톡 튀어오르는 환상적인 상상력의 세계를 펼쳐보인다.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돋보이는 색다른 시작법은 첫 시집의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주하림이 논리의 세계를 훌쩍 뛰어넘어 꾸려놓은 감각의 세계를 목격하다보면 어느새 시인의 언어에 실려 이국 그 어딘가를 헤매고 있는 독특한 경험을 맛보게 된다. 낯설기에 강렬한 시인의 언어는 논리보다는 감각으로, 기억보다는 인상으로 진하게 스스로를 각인시킨다. “드디어 빛 없는 세계다/나는 눈곱을 붙였다 뗐다 하며
지난해 출간한 장편소설 `레가토`로 제45회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하며 “항쟁세대의 고해성사라고 부를 만한 권여선 소설의 절정이자 한국 문학에서 기억의 윤리학이 성숙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평을 받아안은 권여선이 네번째 소설집 `비자나무 숲`(문학과지성사)을 펴냈다. 2010년에서 2012년에 걸쳐 발표된 중단편을 모은 이 책은 `시간과 기억`에 대한 작가의 천착은 여전하지만 앞선 작품 `레가토`가 `학생운동`의 절정인 한 시기의 기억을 불러낸 것이라면, 이번 소설집은 짧고 긴 인생들 사이에서 쌓고 지워가는 기억과 망각의 깊이를 통해 삶의 심연을 가늠하게 한다. 절대 잊지 못하리라던 기억을 깨우는 잔상들을 하나씩 좇아 힘겹게 불러내지만 그 또한 실제 `사건`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젊은 날 한 시기를
시인 이성복이 `아, 입이 없는 것들` 이후 10년 만에 일곱번째 시집`래여애반다라`(문학과지성사)를 출간했다. 언뜻 낯설기만 한 제목 `래여애반다라(來如哀反多羅)`는 신라 시대 향가 `풍요(風謠, 공덕가(功德歌)`의 한 구절로, 이 여섯 글자 이두는 `오다, 서럽더라`로 풀이된다. 신라 백성들이 불상을 빚기 위해 쉼 없이 흙을 나르면서, 그 공덕으로 세상살이의 고됨과 서러움을 위안하고자 불렀던 이 노래가, 이번 시집의 들머리에 놓인 “뜻 없고 서러운 길 위의 윷말처럼, 비린내 하나 없던 물결”의 맑은 `죽지랑의 못`(`죽지랑을 그리는 노래`)과 맨 끄트머리에 놓인 “어렵고 막막하던 시절” 바라봄만으로 큰 위안이 되었던 한 그루 `기파랑의 나무`(`기파랑을 기리는 노래`)를 각각 입구와 출구로 삼은 “이성복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작가 조경란이 5년 만에 신작 소설집 `일요일의 철학(창비)`을 출간했다. 8편의 단편이 실린 이번 작품집에는 더욱 간결하고 섬세하게 다듬어진 서사와 그 안에 단단하게 응축돼 반짝이는 상징들이 눈길을 붙잡는다. 저마다의 깊은 고독과 상흔을 지닌 채 담담하게 살아내는 하루하루 속에서 조심스레 희망을 발견하려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절실하고 아름답게, 잔잔한 여운으로 다가온다. 올해로 등단 18년차, 그간 작가는 모두 열세권의 책을 펴내며 한 걸음 한 걸음씩 차분히 자신의 길을 걸어왔고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의 대표적인 중견작가로 확고히 자리잡아왔다. 이제 여섯번째 소설집에 이르러 작가는 더욱 간결해진 서사와 함축적인 상징이 두드러지는 여백과 응축의 미학을 선보이며 자
다나베 세이코의 작품 가운데 최고의 사랑을 받은 연애소설 9편을 모은 베스트 컬렉션 `서른 넘어 함박눈`(포레 펴냄)이 출간됐다. 단편소설의 대가로 알려진 다나베 세이코는 200만 부 베스트셀러 `신 겐지이야기`의 저자로 일본에서는 `다나베 겐지`라는 닉네임으로도 불리는 국민작가이며, 특히 간사이 사투리 연애소설로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영화와 함께 큰 사랑을 받은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다. `서른 넘어 함박눈`은 `서른 넘은 여자들`을 테마로 쓴 구첩반상 같은 연애소설집이다. 이 상 위에는 매콤한 맛, 시큼한 맛, 짭조름한 맛, 숙성된 장에서 우러나는 깊은 맛까지 각기 다른 맛을 내는 이야기가 줄줄이 올라 있다. 천연덕스러운 여자와 바람기 많은 남자의
