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소비가 비교적 자유로운 프리랜서라서 남들 일할 때 열심히 놀러 다녔다. 올해만 포항, 제주도, 부산, 거제도, 가거도, 러시아 이르쿠츠크 등지에서 재밌게 놀았다. 인제, 양양, 영월 같은 곳은 그냥 `슥` 다녀왔다. 글 써서 버는 돈은 고스란히 여행 경비가 됐다. 실컷 놀았는데도 휴가철이 되니 안달이 난다. 남들 놀 때 또 같이 놀고 싶다. 외로워서 그런다. 혼자 사는 집에 오면 나를 반기는 건 불 꺼진 어둠, 불을 켜봤자 아무도 보이지 않는 텅 빈 부재다. 그 고독감이 싫어서 자꾸 어디론가 떠나려 한다. 혼자 떠난 여행도 외로운 건 마찬가지지만 일상이 되어버린 익숙한 외로움보다는 차라리 낯선 곳이 낫다. 캄캄한 강물에 몸을 담그고 낚시를 하면 “나는 고독의 친구 방황의 친구 상념 끊기지 않는 번
개, 돼지에 이어 레밍이다.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기에 새로 출시된 승용차나 레몬 맛 아이스크림 같은 건 줄 알았다. 찾아보니 들쥐다. 내가 쥐띠라서 그런지 몰라도 되게 기분 나빴다. 십이간지 순서도 개, 돼지 다음이 쥐인데, 내년엔 어떤 이가 국민들더러 미련한 소라고 막말을 할까. 홍수가 나 사람이 죽고 온 도시가 물에 잠겼는데 유럽 연수를 갔다. 갈 수도 있다. 업무의 일환이자 예정된 계획이다. 불법행위도 아니다. 도의원 몇 명 없다고 수해복구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그 사람들 있으면 더 방해만 된다. 장화 신고는 설렁설렁 사진 몇 장 찍고 올 게 뻔하다.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눈치가 없을까. 연애할 때 눈치 없는 애인은 생판 모르는 남보다 더 못한 존재다. 새로 산 옷 입고
“타자는 지옥이다.” 사르트르의 유명한 말이다. 혼자서 알몸으로 있다가 누가 지켜보면 부끄러워 옷을 입는다. 혼자 노래 부르며 춤추다가도 뜨거운 시선이 느껴지면 중단한다. 길에서 넘어졌을 때 아무도 없으면 엉덩이를 붙잡고 실컷 아파하지만 보는 사람이 있으면 `쪽팔려서` 얼른 일어난다. 내 행위의 자유를 앗아가므로, 타인의 시선은 감옥이고 지옥이다. 타자의 시선들로 이뤄진 `감시`의 사회를 미셸 푸코는 `파놉티콘`(원형감옥)이라고 했다. 어디에나 보는 눈들이 있다. 시선을 수단으로 과시와 감시, 증명과 확인, 관음과 노출이 이뤄진다. 굳이 시선이라는 작용이 아니더라도 타자는 그 존재 자체로 지옥이다. 나에게 고통을 줄 때 특히 그렇다. 타인의 체온, 냄새, 분비물, 소음, 신체접촉으로 가득한 출
`효리네 민박`을 재밌게 보고 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단 3회 방송했을 뿐인데 화제 몰이를 하는 중이다. 제목 그대로 이효리가 민박집을 운영하는 게 내용의 전부다. 부부가 살고 있는 제주도 집에 일반 여행객들이 와서 묵는다. 이효리와 이상순 부부, 그리고 종업원 아이유(이지은)가 손님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카메라는 최대한 개입하지 않고 그 과정을 담아낸다. 그게 다다. `삼시세끼`와 `윤식당`도 같은 포맷을 공유한다. 시골에서 출연자들이 밥 세끼를 자급자족해서 차려 먹는 것이나 발리 해변에 한식당을 열어 외국인들에게 불고기와 라면을 파는 것, 그리고 연예인 부부의 집에 일반인 여행객들이 숙박하는 것은 서로 조금씩 다르지만 또 어딘가 닮아 있다. 단순함과 자연스러움, 편안함이 공통분모다. 그러면서
