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상 반려동물은 ‘물건’으로 취급된다.‘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란 조항이 신설된 개정안은 국회에 머물러 있다. 그러므로 누구나 돈만 지불하면 원하는 동물을 살 수 있고, 원하지 않으면 버릴 수 있다. 구매자를 보호하기 위한 매매계약서에는 동물의 기본 정보와 건강에 관한 사항을 적도록 하지만 구매자의 사육 능력이나 사육환경에 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반려동물 인구에 비례해서 유기동물의 수가 늘어나는 이유이다.겨울비가 장맛비처럼 내리던 저녁. 어둠이 내린 시골길을 더듬어 포항시동물보호센터를 찾았다. 불과 몇 시간 전에 구조되었다는 강
모든 사람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고, 똑같은 존엄과 권리를 가진다. ‘세계인권선언’의 첫 문장이다. 인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리는 당연한 권리를 말한다. 두 발을 딛고 사는 땅이나 한순간도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공기, 생존에 필수인 햇빛처럼 소중하지만 늘상 곁에 있으려니 하기 쉽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공개한 ‘2023 인권의식 실태조사’를 보면, 1년 전보다 인권 상황이 더 나빠졌다는 인식이 증가했다. 인권침해에 가장 심각하게 노출되는 대상은 경제적 빈곤층이었다. 인권은 누구나 동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어떤 이의 삶은 살아온 자체로 역사가 된다. 지나간 세월을 겪어낸 다양한 분야의 원로들이 그렇다. 김수웅 선생이 포항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것은 1959년이다. 국산 라디오가 처음으로 생산된 바로 그 해이다. 라디오가 영화와 더불어 대중문화의 꽃이던 시절이다. 당시 서울의 라디오 보급률은 60%가 넘었지만, 포항 지역에서 라디오 수상기가 있는 집은 전체 가구의 10%도 되지 않았다. 전국의 라디오 보급률인 20%의 절반 수준이었다. 그런 시절이었으니 방송국은 번듯한 건물이 아닌 이동 방송차였다. 라디오 없는 집이 수두룩하니 포항초
예술가는 돈을 이야기하고 부자는 예술을 이야기한다는 말이 있다. 진정한 예술은 돈을 좇지 않는다지만 가난한 예술가들은 돈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1980년대부터 포항에서 극단을 이끌어 온 이한엽 대표는 인터뷰 도중 여러 차례 예술이 돈을 좇는 세태를 비판했다. 가난이 숙명인 연극판. 그것도 변방의 민간 극단은 걸핏하면 물이 새고, 곰팡내 나는 지하 소극장을 전전해야 했다. 낮에는 직장인으로 밤에는 연극인으로 살아가며 사비를 털어 넣어도 적자를 면치 못한다.그러면서도 돈에 대한 꼬장꼬장한 태도의 근저에는 하고 싶은 연극을 마음대로
만나게 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나게 된다. 김수정 사진가와는 20년 가까이 인사를 나누던 동네 이웃이었다. 특유의 활달한 붙임성으로 해녀들과 작업한다고 했을 때 만해도 이토록 진심인지 몰랐다. 그 후로는 다양한 곳에서 김수정 석 자를 듣는 일이 많아졌다.그리고 지난 봄, 포항 북구 방석리 바닷가의 질펀한 굿판에서 김 작가를 만났다. 밤을 새우는 동해안별신굿을 렌즈에 담으면서도 고단한 기색은 없었다. 되려 사라져가는 것을 기록하는 사명감으로 하나라도 놓칠까 긴장을 늦추지 않는 모습이었다.도대체 무엇이 사진가를 드센 바다와 떠들썩한 굿판
한 분야에서 중요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과의 만남은 설레는 일이다. 남시진 박사는 불국사와 천마총, 황남대총과 황룡사, 분황사, 감은사 등 고고학사의 굵직굵직한 현장마다 함께 했다. 국내 유적 발굴에서 실측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에 처음으로 측량과 실측을 담당하고 도면을 작성했다. 대한민국 발굴사의 시작을 알리는 천마총 발굴 조사원 중 유일한 경주 사람이다. 한국 고고학사의 오래된 사진 속에서 남시진 박사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불국사 복원을 위한 설계실, 천마총에서 금관을 수습하는 역사적인 순간, 분황사 발굴 조사를
그 옛날 문인화는 어지러운 세상살이에 정신을 맑게 하는 수양의 한 가지였다지만 오늘날엔 그저 예스러운 예술의 한 장르로 여겨진다. 시를 다루는 화가는 물론 시대와 소통하는 작품이 드물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심관(心觀) 이형수의 문인화는 탁월성을 발휘한다. 심관의 화폭에는 고된 일상이 질펀하게 펼쳐지는 현재와, 사상은 빛났으나 조명받지 못한 사람들이 담긴다. 역사 속 인물이나 사건에도 현재를 읽게하는 해학과 풍자가 있다. 대상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가 있어서 가능한 작업이다. 심관의 화론 또한 단순하고 일상적이다. ‘밥 먹듯이 하
