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씨는 아까시 냄새에 재채기를 한다. 핸들을 잡은 손에 햇살이 내려앉는다. 졸음이 향기롭게 번져가는 버스 안, 봄빛이 환하다. 쪽잠 자는 여고생 숙이가 자꾸 뒤척이는 것도, 칼빈을 꼭 쥔 옆집 박 씨 손이 덜덜 떨리는 것도 거울로 다 보고 있다. 무서운 꿈이 저들을 짓누를까봐 김 씨는 재빨리 기어를 변속한다. 버스가 덜컹거릴 때마다 가슴도 함께 흔들린다. 도청 지나 광주천 옆을 달리자 물장구치는 아이들이 보인다. 물비늘 위로 언뜻 무지개가 비친다. 가족들과 소풍 앉던 자리에 싸리꽃이 고봉밥으로 부풀어있다. 김 씨는 마른 침을 삼킨다. 이제 화순이 가깝다. 잠 깬 숙이가 더께 낀 손으로 주먹밥을 먹는다. 기름도 안 바른 맨밥을 넘기다 체할까봐 김 씨는 천천히 액셀을 밟는다. `아야 싸목싸목 씹어 묵어라
지난 한 주간 세상이 시끄러웠다. 동거하던 선배를 흉기로 잔인하게 살해한 후 열흘에 걸쳐 사체를 훼손해서 유기한 살인범 조성호 때문이다. 경찰이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했는데 언론과 대중은 하나같이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경악했다. 그 반응들을 보면서 부디 더 많은 범죄자들의 얼굴이 공개돼 `악`이라는 것이 얼마나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가장 끔찍한 악은 가장 선한 이웃의 얼굴로 다가온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보며 깨우친 `악의 평범성`을 조성호를 통해 다시 확인했다. 악의 평범함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악의 천연덕스러움`이다. 조성호는 선배의 시체를 집 안에 둔 채로 SNS에 10년 뒤 인생계획과
5월 5일은 어린이날. 노랫말처럼 “어린이들 세상”이다. 그런데 요즘 어린이들을 위한 세상이 있기는 한지 모르겠다. 학원과 과외, 영어 유치원 등 사교육에 짓눌린 아이들의 괴로움은 물론이고, 매일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아동 학대와 존속 살인, 미성년 대상 성범죄 따위 소식들은 아이들에게 “이 세상이 너희들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얼마 전 강남 일대에서 부모들이 초등학생 자녀들에게 `머리 좋아지는 주사`를 맞게 해 화제가 되었다. 또 어떤 부모들은 아이의 영어 발음을 좋게 한다며 짧은 혀를 늘이는 설소대제거술을 시키기도 했다. 온갖 괴상한 일들은 다 강남에서 일어난다. 하여간 강남이 문제다. 아이들을 무슨 표본실의 청개구리처럼 다룬다. 주사 맞히고 혀 늘이면 아인슈타인이 아니라
가수 박정현과 뮤지컬 배우 홍광호가 함께 부른 `Come what may` 영상을 보는 일로 요즘 하루를 열고 닫는다. 영화 `물랑 루즈`에서 니콜 키드먼과 이완 맥그리거가 부른 것보다 훨씬 낫다. 박정현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공주를 연상케 한다면 홍광호는 왕자까지는 아니고 믿음직한 심복 또는 가난해도 꿈 크고 정직해 공주의 마음을 얻는 나무꾼 정도로 보인다. 한없이 다정한 눈빛으로 서로를 보며, 홍광호의 중저음으로 노래가 시작된다. 그걸 이어받은 박정현이 청아한 음색과 파워풀한 성량을 발휘할 때, 나는 이 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둘이 한 목소리를 이뤄 때론 밀고 때론 붙잡으며, 하나가 잠시 물러났다가 다른 하나와 함께 날아오르며 바다에서 하늘까지, 달에서 태양까지, 여름에서 겨
`흐르는 강물처럼`은 멋진 영화다. 눈부시던 시절의 브래드 피트가 몬태나를 흐르는 빅블랙풋강에 몸을 담근 채 플라이낚시를 하는 장면만으로도 낚시꾼인 내겐 인생 영화다. 아버지의 정형화된 낚시 방법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창조적 기법으로 대형 무지개송어를 낚아낸 브래드 피트가 환하게 웃는 모습은 남자인 내가 봐도 아름답다. 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낚시가 아닌 목사 아버지의 생애 마지막 설교다. “이웃이 곤경에 처했을 때, 우리는 그를 돕겠다고 나섭니다. 하지만 어떻게 도와야 할지,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때로는 원치 않는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이처럼 서로 모르는 사람들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라는 영화
