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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엽, 경상도 성주군 월항면에 성주이(李)씨 `이장경`이라는 선비가 살았다. 그는 다섯 아들을 두었는데, 오래 살라는 뜻으로 맏아들은 백년, 둘째는 천년, 세째는 만년, 네째는 억년, 다섯째는 조년(兆年)으로 이름을 지었다. 그가 타계하자 묘소를 마을 석산사 왼쪽에 있는 야산에 썼는데, 지관이 “용이 알을 품은 천하명당”이라 했다. 그래서 그런지, 다섯 아들이 모두 과거에 급제해서 명문세가로 이름을 날렸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조에 들어서면서 이장경의 묘소는 다른 곳에 옮겨지고, 그 명당은 세종대왕과 후손들의 태실이 되었다. 이장경의 다섯 아들 중에서 우리가 잘 기억하고 있는 이는 5째 이조년(李兆年)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의 시조 `연가(戀歌)` 한 수 때문이다. `문학의 힘`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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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5.04.08
게재일 2015-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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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환인(桓因·창조주 제석천 하느님)이 아들 환웅(桓雄)을 태백산(太佰山) 신단수(박달나무) 아래에 내려보내 인간세상을 다스리게 했다. 이 무렵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한 동굴 속에 살면서 늘 환웅천왕에게 “사람이 되게 해지이다”빌었더니 어느날 환웅 신이 신령스러운 효험이 있는 마늘 스무 개와 쑥 한 묶음을 주며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성질이 불 같은 범은 일찌감치 포기했고, 곰은 꿋꿋이 견뎌냈는데, 100일을 다 채우지 않고 불과 21일만에 여자(웅녀)가 되었다. 웅녀는 신단수 아래에 와서 또 빌었다. “혼인하여 자식을 낳고 싶은데, 천지강산에 남자가 없습니다” 환웅천왕은 그 사정 또한 딱하다 여겨 스스로 남자로 변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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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5.04.07
게재일 2015-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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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은 세 아들을 두었다. 장남 양녕은 `왕이 돼야 할 운명`에 항거했다. 미친짓이나 하고, 남의 여자 임신이나 시키고, 스승 앞에서 개짓는 소리나 내니, 태종도 결국 그를 버렸다. 둘째 효령은 불교에 심취했으니 `조선의 이념`과 맞지 않았고, 결국 3남 충령이 세종이 돼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뤘다. 이승만 건국대통령은 양녕대군의 16대손이다. 미국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59세때 프란체스카 여사와 결혼하지만, 슬하에 자녀가 없었고, 양녕대군의 17대손 이인수씨를 양자로 들였다. 그는 고려대 상대를 나와 공군 통역장교로 복무했으므로, 대통령과 영어로 소통할 수 있었다. 당시 이 대통령은 한국어보다 영어가 쉬웠고, 주로 영자신문을 봤다. 그런만큼 국내정세에 어두운 면도 많았는데 대부분의 국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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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5.04.06
게재일 2015-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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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란 속담이 있다. 하루 차이거나 6년에 한번씩 겹치니, 별 차이 없다는 뜻이다. 코미디프로 `도진 개진`도 같은 의미다. 윷놀이에서 가장 잘 나오는 것이 `도 아니면 개`여서 “그게 그것”이란 말이다. 그러나 한식(寒食)은 조선시대 설·추석·단오와 함께 4대명절에 속할만큼 중요한 날이었다. 청명(淸明)은 바람이 많이 불어서 구름을 다 날려 보내므로 하늘이 가장 맑은 날이란 뜻이고, 그 날 모든 백성들은`묵은 불씨`를 끄고 `새 불씨`를 기다린다. 청명날 나라에서는 `버드나무 판자에 느릅나무 막대기를 비벼` 새 불씨를 얻는다. 재질이 무른 버드나무는 여성을 상징하고, 강한 성질의 느릅나무는 남성을 상징하는데, 음양의 교합을 통해 불씨를 얻으면 `성스러운 불`이 되고, 이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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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5.04.05
게재일 201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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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49대 헌강왕 대에 들어서면서 나라가 망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지방까지 집과 담이 이어졌고, 초가는 하나도 없었으며, 아침 저녁으로 굴뚝에 연기가 오르지 않았다. 숯으로 밥을 지었기 때문이다. 또 풍악과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삼국유사`에 실린 내용이다. 이렇게 사치 방탕하니, 남산신과 북악신과 지신이 나타나 춤을 추어 경고메시지를 보냈으나, 사람들이 그 의미를 모르고 `좋은 조짐`이라며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더욱 빠져들었다. “산이 헐벗으면 나라가 망하고, 살림이 무성하면 나라도 흥한다”하는 것은 세계사가 증명한다. 신라 말기에 숯으로 음식을 조리하고 난방할 정도였다면, 백성들은 참나무와 소나무로 숯을 구워 나라에 바치기 바빴을 것이고, 산은 민둥산이 돼갔고, 국가는 멸망의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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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5.04.02
게재일 2015-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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