태풍 시 행동 요령으로 중요한 것은 날씨 정보를 청취하며 기상 상황을 지속해 파악하는 일이다. 최근 태풍이 북상할 때, 경북 동해안이 가청권인 라디오를 청취했다면 이 사람을 만났을 것이다. 채널을 불문하고 많게는 하루에도 서너 번씩 태풍의 이동 경로와 전망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며 피해 최소화를 당부한 포항기상관측소 김정희 소장이다. 기상 현장의 최전선에서 23년간 날씨 서비스를 제공해 온 기상 전문가이다.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기상 정보를 더 밀착해서 제공하기 위해 시간을 쪼개어 주민들과 소통한다. 지난 9월 1일 자로 대구지방
심해를 맨몸으로 유영하는 프리다이버의 모습은 신비로움 그 자체다. 땅에 발붙이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외계의 생명체 같다고나 할까. 실제로 바닷속 환경은 우주와 가장 유사하다고 알려진다. 행성을 탐사하기 전 우주비행사들이 대서양 아래서 훈련하는 이유기도 하다. 바다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프리다이버가 많다고 한다. 바닷속 가장 신비로운 생물들에게 다가가는 빠르고 효율적 방법이 프리다이빙이기 때문이다. 우주를 유영하듯 바닷속을 헤엄치려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훈련이 필요하다. 우주를 유영하듯 바닷속을 오가는 사람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
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은 오래된 논쟁이다. 보존에 가치를 두는 쪽은 허울 좋은 활용은 훼손과 다름없고, 어떤 방식의 활용도 문화재 본연의 가치를 전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활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문화재 보존은 문화를 박제하고 화석화한다고 비판한다. 끊임없이 변동하는 문화의 속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보존과 활용은 상반된 개념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됐고, 정부의 문화재 정책은 보존에서 활용으로 흐르고 있다.보존해야 할 ‘문화유산’과 ‘활용’이라는 단어가 병행하는 ‘경주문화유산
대학 시절 풍물에 빠져 지낸 지인이 필자가 포항에 있다는 말을 듣고 했던 첫마디가 ‘원만 사부가 사는 곳’이었다. 한강 이남에서 꽹과리를 가장 잘 노는 상쇠이자, 앞서 이끌기보다는 스며들어 함께 가는 보기 드문 리더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 원만 사부가 포항에 풍물을 뿌리내린 ‘한터울’의 이원만 대표였다. 인연이 닿아 만나게 된 그는 만날 때마다 세상을 넓혀가는 사람이었다. 꽹과리 연주자로 시작해 국악으로 다양한 창작 공연을 선보이더니 직접 기획하고 감독한 국악창작뮤지컬 ‘강치전’은 전국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전 이 대표
예술은 특정한 누구의 것이 아니라 모두가 향유하는 권리이다. 이 같은 예술의 공공적 가치는 공립예술단의 존재 근거가 된다. 전국에 산재한 국공립극단이 만나는 ‘대한민국 국공립극단 페스티벌’이 올해로 14회를 맞았다. 내일(오는 5일)부터 한 달여간 전국 8개 극단이 경주를 찾는다. 축제를 주관하며 피날레를 장식하는 경주시립극단의 김한길 예술감독을 만났다. 경주시립극단 출범 이후 가장 젊은 감독으로 주목받았던 그는 지난 7년간 경주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경주말과 지역민의 정서를 담아왔다. 창작인으로서의 꿈과 고뇌, 지역 연극 발전을 위
나무 그늘을 찾게 되는 계절이 왔다. 포항시 청하면 소재지에서 폭이 좁은 곡선도로를 15분간 오르면 무음(茂蔭)의 수목원을 만난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고산수목원인 경상북도수목원이다. 해발 650미터에 위치한 이곳에는 3천여 종의 식물과 백여 종의 희귀식물이 서식한다. 지형을 그대로 살린 산책로 또한 산 구릉의 굴곡을 닮았다. 수목원의 계절은 도심과 다르다. 봄꽃은 늦게 피고 단풍은 일찍 든다. 우거진 나무의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여름에는 평균 기온이 4도 이상 낮다. 구태의연한 계절과 조금씩 어긋난 계절을 만나는 건 즐거운 일이
