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포항역이 2015년 3월 신역사로 이설되면서 현 역사(驛舍)는 사라지게 됐다. 또한 효자역에서 도심 내부로 연결되는 철도부지도 용도 폐지된다. 구 포항역은 한반도에서 드문 간선노선의 종점인 철도 종착역이었다. 부산진역에서 출발한 145km에 달하는 동해남부선 철도는 울산, 경주를 거쳐 구 포항역에 종착했다. 구 포항역은 원래부터 동해남부선 상의 역이 아니라, 일제 때 지어진 경동철도 즉, 현 대구선 상의 철도역으로 1918년 영업을 개시했다. 당시 이 철도는 협궤철도로서 국가가 아닌 경동철도 주식회사에서 관리 및 시공을 맡아 일종의 사설의 성격을 띠고 있는 노선이었다. 1928년 국철로 전환된 뒤 1939년 표준궤로 개량되면서 지금의 동해남부선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이 되었다. 도심 속의 구 포항역
지난 달 광복 70주년 기념 만주의 항일 유적지 탐방 길에 오른 적이 있다. 신의주를 떠난 우리 일행의 버스는 고구려의 박작 산성 부근의 일보과(一步過)선착장에 차를 세웠다. 일보과란 중국에서 한 발짝만 떼면 북한 땅에 닺는 곳이라는 뜻이다. 중국 땅에서 3m 거리에 있는 있는 북한의 섬 윤중도와 건너편 북한 땅을 가로 지르는 유람선을 타기 위함이다. 일행 40여명이 탄 중국 유람선은 물살을 가르며 북한 땅 가까이 가고 있었다. 이곳은 묘하게도 양쪽 모두 북한 땅을 볼 수 있는 관광 코스이다. 북한의 옥수수 밭에서 일하는 주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북한의 흰 염소 때만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고, 총을 맨 군인들이 순찰하는 모습도 가끔씩 보였다. 압록강 하구 단둥의 단교 부근의 유람선 여행 때와는 완전
지난 8월 22일 우리 측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북측에서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노동당 비서간의 전격적인 판문점 회담이 성사되었다. 지난주말 남북의 일촉즉발 위기 상황이 이 고위급 접촉을 통해 완화될 전망이다. 남북의 소위 전격적인 2+2회담이 남북의 군사충돌을 방지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남북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되는 계기가 될지는 현재로서는 의문이다. 어제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남북 고위급의 접촉 사실을 신속히 보도하면서 우리 측 대표단 이름을 호명하기에 앞서 우리의 정식 국호인 `대한민국`을 언급하기도 했다. 북한이 항상 `남조선 당국`이라고 부르던 것과는 달라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우리는 아직도 북한 대표를 부를 때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라고 지칭하
올해는 해방둥이가 벌써 나이 70이 되는 해이다. 우리 해방둥이들은 젊은 세대들이 교과서에서나 배울듯한 역사의 현장을 직접 몸으로 겪은 세대들이다. 되돌아보니 70년이라는 세월의 구비가 어제의 일처럼 기억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부분도 있다.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삶의 궤적이 파란만장하다고 생각한다. 해방 되는 해 태어나 격변기를 살아온 해방둥이인 나의 삶 역시 인고의 세월이 점철되어 있는 듯하다. 나이 6살에 1950년 6·25 전쟁의 참화를 겪었다. 시골 집 앞 신작로에는 피난민 행렬이 줄을 이었고, 인민군은 우리 마을을 점령했다. 대나무 숲으로 둘러쳐진 우리 집이 인민군 임시 본부가 된 것이다. 우리 집 사랑방에는 인민군들이 꽉 들어차고, 아침저녁으로 식사를 달라는 동냥꾼들이 줄을 이었다. 우리는
중국 우한에서 동아시아 4개국의 아시안 컵 축구 대회가 열리고 있다. 남북한을 비롯한 중국, 일본이 승패를 겨루는 동북아 친선 축구경기이다. 대한민국 여자 축구는 중국과 일본을 이겼지만 어제 저녁 북한 팀에게는 아깝게 패하고 말았다. 우리 남자 축구도 중국에 이기고 일본과는 비겼지만 내일 북한과의 마지막 한판을 남겨두고 있다. 여하튼 일본 아베의 역사 왜곡 문제로 한·일, 중·일관계가 교착되고, 남북관계가 꽉 막힌 상황에서도 친선 축구 경기는 진행되고 있으니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김창복 남자 축구 감독은 기자 회견에서 북한 축구는 `빨치산 전법`을 구사하여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했다. 축구에서 느닷없이 빨치산이 왜 등장하는가? 일부 독자는 빨치산을 북한지역