내일은 20대 총선일이다. 드디어 다 끝난다. 유세차량의 불법 도로점거로 인한 교통체증도, 촌스러운 뽕짝 유세송의 소음공해도, 나를 조폭 형님처럼 만들던 90도 폴더 인사도, 세균 감염의 위험성이 매우 높은 끈적끈적한 악수도 모두 끝이다. 선거 한번 치르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찮지만, 국민들의 피로도 상당하다. 보기 싫은 얼굴들 매일 보고, 듣기 싫은 소리 또 듣는 것만큼 피곤한 일도 없다. 선거를 축제라고도 하는데, 맞다. 임시공휴일이기 때문이다. 한겨울에 치르는 대선이나 무더운 여름날 지방선거에 비해 총선은 벚꽃 만발한 봄날에 실시된다. 나는 12일 밤부터 낚시를 가기 위해 이미 사전투표를 완료했다. 선거 때마다 산과 강과 바다로 놀러갔지만, 투표를 거른 적은 한 번도 없다. 국민의 권리니 민주
지난주 갑작스런 고온현상으로 5월 하순마냥 더웠다. 벚꽃이 화들짝 폈다. 저들도 놀란 모양이다. 요즘은 봄꽃 피는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매화와 산수유가 아직 꽃망울 매달고 있는데 진달래, 개나리가 피어난다. 벚꽃과 목련도 하늘 아래 환하다. 어딜 가도 다 울긋불긋하다. 자연의 순리가 깨지는 건 안타깝지만, 꽃의 독주가 아닌 오케스트라를 듣는 기쁨이 크다. 웅장하고 환희로운 색채의 볼륨을 한껏 높여본다. 봄꽃 피는 무렵이면 몇 개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학부 시절, 시비(詩碑) 탐방을 하고 인증 사진을 찍어 제출하는 과제를 받았다. 햇살 좋은 봄날에 집 밖으로 나가 꽃도 보고 시도 읽으며 세상 아름다운 줄 좀 알라는 교수님의 배려였다. 연세대 윤동주 시비, 도봉구의 김수영 시비, 남산의 김소월 시비 등이
`백년 동안의 고독`은 내가 좋아하는 문학 작품이다. 노벨상을 받은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소설인데, 중남미 문학의 한 경향인 `마술적 리얼리즘`을 대표한다. 환상과 마술, 신화적 요소들이 사실과 혼재되어 있는 것이 마술적 리얼리즘의 특징이다. 이 소설은 정말 재미있다. 싸움에서 진 사내의 피가 산과 들판을 흐르고 골목을 꺾어 자기 엄마 집 주방 벽을 타고 오르는 장면이라든가 모든 남자들을 사랑의 열병에 빠지게 만든 미녀가 남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승천하는 장면, 집시 예언자 메르키아데스가 선보이는 갖가지 마술들, 돼지꼬리를 단 아이의 탄생 등이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여러 번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흥분된다. 그런데 읽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너무도 복잡한 인물관계 때
스무 살에 친구와 둘이서 첫 배낭여행을 떠났다. 야간열차에서 자고, 빵 한 조각으로 하루를 버텼다. 몇 천원 아끼려고 버스도 안 타고, 코인라커도 안 썼다. 20kg 배낭을 메고 도시 끝에서 끝까지 걸어 다녔다. 마냥 좋았다. 모든 게 첫 경험이고 낯선 자극이었다. 두 해 뒤 다시 유럽에 갔다. 혼자였다. 야간열차 쪽잠과 굶주림, 행군 수준의 걷기 등은 그대로였지만 내용이 달랐다. 우선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곳을 여행했다. 그리스 크레타와 산토리니는 그때만 해도 덜 알려진 여행지다. 터키 이스탄불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도 들렀다. 외국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여행 동기가 남달랐는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나를 주체할 수 없어서 그리스로 날아갔다. 조류독감 진원지 터키 이스탄불
