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산책은 일기를 쓰는 것과 같다. 함부로 들뜨지 않고 차분히 일상을 돌아보며 나를 점검할 수 있는 프리즘과 같다. 나만큼이나 비를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불국사로 향한다. 처연하게 비를 맞는 천년의 고도 속에 갇혀 신라인의 숨결을 제대로 느끼고 싶었다. 시를 쓰는 친구는 요즘 천년의 미소와 하회탈의 매력에 빠져 있다. 비오는 날의 첫사랑처럼 그녀의 이야기는 설렘과 감동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경주에 도착하자 이미 빗줄기는 그쳐 있었다. 마음을 내려놓고 천천히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동안 모래알들이 발밑에서 바스락대고, 아름드리나무 그늘에는 청이끼가 세월의 깊이를 자랑한다. 비 온 날의 색 다른 풍경들도 좋다. 역사를 알 무렵부터 만나온 불국사는 단순한 사찰이 아니라 한국인의 긍지이며 자
5월 중순인데도 낮 기온이 체온보다 더 오르는 성급한 여름이다. 아까시나무의 가지들은 부풀어 올라 뜨겁게 꽃을 피워 숨 멎을듯한 향기를 천지에 뿜어낸다. 짙은 쑥 향기를 풍기며 쑥대는 실팍하게 자라 들녘을 풋풋하게 채운다. 그 황홀한 향기들을 맡으며 풀벌레들도, 산새들도 생명의 환희를 노래한다. 달려온 여름이 취하도록 좋아 채소밭의 들깻잎과 마늘 대는 한층 풍성해지며 온실 속 풋고추들도 쑥쑥 자라 불뚝불뚝 힘깨나 쓰고 있다. 여름의 문턱에 서면 이십여 년 전 5월 어느 날 싱가포르 창이공항에서의 황홀감을 잊을 수 없다. 비행기 탑승구를 내린 순간 온몸을 휘감아 전율시킨 아열대의 열기와 습기, 그로 말미암은 젊은 생명력의 숨 가쁜 팽창! 그때 `아! 나의 조상은 아프리카인이었을 거야`라 탄성하였다. 계절
`서른 즈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김광석의 노래다. 청춘도 사랑도 잃고 날마다 이별하며 살아가는 서른 초입(初入)의 인생을 한탄하는 노래다. 주도적으로 삶을 시작하는 30대 치고는 적잖게 비관적(悲觀的)이다. 공자는 서른 살에 홀로서기에 성공한다. 그는 35세에 노나라의 정변(政變) 때문에 제나라에 잠시 몸을 의탁한다. 제나라 군주였던 경공이 정사(政事)를 묻자, 공자는 주저 없이 “君君臣臣父父子子”라 말한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 경공의 영혼(靈魂)을 뒤흔든 간명(簡明)한 명구(名句)가 아닐 수 없다. 예수는 나이 서른에 `공생애(公生涯)`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과 3년의 공생애
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는 2008년에 제정, 2009년부터 시행된 `어린이식생활안전관리특별법 제21조`를 근거로 2011년부터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는 어린이건강관리 국가기관이다. 급식전문가가 없는 100인 미만의 보육시설과 유치원 등의 미취학어린이대상 급식 및 올바른 식생활교육을 담당한다. 포항은 경북의 시범센터로 경북최초로 운영을 시작했으며, 현재 전국적으로 150여개 센터가 어린이질병예방과 건강증진에 크게 기여하며 대한민국 보건영양사업의 수준을 높이고 있다. 어린이들에게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가 제공되기 위해서는 다음 단계들이 꼭 필요하다. 첫째, 연령별 모든 영양소 필요량을 충족하며 인공식재료를 배제한 신선한 제철식품과 다양한 식품들을 건강한 조리법으로 고루 편성하고, 염도, 당, 지방을 적절히 조
세상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면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여러가지 해답이 있을 수 있지만 나는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 즉 자존(自尊)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존을 지키는 삶은 당당하다. 기업컨설팅으로 이름이 난 작가가 10여년전 어느 전자회사의 AS기사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자신을 ○○전자 AS기사말고 다른 말로 뭐라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어봤더니 한 사원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저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합니다. 