해방 70주년을 맞이하여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와 함께 만주의 항일 운동의 전적지를 찾는 기행을 떠났다. 이번 탐방의 목적은 두만강 주변의 청산리 등 항일 전적지를 찾아보는데 있었다. 우리 일행은 먼저 북한 신의주가 눈앞에 보이는 중국의 단둥부터 찾았다. 단둥은 화려한 고층 빌딩 숲이 늘어나고 밤에는 네온으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압록강 건너 신의주는 변하지 않고 3년 전의 모습 그대로이다. 단둥의 고층 호텔에서 불빛 한 점 보이지 않는 컴컴한 신의주를 바라보는 필자는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휘황찬란한 단둥의 고층 빌딩의 불빛을 바라보는 신의주 동포들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북한 신의주 쪽의 서치라이트 불빛만이 밤새도록 압록강 하구를 번갈아 비추고 있었다. 겅 건너 신의주는 침묵만 흐르는 유령
벌써 분단 7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통일을 위해서는 우리도 변해야 하겠지만 북한 당국과 주민들의 의식도 변해야 한다. 과거 남북의 교류가 활발할 시기 내가 처음 만난 북한 사람들은 나를 매우 경계하였다. 사실 우리도 그들을 경계하였지만 그들 역시 우리 이상으로 경계하고 있었다. 그들은 남한은 미국 제국주의가 지배하고, 지나친 생존경쟁으로 살기 힘든 곳으로 인식하고 있어 놀랐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회주의체제 하에서 잘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료교육, 무료진료`을 받고 있다는 자부심까지 보였다. 우리가 예상한 대로 북한 주민들은 조직적으로 통제되고 사상 교육과 전 매스컴이 연일 선전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북한 주민들의 의식은 상당히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탈북자들의 증
신당 창당설이 여러 갈래로 제기되고 있다. 여당의 친박과 비박의 갈등은 유승민 원내 대표의 사퇴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새정연의 친노와 비노의 갈등은 탈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주 박준영 전 전남지사는 새정연은 `사망선고를 받았다`고 비난하면서 탈당을 선언했다. 이미 탈당하여 광주보선에서 당선되어 정치적 생명을 회복한 천정배 의원은 신당 창당을 가장 먼저 선언하고 사람을 모으고 있다. 정대철 고문도 새정연에는 탈당할 의원이 20여명이나 된다고 탈당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들 신당 파들이 모두 같은 배를 탈지 다른 배를 탈지는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신당 창당의 시나리오는 이미 여러 갈래로 예상하고 있다. 과거 DJP 연합이라는 3당 합당과 같은 여야진영을 뛰어 넘는 합당의 시나
후배 김진향 교수가 `개성 공단 사람들`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그의 개성 공단 근무 4년의 귀중한 체류 경험을 솔직하게 책에 담았다. 2002년 시작된 개성 공단은 남북의 근로자 5만3천명이 오늘날 까지 호흡을 같이 하는 `기적적인 공간`이다. 이 책은 북한체제나 북한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막연한 오해을 불식하고 그들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 나도 10여 년 전 공무로 북한 땅과 해외 여러 회합에서 북한 학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가끔 그들과 사적인 대화 까지 할 수 있었음은 귀중한 체험이다. 그들과의 짧은 만남과 대화가 그들의 속내까지는 알 수 없지만 평소의 나의 생각과 `다른`그들의 모습을 접할 수 있었다. 사람의 사고나 의식은 그가 처한 환경이나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거부권 행사로 또 다시 정국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대통령의 법안 거부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리 행사이지만 원내대표에 대한 사퇴 문제는 당내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의 비박의원 20여명은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에 반대하고, 친박세력은 그의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야당에서는 대통령의 원내대표 퇴진 요구는 `찍어 내기`식 폭거로 비난하고 있다. 여당 김무성 대표는 이 문제에 대해 어정쩡한 행보만 보이고 있다. 그는 같은 배를 탄 원내대표의 입장을 두둔할 수도 없고,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없는 입장인 것 같다. 그는 처음부터 이 문제에 대해 `대통령과 원내대표가 싸우면 누가 이기겠나`하는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했다. 