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철 시인
▲ 이병철 시인

스무 살에 친구와 둘이서 첫 배낭여행을 떠났다. 야간열차에서 자고, 빵 한 조각으로 하루를 버텼다. 몇 천원 아끼려고 버스도 안 타고, 코인라커도 안 썼다. 20kg 배낭을 메고 도시 끝에서 끝까지 걸어 다녔다. 마냥 좋았다. 모든 게 첫 경험이고 낯선 자극이었다. 두 해 뒤 다시 유럽에 갔다. 혼자였다. 야간열차 쪽잠과 굶주림, 행군 수준의 걷기 등은 그대로였지만 내용이 달랐다. 우선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곳을 여행했다. 그리스 크레타와 산토리니는 그때만 해도 덜 알려진 여행지다. 터키 이스탄불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도 들렀다. 외국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여행 동기가 남달랐는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나를 주체할 수 없어서 그리스로 날아갔다.

조류독감 진원지 터키 이스탄불에서 감기 기운이 들었다. 약을 먹어야하는데, 짐 부피를 줄인다며 온갖 비상약을 다 뜯어 넣어온 게 문제였다. 뭐가 감기약인지 몰라 소화제, 설사약, 멀미약, 진통제, 감기약 등이 섞인 알약 열 알을 한입에 털어 넣고 잤다. 일어나니 멀쩡했다. 그만큼 내구성이 좋았다. 크레타로 가는 아홉 시간의 페리 항해를, 10월 중순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갑판에서 버텼다. 여행비만 아낄 수 있다면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 여름, 세 번째 유럽 여행에선 형식과 내용이 모두 달라졌다. 십년 사이 다른 문화권에 대한 거품 같은 환상들이 좀 가라앉아서 아무거나 다 좋진 않았다. 하고 싶은 건 하고, 먹고 싶은 건 먹었다. 야간열차 대신 비행기로 도시 간을 이동했다. 호텔에서 자고, 그 도시의 가장 맛있는 음식을 그곳 와인과 함께 매일 먹었다. 지중해 한 가운데서 스노클링을 하고, 보르도에 가 몇 곳의 샤또(Chateau·성)를 구경하기도 했다. 꼭 한번 맛보고 싶던, 이베리아 문학에 종종 나오는 코치니요(새끼돼지통구이)를 바르셀로나의 한 레스토랑에서 먹었을 때는 아득한 꿈 하나를 이룬 것 같아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얼마 전 노르웨이에 다녀왔다. 명소 견학 등 낯선 문화 체험과 견문 확장이 그동안 여행의 목적이자 형식, 또 내용이었다면 이번엔 모든 것이 달랐다. 내 취미 활동을 다른 나라에 가서 해보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내 생각엔 이 단계가 여행의 상위 2등급 정도 된다. 한국서 쓰던 장비를 그대로 가져가 텐트 치고 캠핑했다. 섬진강에서 쓰던 쏘가리 낚싯대로 60cm가 넘는 노르웨이 대구를 낚았다. 일상처럼 여행하고, 여행하듯 일상을 사는 게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찍이 외국으로 자전거 투어를 가거나 스키, 골프 여행을 간 사람들은 여행 고수들이다. 취미를 즐기며 문화 체험은 덤으로 얻어가는 것이다.

다음엔 최고 단계의 여행을 해야겠다. 아예 현지인으로 사는 것이다. 아프리카든 갈라파고스제도든 가방 하나 없이 맨몸으로 가 현지에서 옷 사 입고, 현지 여성과 연애하며, 취미 활동은 물론 병원, 교회, 헬스클럽, 목욕탕, 관공서를 우리 동네처럼 드나들고 싶다.

하지만 여행에 등급이 어디 있겠는가. 모든 여행은 가치 있다. 내 여행의 변천사는, 이게 좋았다가 저게 좋아지고, 전엔 싫다더니 이젠 좋다고 하는 내 취향 변화의 반영일 뿐이다. 인생의 은유가 여행이라면, 세상살이의 한 형태인 정치도 여행이다. 정치인의 삶을 흔히 정치 여정이라고 하지 않나. 다만 여러 번 여행이 아니라 단 한번 여행이다. 처음 정한 목적과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고 완주해야 한다.

여행자는 국적을 바꿀 수 없는데, 정치인들은 당적을 막 바꾼다. 지역구도 그렇다. 동음이의의 여권에 도장 찍으려고 변장한다.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하지 말아야 할 것 하고, 먹지 말아야 할 것도 먹는다. 정치를 자기 취향과 입맛대로 한다. 사진 찍기 좋은 곳에 우르르 몰려간다. 여행처럼, 모든 정치가 가치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유권자들이라도 엄격한 입국심사원이 되어 사람을 가려 뽑았으면 좋겠다. 공천이라는 게 꼭 밀입국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