제가 냉장고를 고치면 사람들은 시원한 음료수를 기분좋게 마시고 신선한 요리를 먹게 됩니다. 제가 텔레비전을 고쳐주면 그들의 저녁시간이 즐거워집니다. 제가 하는 일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충북농업기술원이 소비자 기호에 맞는 2kg 이하 미니수박의 재배를 시험 연구 중이라고 한다. 그동안 애플수박이라는 이름으로 2014년부터 문경, 음성, 논산 등 일부지역 농가에서 도입하여 재배하고 있으나 마땅한 지침서가 없어 일반수박을 기준으로 재배하면서 여러가지 애로사항을 겪어왔기 때문. 미니수박은 모양도 예쁘고, 크기도 앙증맞을 뿐 아니라 쓰레기 발생량이 적어 대다수의 소비자가 선호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트에서 종종 속이 훤히 보이는 수박 반 통을 본 적 있지만, 미니수박을 이제 마트에서 구입할 날이 멀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출아하면 1~2인 가족에게는 기존의 대형수박에 비해 수요가 더욱 많아질 것이다. 과거에 큰 수박 한 통을 가운데 두고 대가족이 둘러 앉아 함께 한 조각씩 나누어 먹던 풍경은 시대의
고양이는, 내가 아는 고양이들은 좀처럼 믿을 수가 없다. 배 고플 때 밥주는 이가 나라면, 그 날이 며칠이고 계속되면 반드시 내 옆에 와서 아양을 부리곤 한다. 슬며시 가까이 와서 제 얼굴을 부비기도 하고 바짓자락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친밀감을 표현하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고양이가 몇 년 전에 몹시 할퀴어 팔에 지우지 못할 상처를 낸 적도 있고, 머리나 등허리 쓸어주는 것을 가만히 있다가도 갑자기 손을 꽉 무는 것도 여러 번씩 경험했기 때문에 이 녀석을 근본부터 믿어줄 생각이 없다. 이런 고양이 생리를 생각하면 개는 얼마나 충직한 짐승인가. 나 어릴 적 암캐 페이지는 먼 데로 팔려가서 몇 날 며칠 흐른 뒤에도 목에 나일론 끈이 매달린 채 돌아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영화 `부러진 화살`이 연상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6월 15일 밤 9시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법무법인 사무실 앞에서 한 남성이 퇴근 중이던 박영수 변호사(63)에게 공업용 칼을 휘둘러 목 부위에 12㎝ 가량의 상처를 입혔다. 그 남성은 재판과정에서 `전관예우`가 작용했기에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이 났다고 보고 이른바 보복의 흉기를 휘둘렀단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주요 언론은 하나같이 `변호사`인 박영수 피해자를 `전 고검장`이라 표기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지금 우리사회에서는 `변호사`보다 `고검장`이 더 나은 모양이다. 김승희의 시 `한국식 죽음`에서도 이런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김금동 씨(서울 지방검찰청 검사장), 김금수 씨(서울 초대 병원 병원장), 김금남 씨(새한일보 정치부 차장)
포항 지역의 한동대가 최근 교육부의 ACE(학부교육 선도대학)로 재선정 돼 지역의 기쁨이 되고 있다. 대구·경북 지역의 계명대, 한동대, 동국대 경주캠퍼스 등 세 개의 대학이 올해 ACE 사업에 선정되거나 재 선정되어 이 지역들의 사기를 돋우고 있다. 교육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2015년도 학부교육 선도대학 육성사업`에 선정된 16개 대학의 명단을 발표하였고, 올해는 전국의 99개 대학이 신청을 접수했기에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고 한다. 대규모 학교로 분류된 계명대는 올해부터 2019년까지 4년 동안 65억5천200만원을 지원받는다. 중소규모 학교 명단에 포함된 한동대와 동국대 경주캠퍼스는 앞으로 4년 동안 52억6천만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2주기 ACE 사업을 수행하게 된다고 한다.