“너무 멀고 험해서/ 오히려 바다 같지 않은/ 거기 있는지조차/ 없는지조차 모르던 섬”이라고 했던가. “가고, 보이니까 가고, 보이니까 또 가서 마침내 살만한 곳이라고…. 보라는 듯이 살아오는 땅”(조태일 시 `가거도`) 가거도에 다녀왔다. 목포까지 차로 네 시간, 목포여객선터미널에서 하루에 한 번 운행하는 여객선을 타고 또 다섯 시간을 가야 발 디딜 수 있는 섬이다. 그것도 바다 날씨가 좋을 때 얘기다. 안개가 짙게 끼는 바람에 배로만 여덟 시간이 걸렸다. 새벽 2시에 서울에서 출발해 오후 4시가 돼서야 도착했다. 오직 낚시를 위한 여행, 가거도 본섬에서 멀리 떨어진 중간간여 갯바위에 내려 루어 낚시로 농어를 걸어 냈다. 밤새 갯바위에서 비박하며 셀 수도 없이 많은 볼락을 잡기도 했다. 하이라이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미국 특수부대 `네이비 씰`의 전설적인 저격수 크리스 카일의 일대기를 그렸다. 이라크 전쟁에 참전해 200명이 넘는 적군을 저격 사살한 그는 미군 역사상 최고의 스나이퍼다. 스코프에 포착된 표적 중에는 자살폭탄을 매달고 아군을 향해 뛰어드는 어린 아이와 여성도 있다. 그의 총알이 표적의 이마와 심장을 관통하는 순간, 방금 전까지 살아 움직이던 한 인간의 육체, 생각, 기억, 꿈, 사랑, 전 생애가 피 흘리며 흙바닥에 뒹구는 시체로 변한다. 그걸 스코프로 지켜볼 때마다 그의 내면 역시 `죽음의 이미지`에 의해 저격당했을 것이다. 전역 후 그는 피 냄새와 총성, 죽음이 없는 일상에 적응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두 권의 자서전을 냈는데, 영웅적인 스토리가 널리 알려
“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마르요. 물 좀 주소. 그 비만 온다면 나는 다시 일어나리.” 한대수의 `물 좀 주소`다. 요즘 밖에 나가 땡볕 아래를 걸으면서 주술처럼 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흥에 겨워 부르는 것이 아니므로 칭얼거리는 게 맞겠다. 제발 비 좀 오라고, 징징대며 보채고 있다. 1973년 이후 두 번째로 극심한 가뭄이라고 한다. 5월 말까지 전국 누적 강수량이 가장 적었던 해는 2000년인데, 그때보다 고작 8mm 더 내렸다. 평년 대비 절반 수준 강수량 탓에 전국의 강과 저수지, 논밭이 타들어간다. 대형 호수인 충남 예산 예당저수지 낚시 좌대들이 사막 같은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다. 비를 내리는 저기압보다 고기압이 강세를 보이는 것이 봄 가뭄의 원
학위 논문 주제를 미당 서정주에 관한 것으로 정하고는 시간 날 때마다 `봉산산방(蓬蒜山房)`에 가 한두 시간씩 앉았다가 온다. 햇살 속에, 바람 가운데 어떤 말씀이라도 들릴까 싶어 나무에서 감 떨어지길 기다리는 심정으로 그러고 있다. 서정주 시인이 1970년부터 200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던 집이다. 서울 관악구 예술인마을, 내가 나온 초등학교 건너편에 있다. 어릴 적 등하교길이나 구멍가게에서 시인을 한번쯤 마주쳤을 지도 모른다. 생전 미당은 담장 너머 아이들 합창 소리 듣는 걸 좋아했다 한다. 관악산에서 사당역 방면으로 내려오는 등산객들이 가끔 들여다보는 걸 제외하면 찾는 이가 드물다. 덕분에 내 별장처럼 대나무 그늘 아래 누워 낮잠도 잔다. 그러다 문득 허공에 대고 “왜 그랬어요?” 물