선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선천성 그리움`의 힘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가난한 삶을 노래해온 함민복(52) 시인의 신작 시집`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이 출간됐다. 지난 2005년 10년 만에 네번째 시집 `말랑말랑한 힘`을 펴낸 데 이어 다시 8년 만에 선보이는 다섯번째 시집이다. 요즘 시단의 풍경으로 보자면 꽤나 느린 걸음이지만, “함민복의 상상력은 우리가 기꺼이 공유해야 할 사회적 자본이다”(이문재, 추천사)라는 평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세월의 무게에 값하는 70편의 수작을 담았다. 부드러운 서정의 힘이 한결 돋보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가난한 삶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여유로움이 배어 있는 삶의 철학과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는 “경험에서 이끌어낸 실존론적
사람은 누구나 평생에 한 번쯤은 `그 생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받기 마련이다. 그러나 과거를 돌이키기보다 오직 미래를 창조하는 데 몰두하는 사람은 삶 자체로서만 답할 뿐 이에 대한 답을 흔히 후세의 몫으로 넘기곤 한다. 1966년 서울 청진동 옥탑방 한 칸에서 민음사를 창립한 이래, 문학과 인문학 출판에서 많은 업적을 쌓아 마침내 한국 최대의 단행본 출판사로 키워 낸 박맹호 민음사 회장이 그 질문에 답하면서 `책`이라는 과감한 제목의 자서전을 펴낸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다. 그동안 “각계 명사들이 지나간 이야기를 털어놓는 지면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번번이 고사해 온 터여서 더욱 그렇다. `박맹호 자서전`(민음사)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의 형식으로 씌었다. 1933년 생으로 올해 맞은 팔
중국 현대사상사 연구 분야에서 최근 가장 뛰어난 성과를 보이고 있는 쉬지린 교수의 `왜 다시 계몽이 필요한가 - (현대 지식인의 사상적 부활)`(글항아리)가 출간됐다. 중국 지식인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쉬지린의 문제제기와 그 사유가 집대성된 이 책은 계몽, 지식인, 공공성, 문명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를 제시한다. 저자는 이 키워드로 그린 구도 속에서 근현대 중국 지식인의 상황을 사회적 위상의 변화, 사상적 진로라는 측면에서 꼼꼼하게 조망하고 있다. 더 나아가 저자는 최근 급부상한 중국의 세계적 위상은 사실 19세기 중반부터 존재해왔던 부유한 강대국의 실현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면서, 중국은 과연 현재 세계 속에서 문명적·담론적 경쟁력이 있는 도덕적 대국이 될 자질이 있는가라는 의문을 표한다. 그는
“그의 시를 읽고 있노라면 마치 찰흙을 가지고 노는 일처럼 즐겁고 신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박순원 시인. 2005년 `서정시학` 신인상을 통해 등단하고 시집 `아무나 사랑하지 않겠다`와 `주먹이 운다`를 발표한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그런데 그런데`(실천문학사)가 출간됐다. 웃음과 슬픔으로 섬세하게 그려진 그의 이번 시집을 통해 독자들은 진한 페이소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데가 좋다 그리고도 그렇고 그러나도 그저 그렇고 그러므로는 딱 질색이다 (….) 순딩이 같은 그리고는 개성이 없다 그러나는 까칠하다 그러므로는 고지식하다 그러니까는 촌스럽다 특히 끝의 두 글자 니까가 마음에 안 든다 그런데는 두루뭉술하면서도 날렵하게 빠져 다닌다 그랜저 같다 그런데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
2007년 `시와상상`으로 등단한 이래 현재 한국작가회의 회원, `시산맥` `영남동인`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송은영 시인이 등단 이후 6년 만에 첫시집 `별것 아니었다`(화남출판사)를 출간 했다. `겨울 과메기`, `등 가족`, `옷이 나를 입다`, `바다를 필사하다` 모두 4부로 나누어져 총 61편의 시를 싣고 있는 그의 이번 시집은 `그 어디에도 구원이 없는`, `정직한 땀으로 절대불가능`한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절망하거나 분노하지 않으면서, 그녀만의 발랄한 시적 상상력을 통해 오늘의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해 낸다. 송은영 시인은 `질보다 양`을 중시하는 `알리바바와 40명의 도적`이 득세하는 오늘의 세계와 비주류로 떠도는 타인들의 얼굴 속에서 참다운 삶과 생명의 공동체를 발견하고자 한다.
