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티아데 모임 광경.

청춘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젊은 시절을 그리워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돌이켜 보면 젊은 시절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소설이나 영화의 주인공을 동일시하며 밤 세워 이유 모를 아픔으로 밤을 세는 그런 시절이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으로 청소년들이 ‘속앓이’를 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하지만 필자는 젊은 시절, 음악으로 인해 아픔으로 밤을 보낸 경험이 있다. 바로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1797-1828)의 음악 때문이었다. 특히 가곡집 ‘겨울 나그네(Winterreise) D.911’의 24곡으로 구성된 곡들마다 실연으로 인해 방황을 선택한 고뇌하는 영혼의 아픈 모습이 녹아 있으며 그 속에서 구원을 찾고자 하는 희망의 메시지가 보인다. 이 곡은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제목이 잘 못 번역되었다. ‘겨울여행’으로 해석되어야 정확하지만, 곡을 감상해 보면 오역된 제목이 오히려 더 잘 어울린다.

이 곡의 가사는 슈베르트의 친구였던 시인 ‘빌헬름 뮐러(Wilhelm Muller,1794-1827)’가 당시에 겪었던 실연의 아픔을 시로 표현한 것을 슈베르트가 책상 위의 원고를 발견하고 연가곡이란 모노드라마로 완성한 것이다. 슈베르트의 가곡은 성악만 노래하지 않는다. 피아노는 반주의 위치를 넘어서 때로는 손을 잡고, 때로는 경쟁하며 극적인 드라마를 표현하는데 24개의 곡 모두가 아름답고 뛰어나다. 특히 1곡인 ‘잘자요(Gute Nacht)’ 와 5곡인 ‘보리수(Der Lindenbaum)’ 11곡인 ‘봄의 꿈(Fruhlingstraum)’ 은 사랑을 아름답게 노래하며 13곡 ‘우편마차(Die Post)’ 18곡 ‘폭풍우의 아침(Der Sturmische Morgen)’은 슬픔 속에서도 영혼의 구원을 갈구하는 희망이 엿보이는 곡이다. 전곡을 감상할 시간이 부족하다면 앞 서 소개한 다섯 곡은 꼭 들어보길 권한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 ‘미완성 교향곡’인 것처럼 그의 인생도 다른 사람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31년’의 짧은 삶이었다. 다른 작곡가에게도 미완성으로 끝난 작품이 많지만 ‘미완성(Unfinished)’이란 제목으로 그의 교향곡이 사랑받는 이유가, 그의 인생 또한 이 교향곡의 제목과 매우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인생에는 빛과 어둠의 양면성이 있었다. 어두운 면은 바로 가난과 열등감이었다. 그는 콤플렉스가 많았다고 한다. 키가 매우 작았으며 시커먼 피부에 외모가 너무나 볼 품 없었다. 그리고 가난하여 평생의 대부분 자신의 피아노를 가져보지 못했다. 1823년 그의 자작 연주회가 성공을 거두어, 적지 않은 돈을 벌어 그토톡 원하던 자신의 피아노를 장만하였으나 그 해 11월 세상을 떠나 그는 일생동안 자신의 피아노를 8개월밖에는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기타로 작곡된 작품들이 매우 많으며 실제로 가곡 작품들 중 기타 반주가 피아노보다 더 잘 어울리는 곡들이 매우 많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서 밝은 면은 바로 친구들이었다. 알고지내는(?) 친구들이 아니라 슈베르트의 재능을 사랑하고 미래를 걱정해주는 진정한 친구들이었다. 그의 친구들은 당시 빈의 예술문화계를 이끌어 가던 다양한 장르의 전문가들이었으며 슈베르트의 작품을 이해하고 사랑하였으며 작곡가로서의 슈베르트를 세상이 알아주길 바라는 높은 예술적 소양을 가진 친구들이었다. 당시 출판업이 활발하여 높은 인세 수입을 올리는 작곡가들도 있었으나 슈베르트는 경제적인 수완이 거의 없었다. 이에 친구들은 밤마다 슈

슈베르트의 초상.
슈베르트의 초상.

베르트의 사적인 음악회를 열어주기로 계획한다.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즉 ‘슈베르트의 밤’이라고 부르며 일주일에 두어번씩 사교적인 연주회를 열어 어쩌면 발표되지 못하고 사라질 뻔한 많은 작품들이 이 연주회를 통해 발표되었으며, 이 밤의 음악회는 슈베르트에게 삶의 큰 삶의 활력이 되어 다음 작품을 구상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이유를 주었다. 슈베르트의 친구들 중 ‘프란츠 폰 쇼버’는 경제적인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독일 문학에 정통하여 모임에서 독일 문학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그 덕분에 슈베르트는 새로운 시를 접해 끊임없는 영감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며 당대의 유명 성악가 ‘요한 미하엘 포글’은 슈베르트 보다 24살이나 많았지만 슈베르트의 신작들을 모임에서 꾸준히 연주하여 슈베르트와 작품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슈베르티아데의 모임에 화가들도 참석하여 당시의 그림들이 제법 많이 남았 있는데 그 그림에서 피아노를 치는 사람은 슈베르트이며, 노래 부르는 사람은 포글이다.