근·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이성은 미신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하며, 독재와 압박에 저항하게 하는 무기였고, 산업화와 과학·기술 발전의 원천이었다. 우주의 법칙을 포함하여 모든 형태의 진리가 이성에 의해 발견될 수 있다고 여겼으며, 발견된 법칙에 따라 인과론적인 예언이 가능해졌고, 이와 더불어 진보주의 사관이 구축되었다.모더니즘 관점이 아동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성인은 이성을 갖춘 존재인 반면, 아동은 성인에 비해 이성이 부족하고 미성숙하며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여겨진다. 아동은 성인에 의해 빚어져야 할 토기(土器
잘 아는 형님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저게 문을 열면 내 신발가게는 문 닫아야 해. 구미의 후배 녀석도 재고가 쌓여가더니 결국 폐업하고 충청도 고향으로 내려갔어.” 그 자리에서 시행사 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마트에 신발 코너도 입점하는지를 물어봤다. 마트 측에서 아마 그렇게 할 거라는 대답과 함께 (그 신발가게의)인근에 최근 들어선 복합쇼핑몰도 신발을 판매하는데 왜 유독 마트만 반대하느냐는 것이다. 또 (그 형님과 조건이 맞으면)마트와 계약하고 입점할 수도 있다는 제안과 함께. 형님의 대답은 단호했다. “쇼핑몰은 상가의 초입에 위치해 있지만 그동안 오랫동안 빈 건물로 방치돼 상가의 침체를 더해온 터라 반대하기가 어렵다. 마트 입점은 수수료를 떼는 구조이므로 별로 남을 것이 없다.” 요즘 매일 육거
볕이 좋다 못해 강한 7월이다. 비록 볕을 가리는 장마와 태풍이 7월 초입을 장식하고 있지만, 지독한 가뭄과 지독한 메르스에서 `지독한`을 씻어낼 이들이라 우리에겐 좋은 볕이다. 볕 좋은 7월 초 산자연중학교 운동장에는 빨랫줄이 쳐졌다. 6월에 이어 두 번째다. 산자연중학교는 전국에서 학생들이 전입학을 오는 전국 단위 기숙사 학교다. 학생들은 금요일 오후 학교스포츠클럽을 마치고 전국에 있는 자신들의 집으로 간다. 메르스가 점령한 6월의 귀갓길은 언제나 걱정이었다. 혹시나 양심을 저버린 사람들에 의해서 우리 학생들이 아프지나 않을까 해서. 학교에서는 그런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 학생들이 귀가한 6월 중순 어느 날 운동장 한쪽에 빨랫줄을 치고 전교직원이 동참해서 아이들의 이불을 운동장 가득 널었었
작년에는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침울함에 세월을 보냈는데, 올해도 6월로 들어서며 메르스 파동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올 들어 가뭄이 너무 심해서 많은 수의 저수지와 하천들이 바닥을 드러내었다. 논에 못자리도 해야 하고 여름야채들을 가꾸어야 할 것인데, 반년 이상 지속된 가뭄의 여파에 온 국민이 야채와 과일파동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걱정은 국내경기가 불황의 늪에 빠져가는 것이다. 세계경제의 전반적인 불황기조와는 달리, 우리 한국경제는 좀 나은 지표를 보이고 있어 다행이었고, 부동산시장도 활기를 띄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메르스 파동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고, 우리 시민들도 여행은 물론이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듯 싶은 장소들을 피하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경제위축을
정국이 혼탁하고 볼썽사납게 치닫고 있다.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촉발된 사태에 대하여,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라며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여당 원내대표는“잘하라는 채찍질로 받아들이겠다”며 허리를 숙였지만 어깃장을 감추지 않았다. 예견된 양상이었다. 친박계는 즉각 원내대표의 사퇴를 촉구했고 비박계는 20여 명의 의원들이 원내대표를 옹호하고 나섰다. 민심도 갈렸다. 새누리당 지지층에서는 원내대표 사퇴에 대한 찬성이 45%에 이른 반면, 새정치연합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56%로 나타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야당 지지층의 성원을 받는 여당 원내대표가 탄생한 것이다. 스스로 자초한 면도 없지 않다. 그는 원내대표 취임 이래 대통령 대선 공약 사항과 정부 정책 등에 대하여 수시로 엇박자를 놓더
국민을 위하기보다는 자신과 당을 위해 막말을 쏟아내는 국회의원이 국민을 당황하게 하더니 이제는 기초의원이 공적인 자리에서 득보다 실이 많은 자치단체장의 인사권 양보를 들고 나와 당황케 하고 있다. 지난 6일 열린 제177회 경산시의회 정례회 제1차 본회의에서 정병택 의원은 5분 자유발언을 통해 의회사무국 직원의 인사정책과 읍면동장 인사권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정 의원은 “의회사무국 직원들이 의원들을 위해 수고하지만, 집행부의 직원들보다 근무평가에서 뒤처지고 인사권자가 시장이기 때문에 집행부의 눈치를 살펴 정확한 자료나 정보를 의원들에게 제공하지 못하니 사무국직원의 인사권을 의회에 양보할 수 없느냐”라고 물었다. 또 “시의원들도 시장과 마찬가지로 선출직이니 읍면동장을 임면(任免)할
`양약고어구충언역어이(良藥苦於口忠言逆於耳)`라는 말이 있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나오는 이 구절은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충고하는 말은 귀에 거슬린다`는 뜻이다. 흔히 사용하는 `입에 쓴 약이 명약(名藥)`이라는 말과도 상통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작심 비판을 기점으로 정점을 향해 치달아오른 청와대-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갈등을 놓고 대구·경북의 민심이 큰 걱정에 휩싸였다. 박 대통령이 옳다느니, 유승민이 옳다느니 여론도 갈리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인 폴스미스가 대구 동구을 주민 1천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유 원내대표의 사퇴 반대가 51.1%, 찬성 45%로 나왔다는 자료도 발표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비판한 대로 `유 원내대표가 자기이익과 자기 정치를 했다`는 응답은 38.