열하루 동안의 여행에서 돌아왔다. 텐트와 침낭, 낚싯대를 메고 가 캠핑을 했다. `북극의 관문` 트롬소(Tromso) 바닷가에 텐트를 치고 모닥불 피워 양고기를 구워 먹었다. 온통 흰 눈에 덮여 딴 세상 같은 해변으로 북극해의 파도가 엄숙한 성가처럼 밀려왔다. 어둠마다 얼음이 박혀 있어 바람은 날카롭고, 유리 두드리는 맑은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오로라(aurora)`로 불리는 북극광(北極光)을 보기 위해 떨며 밤을 지새웠다. 오로라는 뜨지 않았지만, 더 바랄 것 없었다. 밤은 황홀했다. 피요르드(fjord) 탐사도 했다. 빙하가 지반을 침식시켜 생긴 골짜기에 바닷물이 들어찬 협곡이다. 산악열차와 배를 타고 설산이 커튼처럼 겹친 피요르드를 통과했다. 호수가 맑아 하늘로 솟은 설산이 물속에도 있었
나는 내 이름을 싫어한다.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람의 이름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남이 입다 벗은 옷을 주워 입는 듯한 찜찜한 기분이 들고, 이름의 주인이 따로 있는 것만 같다. 내 고유한 생이 누군가의 아류처럼 여겨지는 것만 같아 불쾌하다. 새 학기 출석을 부를 때면 선생님들은 꼭 “회장님이 여기 계시네? 너희 집 돈 많으냐?”라고 물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군대에 가서도, 심지어 사회에 나가서도 그 질문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하도 자주 물어보니까 “이름만 부자고 사람은 거지”라고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인 적도 있다. 회장님과 나는 이름의 한자도 똑같다. 아버지께서 작명소에 가 지어왔는데, 돈 많이 버는 이름이라면서 역술인이 추천한 것이다. 그렇게 할 것 같으면 나도 미
오지랖 중에 가장 기분 나쁜 오지랖은 누군가가 내 취향에 대해 평가하고 간섭하는 일이다. 나는 취미로 낚시와 야구를 즐기는데, 그것도 오래 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별의별 참견하는 소리들을 자주 듣곤 한다. 낚시의 경우, SNS에 물고기 사진 좀 작작 올리라는 것부터 “그만 좀 다녀라”라는 말까지 듣는다.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남자 취미 1위가 낚시라면서, 낚시하는 남자는 어디서도 환영받을 수 없다고 목청 높인다. 자기 아버지나 남편이 낚시하는 꼴 보기 싫다고 해서 왜 나한테까지 이래라 저래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한다며 비난하는 사람도 있고, 낚시 가면 술이나 마시거나 `다른 짓`을 하지 않느냐며 불쾌한 추측으로 내 취미를 제한하려는 사람도 있다.“진짜 재미없고 따분하던데 그걸
나를 잘 아는 이들은 절대 동의할 수 없겠지만, 평소 사람들로부터 점잖고 차분하다는 소리를 듣는 편이다. 장교로 군 복무를 하고, 대학원에서 지도교수들을 모시면서 어떤 침착한 태도 같은 것들이 습관처럼 몸에 밴 것 같다. 하지만 내 차분함은 고작 한 꺼풀이 전부다. 벗겨지는 순간 흉한 알몸이 그대로 드러난다. 내가 지닌 매너는 사실 습관이 아니라 의식적인 것이다. 타인에 의해 간섭 받거나 피해 입는 것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에 나도 타인의 반경 안으로 잘 들어가지 않는 것뿐이다. 내가 잘못한 것 하나 없는데도 부당하게 피해를 입을 때, 타인의 고의적 잘못으로 내가 억울함을 당하게 될 때 나는 폭주한다. 길길이 날뛰는 야수가 된다. 하루는 지인들과 청계천에 바람을 쐬러 갔는데, 대학 운동부로 보이는
상술이니 사대주의 풍속이니 해도 분명 유쾌한 이벤트이긴 하다. 올해도 내게는 어떠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괜찮다. 형형색색 초콜릿 상자를 쌓아둔 거리에서 어린 연인들이 자기 몸 만한 바구니를 들고 걷는 걸 보니 내 마음도 달짝지근했다. 나는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의 순기능을 긍정한다. 짝사랑이든 소위 `썸`이든 적당한 때에 마음을 고백해야 사랑이 이뤄지는 법이다. 이뤄지지 않더라도 관계가 명확해져서 헛심 쓸 일 없어지므로, 고백이란 남녀관계의 불가결 통과의례다. 이 `고백`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 노력이 만만찮다. 레스토랑, 풍선, 촛불, 야경, 반지, 단기속성으로 배운 단 한 곡 피아노 연주 등 고백의 최적 환경을 이루기 위한 여러 요소들을 간소화 시켜주는 것이 초콜릿과 사탕이다. 알