현재도 대통령과 청와대는 유승민의 자진 사퇴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부착하지 않고 공개 석상에 나타나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며칠 전 북한 고사포 군관 학교 방문과 평양 생물기술 연구원 시찰 시 배지를 달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이러한 파격적인 행적을 두고 그 배경에 관한 해석도 분분하다. 일부에서는 집권 4년차인 그가 홀로서기를 과시한 행동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일종의 해프닝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남북관계가 순조로울 때 북녘 땅의 사람을 많이 만난 적이 있다. 나는 그들과의 처음 만남에서 김일성 배지를 달고 나타난 그들의 모습에 상당히 긴장되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북한 뿐 아니라 중국이나 유럽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 중에는 왼쪽 가슴에 김일성 배지를 달지 않은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북한의 종교
해방 70주년 광복절이 다가 오고 있다. 광복 70년은 사실상 분단 70년의 고통의 세월이다. 민족의 완전한 광복은 민족의 통일에 있는데 아직도 통일의 물꼬는 트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아시안 게임 때는 북한의 권력 실세들이 인천을 다녀갔고 곧이어 남북의 대화가 재개될 듯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남북관계는 군사적 대결구도로 치닫고 있고 남북의 대화는 속개되지 않고 있다. 최근 남북이 심양에서 합의 했던 민간 주최의 6·15 공동 선언 기념행사도 이런 저런 사정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이번 8·15 광복절 남북 공동 행사는 반드시 복원되기를 소망한다. 2차 대전 후의 지구상의 분단국은 모두 통일이 성취되어 분단의 상처를 극복하고 있다. 우리와 입장이 비슷했던 독일은 25년 전인 1990년 통일이 이룩되어
엄격히 통제되는 북한 땅에도 한류(韓流)라는 바람이 불고 있다. 한류는 1990년대 말부터 중국에서 일기 시작한 한국 대중문화의 열풍이 동아시아 일대로 확산된 문화 현상이다. 2000년 이후에는 한국의 드라마·가요·영화 등 대중문화뿐 아니라 김치·고추장·라면·가전제품 등 한국 관련 제품의 이상적인 선호현상까지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한류가 북한 땅에도 남한의 노래를 조심스럽게 선호하는 바람으로 일고 있다. 평양에서는 벌써 남쪽의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유행가를 부르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술을 좋아하는 북녘 사람들이 한동안 `찰랑 찰랑 잔에 담긴 위스키처럼`이라는 노래를 선호했다는 탈북자 증언도 있다. 2007년 북한 금강산 호텔 맨 위층 맥주홀에서 북한의 아리따운 여성 복무원이 구성지게 부르던
메르스(Mers)의 충격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지난해 4월 15일 세월 호 참극이 아직도 상처로 남아 있는 데 충격적 사태가 다시 벌어 졌다. 메르스의 공포 앞에 정부가 신속한 대책을 수립치 못하고 허둥대는 모습이 그 때와 너무 닮았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격으로 소리는 요란하지만 실효가 없는 모습도 과거와 같다. 국민 총생산 10위권의 대한민국이 왜 이 같은 후진국적 사태가 빈발하는가. 우리의 국격(國格)을 위해서라도 근원적이고 철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할 시점이다. 지난 해 세월호 사건 때 정부의 초동 대처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선장은 도망가고 해양경찰과 해양수산부, 재난본부가 겉돌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메리스 충격에 대한 질병 대책본부와 국민안전처, 보건복지부의 대처방식이 세월 호
북한 김정은 제1국방위원장의 친형인 김정철의 모습이 런던에서 포착되었다. 스위스 베른에서 잠시 유학한 그가 에릭 클랩톤의 공연장을 찾은 것이다. 그는 2011년에도 싱가포르의 클랩톤 공연장에도 참석할 정도의 광팬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통제되고 폐쇄적인 사회하에서 김정철의 모습은 한 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수령의 친형이 `세상을 바꾸자`(change of the world)고 노래하는 스타의 공연장을 찾은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한 일이다. 북한의 최고 통치자의 권력의 승계과정은 봉건 왕조 체제의 세습 형태와 같다. 왕자 중에 선왕의 뜻에 가장 합치하는 인물이 왕세자가 되고, 권력의 이양 시기는 선왕의 뜻에 따라 결정된다. 500여년 조선 왕조사에서 왕이 재임 중에도 왕권을 이양한 적도 있지만