거제도 해금강 유람선에 올랐다. 오색 등산복 차림의 어머님들과 함께 `아리랑 1호` 명찰을 가슴에 달고 앉아 약장수를 방불케 하는 선장의 속사포 `구라`에 박수치며 웃었다. 사자바위, 소녀바위, 십자동굴을 보면서 탄성이 나왔다. 절해고도는 아니지만 푸른 바다 위 홀로 아름다워 외로운 해금강을 뒤로 하고 외도로 향했다. 유럽풍 건축물들과 인위적 꽃나무들이 먼저 떠올라 거부감이 들었다. 그러나 섬에 내리는 순간, 인위와 무위가 어우러진 절경에 감탄했다. 산책로를 오를 때마다 예쁘게 깎아놓은 정원수와 조각상, 대숲, 새소리, 분수, 꽃향기가 오감을 즐겁게 했다. 인공자연에 서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일은 묘한 감흥을 일으켰다. 외도 해상농원 설립자 고(故) 이창호씨 기념관에서 한참 동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
`순돌이`가 죽는 꿈을 꿨다. 얼마나 울었던지 잠을 깨보니 베개가 축축했다. 14년째 같이 사는 슈나우저인데, 사실 내가 양육하는 것은 아니다. 엄마가 밥 주고 산책시키고 씻기고 병원 데리고 다니며 키운다. 보고 있으면 영화 `워낭소리`가 떠오른다. 꿈이 유난히 괴로웠던 것은 엄마의 슬픔까지 생생하게 만져졌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열어 엄마의 SNS를 보니 순돌이와 웃으며 찍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눈물 탓에 엄마의 미소와 순돌이의 착하고 큰 눈망울이 자꾸 번져 보였다. 주먹만 할 때 우리 가족이 되어 나와 동생의 대학 졸업, 내 입대와 전역, 동생의 결혼과 출산, 할아버지 별세, 할머니가 쇠약해지는 과정, 엄마의 40대와 50대, 아버지의 귀농을 모두 지켜보았다. 여섯 식구 북적이며 살던 시절
살면서 연인 외에 다른 사람에게 안겨본 경험이 거의 없다. 안기기엔 부담스러운 `등빨`을 지닌 까닭일까. 안아주기에 특화된 넓은 가슴둘레를 가졌으면서 타인을 안아준 적도 드물다. 교회 수련회나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같은 데서 몇 번 한 게 전부이니, 나는 안고 안기는 데 인색하게 살았다. `남녀 칠세 부동석`을 가르쳤던 할아버지와 무뚝뚝한 아버지 아래서 나는 목석같은 사내로 자랐다. 포옹이라는 것은 참으로 쑥스러운 짓이었다. 기껏 내가 품에 안는 것은 개, 병아리, 이웃집 네 살배기 정도였다. 그 애도 사랑스러워서가 아니라 레슬링 기술을 걸려고 안았다. 동생을 안아준 것도 한번 뿐이다. 여섯 살 때 태권도장 성탄절 잔치에서, 탈지면 수염 붙인 관장님을 산타클로스로 믿어 “동생 괴롭히면 선물 안 준다
이르쿠츠크에서 버스를 타고 황량한 시베리아 벌판을 달렸다. 고려인들이 화물열차에 실려 와 버려졌던 땅, 광막한 들판 너머로 지평선이 시간을 끊임없이 데려가고 있었다. 얼어붙은 땅을 맨손으로 파헤쳐 감자 심고 끈질기게 살아남은 고려인 1세대들도 저 지평선에 실려 아득한 먼 곳으로 사라졌겠지. 생각에 잠긴 사이 버스는 알혼섬에 도착했다. 포장도로와 흙길, 물길을 번갈아 가며 여섯 시간 걸렸다. 알혼섬 일대는 한민족의 시원지이자 샤머니즘이 발생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의 먼 조상들은 바이칼 호수 유역에 정착해 살다가 몽골과 만주를 거쳐 백두산으로 내려왔다. 시인 백석이 “아득한 옛날에 나는 떠났다 …. 나는 그때 자작나무와 이깔나무의 슬퍼하던 것을 기억한다”(`북방에서`)고 한 것은 우리 민족 이주사(史