부커 상 수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창백한 언덕 풍경`(민음사)가 출간됐다. 이시구로는 `떠도는 세상의 화가`로 휘트브레드 상을, `남아 있는 나날`로 부커 상을,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로 첼튼햄 상을 수상했으며 `나를 보내지 마`(2005)를 타임 선정 `100대 영문 소설` 목록에 올린 현대 영미 문학의 거장이다. `창백한 언덕 풍경`은 1982년 위니프레드 홀트비 기념상을 수상하며 “영국 문학의 새로운 사자”의 출현을 알린 이시구로의 데뷔작으로, 영국에 홀로 사는 중년의 일본 여인 에츠코가 딸의 자살을 겪은 후 과거 일본에 살던 시절 만난 모녀 사치코와 마리코를 회상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 나가사키가 배경인 이 소설에서 이시구로는 피어오르는 버섯구름 하나 없이,
국내 최초로 출간되는 고문헌, 고고학의 대가 리링 베이징대 교수의 `손자` 주석 및 해설서 `전쟁은 속임수다-리링의 `손자`강의(글항아리)가 출간됐다. 국내 동양학계에서 선진시대 병법 전문 연구가 거의 없는 상황에 이 책은 의의가 깊다. 리링 교수는 이 책을 통해 고대 병서라는 것이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출현했으며 `손자`라는 책의 다양한 판본이 어떻게 지금의 형태로 완성돼 왔는지에 대한 형성사적 역사를 수십 쪽에 걸쳐 매우 세밀하게 서술하고 있다. 금본(今本) `손자`와 고본(古本)`손자`의 체재와 내용 상의 차이점, 조조 등 역대 `손자` 주석가들의 장단점, 현대에 들어와 이뤄진 `손자` 연구, 해외에서의 `손자` 연구 등을 차례대로 읽으면서 소화할 수 있게 구성됐다. 단순히 군인을 독자로 상정
1991년 `시와 시학`을 통해 등단한 복효근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따뜻한 외면`(실천문학사)이 출간됐다. 그동안 시인은 `마늘촛불`, `목련꽃 브라자` 등의 시집을 통해 자연과 생명의 표면을 깊은 응시의 시선으로 읽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의미를 발견해왔다. 이번 시집 역시 일상 속의 현상과 사물에 대한 복효근만의 세밀한 관찰력이 돋보이고 있으며, 작은 존재로부터 깨닫는 삶의 의미와 세계에 대한 이해가 한층 더 성숙해진 서정시의 언어로 펼쳐지고 있다. 각 시편들은 개체의 비의를 이끌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음을 어루만지는 성찰에까지 나아가고 있다. 총 4부로 구성된 63편의 시들이 아픔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을 마취하는 데 급급한 이 시대의 힐링 열풍에 진정한 치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세계의 불온한 질서들을 엄숙하고도 진지하게 추궁하는 소설가 정찬이 새 소설집 `정결한 집`(문학과지성사)을 출간했다. 작가는 이번 소설집을 통해 세계의 이해할 수 없는 섭리들을 파헤치며 미지의 희망에 한발 더 다가선다. 그의 질문은 지금-여기의 현실을 겨누다가 역사와 신화, 판타지로 뻗어나간다. 이를테면 본인의 결핍을 메우려 자식에게 초인적 역할을 기대하는 어머니와 순응 동기를 상실한 아들(`정결한 집`)이나 일제의 난징학살(`오래된 몽상`)과 같은 `현상`을 작가의 의식 깊숙한 곳에서 재구성한 `내막`으로 채워 문제의 처음과 지금을 다시 묻고, 재개발(`세이렌의 노래`)이나 부당해고(`흔들의자`)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신화-종교와 병치시켜 부조리의 원류를 추적해나가는 식이다. 정찬은 시대의 화두 앞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