마침내 한파가 물러갔다. 기록적인 추위였다. 특히 제주도에는 무려 90년만의 강추위와 32년만의 폭설이 찾아왔다. `찾아왔다`고 하면 너무 친절한 느낌이고, `급습했다`가 더 어울릴 것 같다. 그렇다. 추위와 폭설은 제주도를 급습했다. 미처 대비하지 못한 시설과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특히 제주공항과 여행객들이 무방비로 당했다. 이 과정에서 뜻밖의 일망타진(?)이 이뤄졌는데, 요즘 말로 `웃픈`(웃기고도 슬픈) 사례들이 사람들 입에 연일 오르내리고 있다. 월차 내고 여행 갔다가 폭설에 발이 묶여 나란히 출근 못 한 남녀 사원들의 비밀 사내연애가 곳곳에서 들통 났다고 한다. 들통 난 비밀연애야 시원하게 인정하고 그간의 사정을 고하면 그만이다. 문제는 불륜과 `바람`이다. 출장 간다고 했던 남편이 뉴
공병 장교로 근무하던 군대 때 일이다. 이제 막 자대에 부임한 초급 장교였던 내게 주어진 첫 임무는, `박정희 전 대통령 사단장 공관 복원` 공사였다. 소대원들과 함께 폐가나 다름없던 옛 공관을 맨손으로 부수고 뜯어내고 파내며 기초 공사를 했다. 굴삭기를 비롯한 공병대 중장비가 주요 공사를 하는 동안 나와 소대원들은 나무에 올라 벌집을 제거하고, 인근 민가의 개집을 철거하고, 돌을 뽑아낸 진입로에 잔디를 심었다. 준공식 날, 하늘이 뚫린 듯 폭우가 쏟아졌다. 군사령관과 사단장 등 별들의 향연에다 군수, 도의원, 기자들까지 모인 가운데 기념식수용 소나무를 운반하는 수레가 진입로를 오르지 못해 행사가 지연됐다. 이등병처럼 얼어 있던 대대장이 갑자기 우산을 내던지고 달려가 소처럼 수레를 밀기 시작했다. 행
사람들은 보통 자신과 욕망하는 바가 같은 이를 미워한다. 내가 특정한 누군가를 계속 험담한다면, 그건 그 험담의 대상이 내가 가지려는 것을 똑같이 욕망하거나 이미 가졌기 때문일지 모른다. 내가 하고 싶은 일, 오르고 싶은 자리, 얻고자 하는 상급을 향한 일차선 도로를 남과 함께 주행하는 것만큼 짜증나는 일도 없다. 고등학교 때, 한 남학생을 똑같이 연모하던 여학생 둘이 서로에 대한 비난과 근거 없는 악의적 소문내기로 척을 졌던 일이 떠오른다. 그 남학생이 나라는 것을 굳이 밝히는 까닭은, 두 여학생의 우정에 금이 가게 한 것을 이제나마 사과하기 위함이다. 나는 둘 중 누구의 손도 잡아주지 않음으로써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모색했고, 결과적으로 그들의 분노와 미움을 나에게로 돌리며 둘이 극적으로
2016년의 시작은 `불가역(不可逆)`이라는 말과 함께 왔다. 한일 양국의 위안부 문제 협상 발표문에 나온 말이다. 절대 바뀔 수 없다, 즉 위안부와 관련해서는 이제 다 끝난 얘기라는 것이다. 이 협상의 하이라이트는 합의 결과에 대해 번복하기 없기, 딴소리하기 없기, 다시는 위안부로 시비 걸기 없기를 약속하면서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10억 엔을 받기로 한 것이다. 굴욕 외교라는 비난이 거세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할머니들의 고통을, 오랜 세월 국민들이 지켜온 소중한 가치를 고작 97억 원이라는 푼돈에 팔아넘겼다는 이유다. 도박 및 알코올 중독의 무능한 아비가 집문서나 땅문서, 자식이 손수 마련한 대학 등록금을 술값과 판돈으로 엿 바꿔먹듯 탕진하는 내러티브가 외교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는 데 놀랐다. 이러
요즘 인터넷이나 티브이에서 “~한다고 전해라”라는 댓글이나 자막을 자주 본다. 25년간 무명이었다가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된 가수 이애란의 노래 `백세 인생` 패러디들이다. 이씨가 안면근육을 모두 사용하여 유사 하회탈 얼굴로 열창하는 장면에 “못 간다고 전해라”라는 노랫말이 적힌 캡처 이미지가 SNS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게 이 패러디 현상의 시작이다. `전해라`의 유행에 힘입어 이씨는 각종 티브이 프로그램과 뉴스에까지 출연했다. “육십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 “칠십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할 일이 아직 남아 못 간다고 전해라” “백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로 이어지는 이 노래는 무병장수의 기원을 담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