사전투표를 마치고 러시아 이르쿠츠크에 왔다. 바이칼 호수를 앞에 두고 울란우데와 마주보는, 러시아와 몽골 접경지대에 위치한 도시. `시베리아의 파리`로 불리는 이르쿠츠크는 바이칼로 가는 기점이다. 여기서 승합차를 타고 네 시간 달리면 인류가 20년 동안 마셔도 그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세계 최대의 담수호에 닿을 수 있다. 낙후한 공항, 차가운 회색 밤하늘 아래 `IRKUTSK`라고 적힌 입구를 촬영하다가 키가 큰 여경에게 제지당했다. 입국심사대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의 반은 고려인, 반은 러시아인과 여행자들이었다. 러시아어와 영어, 한국어까지 3개 국어로 진행된 깐깐한 입국심사와 마약탐지견을 동원한 보안검색을 통과하느라 진이 빠졌다. 밤 10시, 현지 숙소 주인인 `닉`이 구형 현대차를 타고 마
우리 사회가 동물원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프리카를 흉내낸 인공 아프리카, 북극을 흉내낸 가짜 북극 등 동물원은 모방 세계다. 이 모방 세계 안에서 동물들은 유토피아와 가짜 유토피아 사이의 혼란을 겪는다. 온대기후 한국 땅에 갇혀 지내는 북극곰이 비참해 보인다. 환경 자체가 폭력이며, 생존이 곧 지옥 아닐까. 타고난 기질, 개성이 어떻든 간에 정해진 환경에 무조건 적응해야 하는 곳이 동물원이라면, 우리가 사는 이 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인공 얼음 위에서 어떤 북극곰은 여기가 북극이라고 믿지만, 다른 북극곰은 북극이 아니라는 걸 안다. 가짜 유토피아를 유토피아인 양 착각하고 살거나, 유토피아가 아닌 걸 알면서도 그냥 현실을 수용하며 사는 것이다. 인간이 뭐 대단히 지혜롭지도 않은 것 같
삶은 아름답고 세상은 살 만한 곳이다. 생을 무조건 긍정하는 편은 아닌데, 좋은 사람들과 함께라면 낙관주의자가 된다. 삶은 사람의 준말이지 않은가. 좋은 사람은 단 한번 만나도 순간을 영원으로 기억하게 한다. 지난 주말 저녁이 그랬다.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낯을 가리는 편이라 오래된 친구 외에는 잘 만나지 않는 내가 홍대까지 외출을 했다.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인 강백수 군이 서현진 아나운서와의 술자리에 나를 불렀기 때문이다. 그 자리엔 록밴드 크라잉넛의 한경록 형도 있었다. 편한 술자리지만 내겐 더없이 각별했다. 서현진 아나운서의 오랜 팬이기 때문이다. 10년 전 진행하던 아침 라디오를 매일 챙겨들었다. 푸르른 20대의 날들에는 언제나 아침을 깨워주던 서현진 아나운서가 있었다. 몇 년 전 라디오를
패티 보이드가 내한했다. 비틀즈의 조지 해리슨과 `기타의 신` 에릭 클랩튼을 미친 사랑의 불길로 뛰어들게 한 `록 음악의 뮤즈`다. 1965년 조지 해리슨과 결혼해 12년을 살았고, 이혼 후 1979년 에릭 클랩튼과 재혼했지만 십년 뒤 헤어졌다. 조지 해리슨과 에릭 클랩튼은 절친한 사이였다. 비틀즈의 앨범 `Abbey Road`에 실린 `Something`은 조지 해리슨이 패티 보이드에게 바친 사랑 노래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20세기 가장 위대한 러브송이라고 극찬한. 친구 아내를 사랑한 에릭 클랩튼이 실연의 고통을 울부짖은 노래가 그 유명한 `Layla`인데, 라디오에서 이 노래 도입부의 기타 소리가 들리면 발끝까지 전류가 흐르는 느낌이다. 지난 금요일,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는데 `L