국내 3대 불꽃쇼에 드는 포항국제불빛축제가 4년 만에 포항의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불꽃은 사그라들어도 그날의 밤하늘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진 축제에서 사람들은 한국팀의 ‘그랜드 피날레’를 단연 압권으로 기억한다. 벅찬 감동의 불꽃쇼 뒤에는 20년 경력의 김주식 불꽃 디자이너가 있다. 그는 불꽃 디자인을 불꽃이라는 물감으로 밤하늘에 그림을 그리는 일로 비유했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그저 태어나지 않는다. 찰나의 예술이라는 불꽃은 1초를 서른 번으로 쪼개고 색과 위치, 모양을 철저하게 계산해 배치한 결과
여관의 사전적 의미는 ‘여행객이 묵는 집’이다. 누군가에게는 어쩌다 한 번 머무는 공간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거듭 돌아오는 장소일 수 있다. 어떻든 간에 떠나는 자들의 공간인 여관은 여인숙을 밀어내고 한 시대를 풍미하다 지금은 신축 숙박업소에 밀려 사라졌거나 후줄근한 이미지로 연명한다. 포항시 남구 포스코대로 436번지에도 시류를 놓쳐버린 여관이 있었다. 과거에는 여행객이 묵었지만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지금은 예술이 묵는 곳이 된 ‘형산장여관’이다. 시간의 더께를 그대로 간직한 공간은 예술과 어우러져 상상 이상의 공간이
사전에서 ‘굿’을 찾으면 ‘종교 제의’보다 ‘신명나는 구경거리’가 먼저 나온다. 여러 사람이 모여 떠들썩하게 노는 신명 한 판이 지난 2일 포항시 송라면 방석 1리에서 펼쳐졌다. 방파제 앞 간이무대에서 밤새도록 이어지는 무박 2일의 굿판은 노래와 춤, 연극과 사물놀이가 어우러진 문화공연 콘텐츠의 보고였다. 16개의 굿거리는 각각 독립적인 주제와 색깔로 펼쳐졌다. 흥이 난 주민들은 굿판으로 나와 춤을 추거나 “얼씨구”, “아이고 내 팔자야” 같은 후렴구를 넣으며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굿판의 무녀와 악사는 젊은 세대가 많았다. 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인이 사건’ 당시 포항의 한 교회에서는 1인 시위가 오래 이어졌다. 정인이의 외가였지만 도움은커녕 방조를 넘어 학대에 동참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포항시민은 더 분노했고 미안해했다. 어느덧 추모의 열기가 식고 사건은 잊히고 있지만 정인이가 남기고 간 것들은 있다. 수많은 정인이들을 살리기 위한 법 개정과 대응 시스템의 강화, ‘학대피해 아동쉼터(이하 쉼터)’의 확충이 그것이다. 포항에 3곳인 쉼터 가운데 한 곳인 선린나래 아동쉼터에서 이정미 원장을 만났다. 간판도 안내표지도 없는 쉼터는 보통의 가정집과 다름없
최영주 교수에게는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는다. 1980년대 미국에서 강의를 시작했을 때 동양인 여성 수학 교수는 처음이란 말을 들었다. 국내 최초로 암호학 관련 강의를 포스텍에 개설했고, 당시 캠퍼스에서 유일한 임산부였다. 국내 여성 수학자 가운데 처음으로 ‘대한수학회 학술상’을 수상했고, 정수론 국제학회지에 국내 수학자 최초로 편집위원에 선정됐으며, 한국여성수리과학회 설립에 참여했다. 한국 여성 수학자의 역사를 쓰고 있는 셈이다.최영주 교수와의 약속은 최적치를 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른 봄에 연락이 닿아, 꽃 피는
요즘은 다르겠지만 고기잡이배 촬영을 가면 여자 스텝은 승선이 거부되던 일이 흔했다. 바다마을에는 미신이 많고 그들이 경외하는 신(요왕할멈이나 영등할매)에 여성성을 부여하면서도 정작 어촌사회는 남성 위주였다. 뿌리 깊은 남성 중심 문화는 어업인의 의식에도 드러난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의 실태 조사를 보면 남성 어업인은 스스로를 어업 경영주로 인식하는 반면 여성은 어업활동의 보조적 역할로 인식했다. 뱃일에 집안일까지 남성보다 곱절을 일하면서도 스스로를 낮춘 것이다. 그러니 어촌사회의 실질적 주체인 어촌계는 어떻겠는가. 제주를 제외하면 여
모든 단어에 시제가 있다면 민속은 과거형에만 머물지 않는다. 예스럽기 그지없는 민속은 지난 시대의 잔존 형태가 아니라 살아서 꿈틀대는 생물이다. 지역의 민속문화가 살아움직이는 현장을 10여 년 전, ‘다시 듣는 포항의 토속민요’ 공연으로 목격했다. 사라져가는 포항의 민요를 지역의 젊은 소리꾼들이 복원하는 무대였다. 이어서 끊어져가는 전통을 잇고자 포항흥해농요보존회가 출범했다. 주민들은 농요의 복원을 위해 엎드려서 모를 찌고 지게를 지고 도리깨질을 하는 행위와 노래를 엮어 재현했다. “옹헤야”의 포항 흥해 버전인 “에헤 화이요”로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