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있어 하나가 되는 완전함

비 오는 날의 산책은 일기를 쓰는 것과 같다. 함부로 들뜨지 않고 차분히 일상을 돌아보며 나를 점검할 수 있는 프리즘과 같다. 나만큼이나 비를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불국사로 향한다. 처연하게 비를 맞는 천년의 고도 속에 갇혀 신라인의 숨결을 제대로 느끼고 싶었다.

시를 쓰는 친구는 요즘 천년의 미소와 하회탈의 매력에 빠져 있다. 비오는 날의 첫사랑처럼 그녀의 이야기는 설렘과 감동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경주에 도착하자 이미 빗줄기는 그쳐 있었다. 마음을 내려놓고 천천히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동안 모래알들이 발밑에서 바스락대고, 아름드리나무 그늘에는 청이끼가 세월의 깊이를 자랑한다. 비 온 날의 색 다른 풍경들도 좋다.

역사를 알 무렵부터 만나온 불국사는 단순한 사찰이 아니라 한국인의 긍지이며 자존심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올 수 있는 곳이기에 특별히 나를 긴장시키거나 새로울 것이 없었다. 우리는 산책하듯 걸으며 역사와 문학을 이야기한다. 유창하게 영어로 떠들어대는 가이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도 하고, 소복하게 모여 재잘거리는 아기단풍잎에 경탄하기도 하며, 다양한 구경거리들로 정신이 없다.

어느 사이, 노송 뒤로 커다란 돌계단이 모습을 드러낸다. 둘이서 조각난 지식들을 늘어놓으며 머리를 맞대지만 이내 말문이 막힌다. 불국사에 대해 식상할 만큼 안다고 생각했는데 부끄럽다. 우리 것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했는지 반문해 본다. 사랑하면 알 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제대로 알면 저절로 사랑하게 되리라. 내 안에 새롭게 꿈틀대는 역사의식을 느낀다.

불국사는 토함산 줄기에 높은 석단을 쌓아 그 위에 조성한 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사찰이다. 이차돈이 순교한 이듬해인 528년(법흥왕 15)에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과 기윤부인이 절을 창건하고 비구니가 되었다고 `불국사고금창기`에 전한다. `삼국유사`에는 김대성이 십이연기 불교의 윤회설에 따라 전생의 부모님을 위해 석굴암 석불사를, 현생의 부모를 섬긴다는 뜻에서 불국사를 창건했다고 전한다. 완공 후 9차례의 중창 및 중수를 거쳤지만 임진왜란 때 불타고, 1973년에 대대적으로 중창되어 오늘에 이른다.

우리는 오래된 일기장을 넘기듯 천 년의 역사 속으로 빠져든다. 크고 작은 자연석으로 쌓아올린 아랫단과, 정교하게 네모로 다듬은 윗단의 단아함, 툭툭 튀어나와 전체를 받치는 돌못들과 우아한 아치형 홍예교까지, 그 옛날의 건축기법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섬세하고 위용이 넘친다. 건축술과 미적 감각이 뛰어난 신라인의 예술혼과 지혜에 머리가 숙여진다.

여느 때와 달리 안내문을 꼼꼼히 읽고 잘못된 기억을 바로 잡는다. 윗계단은 젊음을 뜻하는 청운교, 아래는 늙음을 뜻하는 백운교이다. 물을 건너고 구름을 지나야 갈 수 있다는 부처님의 세계, 붉은 안개를 뜻하는 자하문을 통과하면 그제서야 대웅전이 나온다. 좌측에 있는 연화교와 칠보교도 똑같은 방식으로 안양문을 거쳐 극락전에 이르도록 설계되어 있다. 나는 눈을 감고 계단 아래로 물이 흘렀을 그 옛날의 불국사를 그려본다.

가슴이 두 방망이질한다. 내 안에 흐르는 한국인의 혼과 정서, 그 끈끈한 아름다움은 결코 젊은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다. 저마다 이름이 가지는 상징성과 의미들을 풀어내며 시간을 거슬러 오른다. 그 옛날 신라인들의 정신과 숨결이 희미하게나마 느껴진다. 우리의 문화를 하나씩 알아 갈 때마다 벅차오르는 감동들, 그것은 나이 듦이 주는 또 다른 행복감이다.

산 위로 피어오르는 운무와 호위하듯 둘러선 회랑으로 불국사는 더욱 신성해 보인다. 왕궁같은 엄숙함이 느껴져 긴장감을 놓을 수가 없다. 그러나 대웅전을 들어서면서 그 뿌듯한 자부심은 격감되고 만다. 법당 문 앞에 앉아 불공비 1만원을 요구하듯 읊어대는 두 불자의 행동은 참으로 민망하다. 언제부터 부처님이 마음보다 재물 보시에 따라 자비를 베푸셨던가?

 

▲ 조낭희 수필가
▲ 조낭희 수필가

씁쓸한 마음을 달래며 자하문에 서서 대웅전을 바라본다. 유리로 된 건물에 갇혀 해체 수리 중인 석가탑의 어수선함을 지켜보는 다보탑이 나만큼 쓸쓸해 보인다. 그의 품에 있던 4마리의 돌사자 중 지금은 하나만 남아 있다. 형체가 없는 석가탑 주변에는 아사녀의 애틋한 혼이 함께 할 것만 같은데, 홀로 서 있는 다보탑이 참으로 고독해 보인다. 둘이 있다 홀로 남게 된다는 것, 그만큼 애잔한 풍경이 있을까.

청운교와 백운교, 연화교와 칠보교, 다보탑과 석가탑, 현세계와 부처님 세계, 음과 양이 빚어내는 조화가 있어 불국사는 아름답고 위풍당당한지 모른다. 홀로 일 때의 온전함과 둘이 주는 하나 됨, 여럿이 주는 합일의 느낌은 다르다. 완전하고 이상적인 것에 가 닿으려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사랑이라 규정했던 플라톤의 향연을 떠올리며, 독신자가 늘어가는 요즘의 세태와 홀로일 때의 즐거움을 고집하는 나를 돌아본다.

인간은 외로운 존재라고 하지만 오늘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어 기쁨이 넘치는 하루다.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누군가 있다는 것만큼 감사하고 소중한 일이 있을까? 석가탑이 건강한 모습으로 다보탑 앞에 설 때까지, 의연하게 버텨줄 다보탑을 향해 나는 가지런히 두 손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