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언덕풍경`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민음사 펴냄, 252쪽

부커 상 수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창백한 언덕 풍경`(민음사)가 출간됐다.

이시구로는 `떠도는 세상의 화가`로 휘트브레드 상을, `남아 있는 나날`로 부커 상을,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로 첼튼햄 상을 수상했으며 `나를 보내지 마`(2005)를 타임 선정 `100대 영문 소설` 목록에 올린 현대 영미 문학의 거장이다.

`창백한 언덕 풍경`은 1982년 위니프레드 홀트비 기념상을 수상하며 “영국 문학의 새로운 사자”의 출현을 알린 이시구로의 데뷔작으로, 영국에 홀로 사는 중년의 일본 여인 에츠코가 딸의 자살을 겪은 후 과거 일본에 살던 시절 만난 모녀 사치코와 마리코를 회상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 나가사키가 배경인 이 소설에서 이시구로는 피어오르는 버섯구름 하나 없이, 폭격의 굉음이나 처절한 비명 하나 없이 원폭 투하의 비극을 그린다.

원폭 후 9년이 지난 1954년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영국으로 이주한 작가는 원폭의 참상을 생생히 묘사한 일본의 소위 `원폭 문학`과 달리 담담하고 절제된 서술로 인간 내면의 상처에 집중하면서 영어로 쓰였지만 일본적 정서를 가장 정확하게 담은 소설을 탄생시켰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을 가로지르는 상처를 차분히 목도하며 다음에 올 희망을 말하는 이 작품은 조용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전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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