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철<br /><br />시인
▲ 이병철 시인

5월 5일은 어린이날. 노랫말처럼 “어린이들 세상”이다. 그런데 요즘 어린이들을 위한 세상이 있기는 한지 모르겠다. 학원과 과외, 영어 유치원 등 사교육에 짓눌린 아이들의 괴로움은 물론이고, 매일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아동 학대와 존속 살인, 미성년 대상 성범죄 따위 소식들은 아이들에게 “이 세상이 너희들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얼마 전 강남 일대에서 부모들이 초등학생 자녀들에게 `머리 좋아지는 주사`를 맞게 해 화제가 되었다. 또 어떤 부모들은 아이의 영어 발음을 좋게 한다며 짧은 혀를 늘이는 설소대제거술을 시키기도 했다. 온갖 괴상한 일들은 다 강남에서 일어난다. 하여간 강남이 문제다. 아이들을 무슨 표본실의 청개구리처럼 다룬다. 주사 맞히고 혀 늘이면 아인슈타인이 아니라 프랑켄슈타인이 되는 줄도 모르고.

“우리가 자라면 나라의 일꾼”이 되는 줄 알았다. 나는 물론 공부를 안 했지만(안 한 것과 못한 것은 엄연히 다르다), 내 주변 친구들은 공부 잘하면 일꾼이 될 거라 믿고 코피 흘려가며 공부했다. 부모 시대에는 공부 잘하면 좋은 일자리 얻고 돈 벌 수 있었으니까, 그걸 교훈 삼아 자기 미래를 걸었다. 그런데 좋은 대학 나와서 성공하는 근대적 신화가 무너지고, 이제는 부모 배경에 의해 자녀의 삶이 결정되는 상속의 시대다. 2016년의 어린이들이 어른이 되어도 `수저계급론`은 유효할 것이다. 아니 더욱 심화될 것이다.

내가 어릴 땐, 나처럼 공부 안 하는 애들은 밖에서 마음껏 뛰놀 수라도 있었다. 서울 도심의 관악산만 가도 장수풍뎅이와 하늘소, 온갖 나비를 채집하고 개울에서 가재를 잡았다. 재개발되기 전의 널찍한 골목에서 술래잡기하고 놀았다. 눈 쌓인 길바닥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썰매를 탔다.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 게임 외에는 놀 거리도, 놀이할 공간도 없어 보인다.

자연이 훼손되고, 도시 환경이 변한 것을 꼬집는 게 아니다. 자라도 나라의 일꾼이 되지 못한 청장년들, 자녀에게 금수저를 물려주지 못한 부모 세대의 좌절감, 상실감, 열패감, 소외감, 무력감이 분노와 우울, 광기로 이어져 세상이 흉흉하다. 공황증, 광장공포, 정신분열, 강박증 등 온갖 정신장애와 난폭운전과 보복운전, 묻지 마 칼부림, 층간소음 갈등 등이 도처에 널려 있다. 요즘 부모들이 자녀를 과잉보호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노인을 위한 나라도, 청년을 위한 나라도, 어린이를 위한 나라도 없다. 세상이 점점 일부 기득권자들과 `금수저`들만을 위해 돌아가는 것 같다. 그 상속에서 소외된 1인 가정, 무자녀 가구, 기러기 아빠, 한 부모 가정, 혼자 살다 고독사하는 독거노인들의 사회에서 무슨 가정의 달인가. 엄마부대와 어버이연합이 `엄마`와 `어버이` 이름을 욕보이고,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살해한다.

제자에게 오물을 먹이는 스승, 선생을 폭행하는 제자가 한 교실에 있는 세상이다.

가정의 달을 맞아 5월 6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 나흘간 연휴로 국민들에게 쉼을 주고, 소비 진작을 통한 내수경제 활성화를 도모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연휴의 달콤함도 일부 계층은 누릴 수 없다. 공장은 여전히 돌아갈 것이고, 청년들은 평일보다 더 고된 아르바이트를 할 것이며, 학생들은 5월 모의고사와 온갖 공모전에 시달리고, 아이들은 선행학습과 생활기록부 한 줄 기재를 위한 체험학습을 할 것이다. 노인들은 탑골 공원에서 눈꺼풀에 엉겨 붙은 햇살마저 무거워 죽음 같은 낮잠이나 꾸벅거릴 것이다.

국민들이 바라는 건, 선거 패배를 무마하고 일시적으로 국정 지지율을 올리기 위한 깜짝 이벤트가 아니다. 진짜 쉬어야 할 사람들은 쉬지 못하고, 군림하는 기업만 배불리는 야바위 장터는 더더욱 아니다. 무한경쟁과 수저계급론을 완화시킬 제도적 장치 마련과 분노, 우울, 패배감 등 사회가 앓고 있는 중병을 치유하려는 근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밖에서 마음껏 뛰놀 수 있는 `푸른 오월`을 만들어주길 기대한다. 미세먼지도 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