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과학이나 수학 같은 이공 계열과는 다른 점이 있다. 맞고 틀리다의 정답이 없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예술의 역사를 통틀어 보면 많은 대립과 논쟁이 있어왔다. 그리고 이러한 논쟁은 에너지의 낭비로 끝나버린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조의 음악을 등장시키는 촉매제가 되었다. 예를 들면 음악사 백년전쟁이라고 불리는 브람스의 절대음악파와 바그너의 극음악파의 대립은 말러와 부르크너와 같은 새로운 음악형태를 출현시켰으며 러시아의 민족음악을 고수하던 ‘러시아 5인조’와 차이콥스키를 위시한 ‘러시아 서방파’의 대립은 프로코피에프와 쇼스타코비치
쇼팽은 처음 바르샤바를 떠난 후 비엔나에 정착했으나 러시아 제국주의와 동맹이었던 비엔나 사람들은 쇼팽이 폴란드인이란 이유로 ‘저항한 국가의 작곡가’라며 그의 음악을 외면했다고 한다. 그 후 프랑스 파리로 음악 활동의 근거지를 옮기게 된다. 이 후 쇼팽이 영국을 방문하려 한 적이 있었는데 프랑스 비자가 없어 어려움을 겪게 됐다. 쇼팽은 망명자 신분이었던 것이다. 이에 러시아 정부는 폴란드가 러시아의 식민지이므로 쇼팽만 인정한다면 ‘러시아 국민작곡가’로 선정해 러시아 비자를 발급하겠노라는 제의했으나 쇼팽은 단호히 거절했으며 이에 러시아
필자는 오래된 것을 좋아한다. 길을 걷더라도 잘 정돈된 프랜차이즈 상점들이 즐비한 거리보다 문패가 붙어 있고 대문에 녹이 쓴, 무엇이 나올지 모를 예측불허의 오래된 골목을 헤매기를 좋아한다, 경주의 첨성대 앞을 거닐자면 먼 과거에도 누군가가 나와 같은 자리에 서서 저 건축물을 바라보았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고 이 후에도 누군가 같은 자리에 서리라고 생각하면 세월의 무상함마저 느껴진다.클래식 음악의 매력도 이와 비슷한데 오래전 누군가가 작곡한 것을 악보를 보며 연주한다고 생각하면 그 과정들이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은 ‘무엇을
말러는 위대한 작곡가가 되기를 열망하던 친구의 비극적인 죽음을 보며 안정적인 음악가로서의 생활을 위해 지휘자가 되려고 결심한다. 그리고 당시 작곡가로보다 지휘자로서 더욱 명성을 얻는다. 그는 빈 필하모닉과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극장 등 최고의 무대에 서는 지휘자였으며 차이콥스키가 그의 오페라 ‘에프게닌 오네긴’의 초연을 직접 맡아줄 것을 부탁하는 등 지휘자로서의 커리어가 매우 높았다. 말러는 ‘언젠가 나의 시대가 올 것이다’라고 했다. 이 말은 자신의 작품이 당시에는 기대만큼 평가받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필자뿐만 아니라 고전적 교향곡
오시카 마사코가 쓴 ‘누구나 마지막에 꾸는 꿈,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다’란 책을 보면 죽음이란 누구나 한번은 겪어야 할 경험이지만 대부분이 원하지 않음에도 집을 떠나 병원에서 객사(?)하는 사람이 많은 슬픈 현실을 언급한다.필자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골목길에 초상이 났음을 알리는 근조등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죽음을 알리는 근조(謹弔)등은 빨강과 파랑으로 예쁘게 구성되어 기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으며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가도 근조등이 달린 문 앞을 지나갈 때면 본능적으로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어린 날의 기억이 있다.20세기 최고
대문호 괴테(1749∼1832)는 “음악은 모든 예술 장르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라고 했다.하지만 음악가들에게는 음악이라는 예술의 형태에 늘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음악에는 구체적인 형태가 없는 것이다. 지금은 음향을 저장하는 매체가 있어 음악을 재생하는데 문제가 없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음악은 연주가 끝나면 실체 없이 증발하는 존재였다. 지금은 주로 생략되어 연주되지만 소나타형식의 제시부가 반복되어 연주되는 것도 1주제와 2주제를 기억해 달라는 작곡가의 소망이었다. 생텍쥐페리(1900∼1944)의 소설 ‘어린
자동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타이어와 브레이크라고 한다. 타이어는 어딘가로 잘 달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브레이크는 그것이 지나치지 않도록 느려지거나 멈추게 하는 것이니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서로 대조되는 기능을 가졌다고 볼 수 있겠다.필자는 ‘보수’와 ‘진보’의 개념도 이것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진보는 사회가 변화하여 발전할 수 있도록 추진력을 부여한다면 보수는 변화가 지나치지 않도록 과거로부터의 소중한 것을 지키고 중요한 것이 제외되지 않도록 충고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진보와 보수의 절충이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지