섬진강휴게소에서 아침을 맞았다. 올해 가장 부드러운 햇살이 나를 훑었다. 재첩국을 먹고 하동, 구례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유홍준 교수가 말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19번 국도를 몇 해 전에 지났지만 캄캄한 밤이라 아무것도 못 봤다. 달빛 베일에 싸여 실루엣만 보이던 그 길을 향해 달리자 얼굴 본 적 없는 신부에게 가는 옛 신랑처럼 가슴이 쿵쾅댔다. 섬진강 모래톱은 체에 거른 보릿가루처럼 색감이 곱다. 손으로 느끼는 질감과 눈으로 느끼는 질감은 따로 있다. 설악산의 깎아지른 바위들을 볼 때 내 눈은 무엇엔가 할퀸 듯 껄끄럽고, 변산 격포의 해넘이를 볼 때엔 화로에서 갓 꺼낸 감자에 닿은 것처럼 화끈거리는 것이다. 섬진강변을 보는 눈이 강아지 털에 감싸이는 듯 했다. 강줄기가 채찍이
글쓰기가 버겁다. 매주 칼럼을 쓰고, 매달 두세 군데 문예지에 시와 비평을 발표하고 있지만 신선도가 떨어진다. 글쓰기가 즐거울 땐 생각이 활어처럼 이리저리 뛰는데, 요즘은 좁은 수조에 갇혀 배 뒤집으려는 생선처럼 힘겹다. 글쓰기라는 게 참 모호한 행위다. 직업이라기엔 빈곤하고, 취미라기엔 삶의 너무 많은 부분이 저당 잡혀 있다. 일이 좋아서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마는 요즘 나는 정말 무기력하게 쓴다. 고장이 났지만 작동을 멈추지 않는 기계처럼. 실력 없이 요행으로 처신해온 밑천이 드러나고 있다. 복식호흡이나 두성을 배우지 않고도 노래 몇 곡 부를 수 있지만 더 부르면 성대 결절에 걸린다. 입력 없이 출력만 해서 고장 났다. 연료는 안 넣고 엔진만 돌리니 생각이 침체돼 눌러 붙었다. 요즘 책도
나는 잘 가지 않지만 소래포구는 내 친구가 연인과 자주 데이트 가는 곳이다. 거기 수인선 협궤열차는 오래 전에 사라졌고, 열차가 다니던 철길이 남아 있다. 1960년대 실향민들이 새우잡이를 하면서 만들어진 포구는 새우, 젓갈, 꽃게로 유명한 어시장이 되었다. 좌판 횟집에 앉아 바다를 보며 먹는 생선회는 그저 음식이 아닌 추억과 낭만의 다른 이름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소래 포구의/ 난전에서 본다, 벌써 귀밑이 희끗한 늙은 사람과/ 젊은 새댁이 지나간다/ 아버지는 서른여덟에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지난날/ 장사를 하느라 흥해와 일광을 돌아다니며 얻은/ 병이라 하지만 아버지는 언제부턴가/ 소래에 오고 싶어하셨다/ 아니 소래의 두꺼운 시간과 마주한 뻘과 협궤 쪽에 기대어 산/ 새치 많던 아버지, 바닷물이 밀려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는 세월호 사건으로부터 3년, 박근혜 정부 4년, 유신체제로부터 40년의 시간을 단 21분으로 압축한 한편의 드라마였다. 탄핵심판 결정문이 군더더기 없는 명문이었기에 속전속결로 진행될 수 있었다. 현학적이지 않고 과도한 수사도 없었다. 헌재는 “성실의 개념은 상대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성실한 직책 수행의무 같은 추상적 의무규정의 위반 이유로 탄핵 소추하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 세월호 구조 실패를 탄핵 사유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다수가 느끼는 분노일지라도 상대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은 논제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법의 준엄함을 보았다. 성실한 직책 수행을 못했다는 것이 탄핵 사유가 될 경우, 나는 성실하게 일해도 회사가 불성실하다고 판단하면 일방적 해고를 당할 수 있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