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년의 구스타프 말러.

말러는 위대한 작곡가가 되기를 열망하던 친구의 비극적인 죽음을 보며 안정적인 음악가로서의 생활을 위해 지휘자가 되려고 결심한다. 그리고 당시 작곡가로보다 지휘자로서 더욱 명성을 얻는다. 그는 빈 필하모닉과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극장 등 최고의 무대에 서는 지휘자였으며 차이콥스키가 그의 오페라 ‘에프게닌 오네긴’의 초연을 직접 맡아줄 것을 부탁하는 등 지휘자로서의 커리어가 매우 높았다. 말러는 ‘언젠가 나의 시대가 올 것이다’라고 했다. 이 말은 자신의 작품이 당시에는 기대만큼 평가받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필자뿐만 아니라 고전적 교향곡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이 말러의 교향곡을 처음 들으면 대부분 난해하여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당시의 평가는 약간 달랐다. 오히려 말러가 사용했던 선율은 너무 단순하고 서민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문제는 선율이 단순한데 비해 화성의 메커니즘은 매우 복잡하고 악장의 구성이 확대되고 배치가 철학적 구성을 지니고 있는데다 연주 시간이 매우 길어 보통의 청중들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예술가의 시련은 같은 렌즈를 보더라도 시력에 따라 사물이 다르게 보이듯이 시대에 따라 받아들여질 수 있는 대중들의 스펙트럼이 다르다는 데 있다. 가장 복 많은 예술가는 시대의 스펙트럼과 자신의 작품이 일치하는 인물일 것이다. 말러의 작품도 당시에 외면당했으며 20세기에 들어와 유럽에 불어 닥친 반유대주의의 광풍으로 고의적으로 제외된 측면도 많다. 말러의 음악은 세기말적인 탐미주의가 가득하며 희망과 절망, 죽음과 부활, 열정과 염세주의 등 철학적이고 모순된 내용들로 가득 차 있으며 이전 교향곡 작곡가들의 서사적이고 논리적인 플롯을 완전히 벗어난다.

그는 보헤미아의 유태인이었다. 당시 유태인들이 받던 차별에서 그도 자유로울 수 없었으며 칼리슈테에서 태어나 작은 농촌 마을인 이글라우에 이사해 성장했다. 이글라우는 당시 헝가리-오스트리아 제국의 군인들이 프라하에서 빈으로 이동하던 길목에 있었으며 이러한 환경적인 요소들은 말러의 음악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의 음악은 ‘교향곡 7번’ 5악장에 나타나듯 금관악기와 타악기의 ‘군악적인 요소’와 시골 마을에서 성장한 덕분에 ‘농민의 춤곡’인 란틀러(Landler)를 비롯한 민중의 춤과 관련된 요소들이 많이 나타난다. 그리고 유태인의 종교의식인 ‘시나고그’의 영향을 받은 ‘유태인의 음악적 요소’들이 목관악기 곳곳에 나타난다. 말러는 아버지가 선술집을 운영해 거리를 떠돌던 장사꾼들이 자주 드나들어 어린 시절 그들이 즐기던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말러의 작품에는 위에서 언급한 민중들의 생활 요소들이 결합되어 있으며 이전까지 들을 수 없었던 새로운 음향으로 표현된다.

필자가 가장 사랑하는 말러의 작품이 있다. 바로 말러의 ‘아다지에토’라고도 불리는 ‘교향곡 제5번’의 4악장이다. 말러는 뒤늦은 나이인 40세에 그토록 열망하던 20세 연하의 아름다운 여인 알마 쉰들러와 결혼한다. 그녀는 결혼 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작곡가였던 A.폰 켐린스키 등과 염문을 뿌리던 예술가들의 뮤즈였으나 말러의 적극적인 구애로 결국은 결혼한다. 결혼 6년 뒤 장녀가 사망하는 등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했으나 이 곡은 그녀와 결혼하고 난 후 가장 행복한 순간에 작곡된 곡이다. 바그네리안적인 대규모 편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하프와 현악 합주로만 구성돼 사랑을 노래한다. 마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가 계속해 노래되며 사랑을 절정으로 이끌며 행복한 사랑을 노래하다가도 비극적인 운명을 암시한다. 현실적인 사랑을 넘어 죽어서도 계속될 것 같은 불멸을 노래한다.

말러는 19세기 말 교향곡이 꺼져가려고 할 때 교향악의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며 새로운 생명을 부여했으며. 교향곡의 형식은 전통을 따랐으나 그 음악적 내용은 표제적인 모습을 담았다. 베토벤이 음악에 자유와 정신을 심었다면 말러는 그가 경험했던 인간 본연의 모습들을 음악에 담았으며. “중요한 것은 동시대 사람들의 생각에 휘둘리지 않고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단호하게 가는 것이다”라고 그가 말한 것처럼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교향곡의 마지막 숨결을 이끌며 교향곡의 아름다운 가치를 묵묵히 세상에 외친 사람이다. /문양일 포항예술고 음악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