학생들에게 음악사를 가르치다 보면 다른 교과에 비해 좋은 점이 있다. 역사를 가르치는 이들은 다 느끼는 것이겠지만 기록된 역사는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어나 영어 등 다른 교과를 가르치는 분들이 급변하는 시사적인 내용이나 새로 나온 문학작품을 탐독하느라 골치를 앓는 모습을 보면 시사를 읽는 능력이 부족한 필자로서는 다행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하지만 음악사를 가르치면 불편한 점도 있다. 과거의 내용, 특히 음악가의 생애를 다룰 때에는 문헌으로만 확인할 수 있기에 여러 가지 해석과 학설이 있을 수 있어 학생들에게 잘못된 지식을 전달
청춘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젊은 시절을 그리워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돌이켜 보면 젊은 시절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소설이나 영화의 주인공을 동일시하며 밤 세워 이유 모를 아픔으로 밤을 세는 그런 시절이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으로 청소년들이 ‘속앓이’를 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하지만 필자는 젊은 시절, 음악으로 인해 아픔으로 밤을 보낸 경험이 있다. 바로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1797-1828)의 음악 때문이었다. 특히 가곡집 ‘겨울 나그네(Winterreise) D.911’의
학생들과 음악사 수업을 하던 중 다음과 같은 토론 주제를 준 적이 있다.대작곡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가?결론은 첫째, 많은 곡을 작곡하여야 한다. 둘째, 다양한 장르의 곡을 작곡하여야 한다. 셋째, 미래의 양식을 지향할 수 있는 진보적인 형식이 있어야 한다, 등이었는데 조건에 맞는 작곡가를 얘기하다 보니 가장 이 조건에 걸 맞는 작곡가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1685∼1750)였다. 현재 남아있는 작품 번호만 1천100여 개에 달하며 그가 활동하였던 바로크 시대는 출판업이
모리스 바링(1874∼1945)이 두 의사를 등장시켜 만든 가상의 유명한 대화가 있다.의사1: 임신중절에 관한 견해를 듣고 싶소. 아버지는 매독환자이고 어머니는 결핵에 걸렸소. 이미 자식을 넷이나 낳은 경험이 있는데 첫째는 맹인, 둘째는 사산, 셋째는 농아, 넷째는 결핵에 걸렸지! 당신이라면 어찌하겠소?의사2: 임신중절을 해야겠군요.의사1: 그렇다면 당신은 베토벤을 죽였소.위의 이야기는 ‘베토벤 오류’라고도 불리며 많은 버전의 다른 이야기로도 소개된다. 낙태 반대론자들에 의해 주로 인용되는 이야기인데 사실과는 다르다. 베토벤은 다섯
인간은 어디에서 왔으며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이며, 결국 어디로 가는가? 예술에서는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묻는다. 클래식 음악에서도 예외 없이 해당되며,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라는 질문에는 신에 대한 물음과 인간의 탄생과 죽음으로 표현되었으며, 왜 살아가는가? 라는 질문에는 ‘사랑’이란 주제로 그려졌다.우리가 기억하는 사랑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가장 열광하는 사랑은 남녀 간의 순수한 사랑이며, 특히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 불행해 질 것이 뻔한 운명임을 알면서도 마법처럼 이끌려갈 수밖에 없는 사랑을 우리는 기억한다.
세상에는 많은 음악들이 있고 그 음악 안에 함축된 내용은 사람마다 인격이 다르듯이 모두 다르다. 지금까지 음악을 벗으로 살아오면서 필자의 마음을 움직였던 작품과 그것을 작곡하였던 작곡가의 마음을 되짚어보고, 우리가 음악시간에 미처 배우지 못하였던 작곡가의 인생을 소개하며 글을 읽는 분들의 영혼이 쉴 수 있는 소중한 쉼터를 제공하고자 한다.사람들이 주로 듣는 클래식 음악이 바로크시대부터라고 생각할 때 참으로 많은 작곡가들이 이 세상을 살다 갔다. 그 중 잊혀진 작곡가가 더 많겠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작곡가들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특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