슈베르트는 감성과 떠오르는 찰나의 영감으로 곡을 만드는 작곡가였다. 그의 작품에는 베토벤의 작품처럼 환희에 찬 승리나 기승전결의 서사적인 구조가 중요하지 않다. 주로 순간적인 악상으로 작곡하였으며 곡을 쓰는 시간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악상이 떠오를 때면 친구와 식사 중 메뉴판에도 음표를 그렸으며 잠을 자던 중 악상이 떠올라 밤새 작곡한 일도 많았다.

계획적으로 곡을 쓰지 않았으며, 새로운 곡이 떠오르면 바로 착수하였기에 곡을 쓰다 다음으로 미루는 경우가 많았으며 건망증이 매우 심해 자신이 쓰던 곡을 잊어버린 경우도 많아 미완성 교향곡 이외에도 완성되지 못한 작품이 많이 남아있다.

이와 같이 규칙적인 생활이 되지 않았으므로 그가 가졌던 유일한 직업이던 초등학교 교사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교사를 그만 둔 후 가난한 생활은 더욱 심해졌으며, 그가 사랑한 유일한 연인이었던 ‘테레제 그루프’와도 그녀 아버지의 격렬한 반대로 헤어지게 되었다. 이 후 슈베르트에게는 ‘음악과 친구’ 두 가지만 남게 되었다.

슈베르트는 베토벤과 거의 동시대를 살았다. 그가 그토록 존경하던 베토벤이 사망한 후 일 년 후에 그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슈베르트의 음악을 베토벤보다 훨씬 이후의 작곡가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베토벤의 음악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는 것인데 그것을 슈베르트 음악의 ‘여성성’과 ‘감수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당시의 음악에서 베토벤은 대형으로 기획되어 제작된 블록버스트 음악이었다면 슈베르트의 음악은 드라마가 잘 만들어진 독립영화였다.

슈베르트가 살던 시대는 정치적으로 안정된 시대가 아니었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후 총리 메테르니히(Klemens F. von Metternich·1773-1859)체제에 의해 정치적 자유에 대한 열망이 억압되고 언론의 자유가 통제되던 독재의 시기였다. 나폴레옹 전쟁 사후 처리가 논의되던 빈 회의가 열렸던 1815년부터 이 후 약 30년간의 시기를 ‘비더마이어(Biedermeier)의 시대’ 즉 자유와 해방 같은 표현은 금지되고 평범한 소시민적 삶을 추구하는 시대라고 얘기하는데 베토벤이 교향곡 9번 4악장에서 쉴러의 시를 ‘자유의 송가(An die Freiheit)’로 연주하지 못하고 ‘환희의 송가(An die Freude)’로 제목을 바꿔 발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시기의 작곡가들은 예술의 주제를 외적인 사회현상에서 찾기 보다는 주관적인 작곡가의 내면의 감정에서 찾았다. 즉 안락하고 안정적인 시민 문화를 찾던 시기였다. 그래서 당시 가장 활기를 띤 장르가 소규모의 음악인 실내악과 예술 가곡이었다.

요한 미하엘 포글의 초상.
요한 미하엘 포글의 초상.

슈베르트는 베토벤을 닮고 싶어했다. 그는 시에 음악을 붙이는 예술가곡을 무려 650여곡이나 작곡하였지만 베토벤과 견줄 만큼 많은 기악곡들도 남겼다. 하지만 감상해보면 베토벤의 음악과는 분명히 구분된다. 슈베르트의 실내악곡은 악기로 연주되는 가곡이라고 보면 된다. 악기의 표현과 효과에 집중하기 보다는 악기특유의 음색으로 무엇인가를 노래하려고 했다. 필자가 가장 즐겨듣는 슈베르트의 가곡은 ‘그대는 나의 안식(Du bist die rhu D.776)’이다. 이 노래를 들을 때면 누군가에 기대어 지친 영혼을 쉰다는 느낌을 받는 편안한 곡이다. 슈베르트의 기악곡에서도 이러한 느낌을 받는다. ‘피아노 트리오 D.929 2악장 Andante con moto’,‘아르페지오네 소나타 D.821’과 같은 실내 기악곡을 감상해 보면 악기로 연주되기 위해 작곡되었지만 듣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가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너무나 아름답고 호소력이 강한 곡이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위로받기에 좋은 음악이다. 그의 음악에는 열광보다는 감동이, 장엄함보다는 부드러움이 있다. 그는 친구들을 좋아했고 친구들과 함께했던 순간만큼은 외로움을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음악을 이해하는 이들이었기에 음악을 같이 할 수 있어 더욱 행복했을 것이다. “벗이 애꾸눈이라면 나는 벗을 옆얼굴로 바라볼 것이다”, “진정한 친구를 만든다는 것을 행복이다. 그리고 아내를 진정한 친구로 만든다는 것은 더욱 큰 행복이다” 이 말은 친구를 좋아했던 슈베르트가 남긴 말이며, 그가 어떤 사랑을 하고 싶어했는지도 잘 녹아 있는 말이다. /문양일 포항예술고 음악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