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작가가 만난 ‘이 한 사람’
이형수 문인화가

이형수 문인화가

그 옛날 문인화는 어지러운 세상살이에 정신을 맑게 하는 수양의 한 가지였다지만 오늘날엔 그저 예스러운 예술의 한 장르로 여겨진다. 시를 다루는 화가는 물론 시대와 소통하는 작품이 드물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심관(心觀) 이형수의 문인화는 탁월성을 발휘한다. 심관의 화폭에는 고된 일상이 질펀하게 펼쳐지는 현재와, 사상은 빛났으나 조명받지 못한 사람들이 담긴다. 역사 속 인물이나 사건에도 현재를 읽게하는 해학과 풍자가 있다. 대상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가 있어서 가능한 작업이다. 심관의 화론 또한 단순하고 일상적이다. ‘밥 먹듯이 하면 이루어진다’는 것. 그렇기에 ‘만사를 아는 것은 밥 한 그릇을 아는 것에 있다’던 해월 최시형은 선생의 오랜 공부 대상이다. 나이가 들면서 발 딛고 있는 지역의 문화예술 근원에 자연스레 눈이 떠졌다는 선생은 포항을 우리나라 근대사상의 시원지라고 말한다. 지역의 문화자원을 눈 밝게 발굴해 필묵으로 재해석하는 이형수 문인화가를 포항 북구 창포동에 위치한 선생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사춘기 겪으며 그림에 눈 뜬 후 이당 김은호·옥산 김옥진 화백에 가르침 받아
부모님 따라 정착한 포항서 자연스레 역사문화에 관심, 그 인물들 화폭에 옮겨
동학 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 오랜 연구대상… 지역정신 대표자 등한시 아쉬워

-물 맑은 영덕 오십천변이 고향이라고.

△영덕 오십천변 남석동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노닐던 오십천의 맑은 물과 바람을 아직도 기억한다. 부친은 농산물검사소에 계셨고 집안에 여유가 있어 초등학생 때부터 형과 서울에서 공부했다. 영덕에서 서울까지 하루가 넘게 걸렸다. 직통 차편이 없어서 비포장도로를 버스로 3시간 넘게 달려 안동으로 갔다. 안동역에서 중앙선을 타고 꼬박 24시간 걸려야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연료가 석탄인 기차여서 코에서 시커먼 재가 묻어났다. 길이 멀다 보니 일 년에 두 번, 방학 때만 귀향했다.

-그림에 눈을 뜬 계기가 있나.

△부모와 떨어져 지내면서 사춘기를 심하게 겪었고 그림으로 풀어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이당 김은호(1892-1979) 화백에게 그림 한 쪼가리를 보냈고 문하생이 됐다. 이당 선생 옆에서 먹을 갈고 청소하고 공부를 하면서 1년을 보냈다.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 이당의 그림을 좋아해서 몇 점 올려보내달라고 해서 보내면 수표로 돌아왔던 기억이 남아있다.

-당시에 어떤 그림을 배웠나.

△이당에게 처음 받은 체본(體本)은 참새였다. 이당은 자세하고 세밀한 것이 특징인 북종화의 대가인데 당시 내 나이가 어려선지 시간이 지날수록 갑갑함이 생겼다. 남종화의 대가인 옥산 김옥진(1927-2017) 화백에게 가르침을 청하니, 이당이 워낙 대가다 보니 허락을 받고 오라더라. 그렇게 해서 옥산 선생에게 남종화를 배웠다. 지금까지도 세밀한 인물화는 북종화를 그리지만, 나머지는 생략하고 활달한 맛의 남종화를 즐긴다.

-포항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옥산 선생의 화실에서 그림을 배우다 군대에 갔고, 부모님이 계시던 포항으로 내려와 정착하게 됐다. 이 작업실에서 30년째 붙박이로 있다.

첫 개인전은 1979년 봄에 포항 도심의 ‘용 다실’에서 했다. 당시 포항 KBS 이동린 방송국장이 전시 서문을 써주었다. 경제성장과 함께 동양화가 대유행하던 시절이라 그림이 꽤 팔렸다. 울릉도에서 온 관람객이 그림값을 깎으려고 해서 젊은 치기에 팔지 않고 버린 적이 있다.

-10여 회의 개인전 중 두 차례의 독일 전시가 눈에 띈다. 독일 관람객의 반응은 어땠나.

△독일에 정착한 파독 간호사들을 많이 만났는데 눈물이 날 정도로 환대해 주었다. 고국의 향수가 묻어나선지 까치나 호랑이를 그린 빨랫방망이나 다듬잇방망이를 특히나 좋아했다. 독일 현지인은 사유나 철학이 담긴 작품에 관심을 보였고 특히 대나무 그림을 좋아했다. 나 또한 사군자 가운데 필력이 매력적인 난(蘭)과 함께 곧고 강직하면서 오랜 수련이 묻어나는 죽(竹)을 선호하는 편이라 반가웠다.

 

이형수作 ‘해월의 딸 최윤과 외손자 정순철’.
이형수作 ‘해월의 딸 최윤과 외손자 정순철’.

-영덕의 인물 3인을 조명한 전시도 주목받았다.

△호랑이 그림을 추적하다 보니 고향에도 이처럼 훌륭한 분이 있음을 깨달았다. 세계적인 여중군자 장계향은 사임당보다 더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네”를 지은 나옹선사와 대학자 목은 이색까지 3인을 그렸다. 세 명 모두 송천강이 배출한 위인이다. 상류로 가면 나옹선사가 태어난 곳이 있고 중간쯤에 장계향의 시댁인 충효당이 있으며 하류에서 목은이 탄생했다. 이토록 중요한 송천강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해 아쉽다.