진주에 일이 있어 차를 몰고 다녀왔다. 예전엔 몇 시간, 며칠이나 걸리던 길이 이제 1~2시간이면 갈 수 있게 되었다. 몇 년 전 새로 닦은 남해고속도로는 훨씬 시간을 단축하게 만들었다. 아니 뿐만 아니라 더 편안하게 갈 수 있게 만든다. 편안함과 편리를 추구하는 길이 과학기술의 목적이 아닐까? 끝이 없이 진행되는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이 얼마나 편리하고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예전에 그렇게 찾아다녔던 공중전화가 이제는 내 호주머니 안에 들어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예전보다 빨리 갈수 있고 편하게 전화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 삶은 점점 더 바빠지는 것일까? 시간은 점점 더 없어지고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더 불편해질까? 사람들이 잃어버린 시간을 모모가 찾아주듯이 우
보스턴에서 생활하면서 많이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토끼, 다람쥐, 혹은 사슴 등 야생동물들이 학교 교정이나 주택가에서 눈에 많이 띈다는 점과 이 동물들이 모두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모습이 겁 많은 한국의 동물들과 비교되면서, 필자는 한국과 한국 사람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하버드 대학교 교정을 걷고 있다 보면 유난히 눈에 많이 띄는 동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청솔모이다. 저희들끼리 다정하게 나무 위를 오르락내리락 하기도 하고 잔디밭을 명랑하게 가로질러 간다. 사람들이 옆을 지나가도 태연하게 서있거나 다가와 먹을 것을 구걸하기도 한다. 다람쥐에 비하면 훨씬 못생긴 녀석들이지만, 보고 있노라면 왠지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청솔모에 대해서 갖고 있던 나의 편견-
지난 한 달간 온 국민을 불안정국으로 이끌었던 메르스 사태가 이제 어느 정도 진정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지역민들의 분주한 모습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한 주 였다. 아무리 사소한 문제에서 발단된 일이라도 방심이나 안일한 대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국가의 존립마저 위협하게 된다는 문제를 이번 사태를 통해 다시 한 번 실감해 본다. 정부의 무능과 대국민 소통 실패가 초래한 이번 메르스 사태 역시 지난해 온 국민을 깊은 트라우마의 충격에 빠뜨리게 했던 세월호 참사의 위기대처 능력과 비교해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주말을 이용해 들렀던 시내 극장가에서도 이제는 메르스의 충격에서 벗어나 일상 속에서 자기관리를 우선적으로 실천해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대한민국을
나의 열 살, 2002년 그 해는 붉은 악마들로 가득 차 있었다. 도시의 곳곳에는 기쁨의 환호성과 붉은 물결이 언제나 아른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렵 군인 몇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그게 내가 알던 전부였다. 막연히 통일이 되어 군대가 없어지길 바라는 초등학생. 군복을 입고 총을 든 내 모습을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나의 모습이 되었다. 의무경찰로 복무 중인 내가 연평해전이라는 영화를 통해 다시 받아들이게 된 2002년. 그 해는 내가 알던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들은 월드컵 승리의 기쁨과 환희 대신 눈앞에서 빗발치는 총알들과 누구의 것인지 모를 흘러내리는 붉은 핏물을 바라보며 어린 살과 피부를 비집고 들어가 여문 근육 속에 박힌 탄환과 함께 두려움과 고통, 공포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