북한의 반당·반혁명 분자 숙청은 정적의 제거 수단이다. 김일성 공산 정권 수립 후 60여 년 동안 반대파를 제거하는 반혁명 종파 사건은 수없이 많이 자행되었다. 6·25 전쟁 직후 남로당 출신 박헌영은 미국의 스파이 누명으로 친소파 허가이는 반혁명 분자로 낙인찍혀 숙청되었다. 1956년 최창익·박창옥의 숙청도 대표적인 반혁명 종파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1976년 당시 부주석 김동규와 사회 안전 비서 류장식도 종파 분자로 몰려 숙청되었다. 북한의 반혁명 종파 사건은 김정일 정권하에서도 계속되었다. 2009년 화폐 개혁에 실패한 당 재정 부장 박 남기의 처형 등이 대표적인 숙청 사건이다. 2011년 김정일 사망 후 북한에서 김정은의 정치적 불만세력에 대한 숙청은 더욱 노골화되었다. 지난 2012년 7
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는 최근 북한의 급격한 변화를 예측하고 있다. 김정은의 북한이 과거 중국의 등소평 시대 보다 빠르게 변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최근 홍콩에서 CNN과 가진 한 인터뷰에서 “할 수만 있다면 가진 돈 전부를 북한에 투자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싱가포르와 홍콩에 거주하면서 동양적 전통과 가치를 선호하고 있다. 그는 이미 2012년 북한에서 발행한 금화를 대거 매입했으며, 지난 1월에도 북한의 미래를 낙관한 적이 있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남북통일이 머지않아 가능하다`고 언급하여 우리의 흥미를 끌고 있다. 로저스는 1942년에 미국에서 출생하였다. 옥스퍼드대학교 대학원 석사를 마치고 1969 퀀텀 펀드를 설립하여 많은 부를 축적하여 세계적 투자의 귀재가 되었다. 현재 로저스 홀
일반적인 예측과는 달리 새정치연합이 4곳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완패하였다. 야당 지지기반이 강한 관악 을은 물론 광주에서도 새정연은 한 석도 얻지 못했다. 성완종의 부패 스캔들이 폭로된 호재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참패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야당의 이러한 참패 원인은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새정연의 보선 패배에는 야권의 후보 분열이 크게 작용하였다. 사실 야당의 전통적인 텃밭인 관악 을, 광주에서는 탈당한 정동영과 천정배가 출마함으로 일찍부터 2:1의 선거 구도가 자리 잡았다. 새정연은 그래도 선거 막판에는 야당 후보에게 표가 몰릴 것을 막연히 기대 했으나 그 같은 예측은 빗나가고 말았다. 물론 이들의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사전에 막지 못한 당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정치 자금 리스트가 정국을 강타하고 있다. 대통령의 남미 순방도 보궐 선거도 뉴스의 뒷자리로 밀리고 있다. 고인의 윗 주머니에서 8명의 명단과 정치 자금인지 뇌물인지 모를 액수가 공개되고, 자살직전의 언론사의 녹취록까지 전면 공개되었다. 문제의 리스트에는 전 현직 비서실장 3명, 3명의 자치 단체의 장, 전 사무총장, 현 총리가 포함되어 있다. 그가 뿌린 액수가 7억에서 부터 3천만원으로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검찰에서는 증거가 드러나고 있는 총리와 경남지사부터 소환할 전망이 우세하다. 아마 두 분은 너무 억울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완구 총리는 리스트 상 액수가 가장 적은데도 정치적 상처는 크기 때문일 것이다. 홍준표 지사 역시 리스트의 다른 사람은 모두 친박 실세
정부가 부패와 비리척결을 선포한지 달포 만에 그 선언의 당사자인 총리가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되었다.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장관과 경찰을 담당하는 안행부 장관을 배석하고 자원비리 관련 부패척결을 선언하던 총리의 비장한 모습이 오버래핑 되고 있다. 몇 달 전 아들의 병역 비리, 언론에 대한 부적절한 처신 등으로 아슬아슬하게 인사 청문회를 통과한 총리가 검찰의 수사를 받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고인이 된 성완종 전 경남 기업회장의 뇌물 폭로 리스트는 그 진위를 떠나 현재 정치권의 폭풍이 되고 있다. 내각의 총리와 전 현직 청와대 비서실장, 현직 도지사 3명 까지 포함된 이 리스트가 검찰 손에 맡겨져 있다. 메모와 녹취록에 대한 조사도 사실상 쉽지 않지만 설령 그 결과가 발표되더라도 국민들이 그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