-포항에서 주목해 봐야 할 인문학적 자산은.

△포항에 역사 문화자산이 부족하다고 말하는데 물신(物神)에 빠져 등한시되고 있을 뿐. 가진 것은 많은데 몰라보고 있다. 포항 역사의 대표적인 시원으로 5천 년 전 암각화를 들 수 있다.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러 곤륜산은 가지만 산자락의 귀중한 유적을 찾는 이는 드물다.

그리고 한국 근대 사상을 일군 장소인 검등골이 있다. 신광면 마북리 검등골은 동학의 제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이 화전을 일구면서 동학의 기본사상을 깨우친 곳이다. 화전의 흔적과 허물어진 담장, 항아리를 묻은 화장실터가 남아있다. 상수원 보호를 명목으로 길이 막혔지만, 번듯한 길을 내어 널리 알려야 할 곳이다.

검등골이 한국 근대 사상의 시원지라면, 경제를 일으킨 정신은 ‘롬멜 하우스’에서 찾을 수 있다. 포항제철 건립 당시 건설본부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롬멜 장군의 야전사령부 같다고 붙여졌다.

-19세기의 해월을 지금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 19세기 후반의 조선은 관직을 사고팔 정도로 그야말로 어수선한 시대였다. 지금의 시대라고 뭐 그렇게 나아졌을까. 해월은 신광 마북에서 도를 깨치고 ‘만사를 아는 것은 밥 한 그릇을 아는 것에 있다’며 밥 한 그릇을 도에 비유해 밥의 우주성을 설파했다. 그 시절 ‘사람이 하늘’이라는 인내천 사상을 설파한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고, 해월은 포항의 정신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법 하다.

강원도는 해월이 체포된 곳에 ‘마지막 피체지(被逮地)’를 알리는 표지석을 세웠다. 글을 새긴 이는 무위당 장일순으로 김지하 시인으로 그 사상이 이어진다. 체포된 곳도 비석을 세워 기념하는데 포항은 도를 닦은 중요한 장소도 저렇게 내버려 두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해월의 가족들도 화폭에 담고 있다.

△해월이 쫓길 당시 외동딸인 최윤은 죄인의 자식이라고 해서 아전과 강제로 결혼했다. 최윤의 아들 정순철은 동요 ‘짝짜꿍’을 만든 작곡가이다. 동학의 3대 교주 손병희의 도움으로 일본 유학을 다녀왔고, 방정환과 윤극영 등과 활동하다 6·25 때 납북됐다.

-역사 속 인물을 문인화 언어로 현재화시키는 작업이 인상적이다.

△하나 더 얘기하자면. 해월은 보따리 하나 짊어지고 골짝을 숨어 다니며 포교했기에 ‘최 보따리’라고 불렸다. 해월의 ‘보따리 철학’은 박이문 전 포스코 명예교수의 ‘둥지의 철학’과 닮았다. 박이문은 철학의 근간이 되는 존재 차원과 의미론적 차원에 대해 “두 개의 다른 존재가 아니라 서로 분리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존재 전체의 양면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둥지의 철학은 ‘인간은 하늘’이라는 해월의 보따리 철학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관심을 두고 화폭에 담은 인물은.

△올해는 동해안 별신굿에 대한 글을 쓰고 김석출 옹을 그렸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전위 예술가 요세프 보이스가 세상을 떠나자 그 넋을 달래는 진혼굿판을 벌일 때 김석출과 김유선 만신 부부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백남준은 “굿은 자기 예술의 시원이자 뿌리”라고 말한 바 있다.

-요즘은 어떤 작업을 하나.

△수묵 인물화 한 점에 그 사람의 삶이 담겨있다는 생각으로 인물화를 그리다가 문득 내 얼굴을 들여다보게 됐고, 나의 삶을 돌아본다는 의미에서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다양한 표정의 나를 그리고 그날 공부한 글귀를 적는다. 강요배는 “며칠간의 공부와 고뇌만으로 거대한 노동 투쟁을 그려낼 수 없다”고 했다. 요즈음은 ‘평생일점’, 일생동안 좋은 그림 한 점 그리고 간다는 심정으로 붓을 들고 있다.

이형수 문인화가는

1952년 영덕에서 태어나 동국대를 졸업했다. 현재 (사)한국서가협회 초대작가이며, 경북지회 초대 지회장과 수석 부이사장을 지냈다. 사군자를 소재로 한 ‘필묵의 즐거움(2007)’, 부처님 이야기를 담은 ‘먹빛이 마음빛이다(2008)’, 민화를 주제로 서울 인사동과 독일 베를린에서 선보였던 ‘까치는 호랑이의 외로움을 안다(2010)’,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2011)’, 100일 동안 편지 형식으로 쓴 ‘붓끝에서 피어나는 고향의 마음-심관 이형수의 수묵편지(2015)’, 영덕의 인물을 주제로 한 ‘영덕문향의 멋-심관 이형수의 수묵편지(2017)’와 ‘붓으로 그린 세월(2018)’, ‘죽도시장, 여명을 밝히는 사람들(2021)’ 등의 개인전을 열었다. 2015년부터 소셜미디어에 ‘손안의 수묵편지’를 띄우며 사람들과 소통한다.

/배은정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