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렬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장
50만 시민 수년간 고통 겪었지만
문제점 되짚는 상징물 하나 없어
아픈 기억은 곧 지역사회 결집력
소송 지원에만 쏟는 행정력 유감

“포항시민 50만명이 ‘촉발지진’이라는 전례 없는 재난으로 수년간 고통을 겪었으나, ‘지역에 기억공간이 단 한 곳도 없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다.”

이달 말 퇴임하는 이영렬(63·사진)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장이 지난 4년 재임 후 남은 아쉬움을 단 한마디로 표현했다.

이 센터장은 최근 20여년 동안 국내의 대규모 국가적 재난 현장에서 피해자들의 심리치료를 맡아 온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2019년 11월 센터 개소 이후 지금까지 센터를 이끌고 있다.

그는 “현재 지진트라우마센터 운영이 전환기에 놓여있다”고 속사정을 털어놨다.

지진 트라우마 치료 목적으로 센터를 방문하는 이용객 수는 해마다 줄고 있는 반면 센터 역할 범위는 더 넓어지고 있다는 것.

실제로 센터 개소 첫해인 2019년 월평균 방문자는 350명을 기록, 이듬해인 2020년은 759명으로 개소 이래 월평균 방문객 수가 가장 많았다.

그 후 2021년에는 745명, 2022년 519명, 2023년 508명으로 이용객 수는 계속 감소하는 추세다.

이와 대조적으로 올해부터 센터는 지진·화재·태풍·산불 등을 포함하는 ‘경북권역 종합 재난트라우마센터’로 확대 개편돼 운영된다.

여기에다 정신건강의학과 자격증을 가진, 유일한 의사인 이 센터장 역시 조만간 그만두게 되면서 센터에 의료전문인력이 전무하게 된다.

그는 “정치만 살아 있는 생물이 아니라 의료도 생물”이라며 “센터에는 전문가들이 기용돼 센터의 분명한 역할을 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센터는 지역의 공동체 문화공간과 사회복지 공간 등의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면서 “트라우마와 기억을 연결하는 핵심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 센터장은 ‘포항지역의 지진에 대한 기억을 한사코 덮고 지우려는 정서’에 대한 아쉬움을 강하게 제기했다.

대표적인 상징물이 ‘지난해 예산 160억원을 투입해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만든 문화공간 흥해복합커뮤니티센터’라는 것.

이 센터장은 “지진 피해가 가장 컸던 흥해읍에 도시재생 차원에서 흥해센터가 건립됐다”면서 “하지만 센터 어디에도 촉발지진 발생 이유와 피해규모, 책임자 처벌 등 문제점을 지적한 상징물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픈 기억은 수치가 아니라 자산이고, 지역사회의 결집력”이라면서 “재난을 당한 사람들은 아픈 기억을 통해 사회적 힘을 모으고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국가 상대 포항지진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도 이 센터장은 ‘정신적 피해 구제’ 지원에 대해 많은 도움을 줬다.

그는 “포항시가 지진에 대한 흔적은 지우려 하는 반면 모든 행정력을 동원, 시민들의 손해 배상 소송을 돕는 모습은 정말 모순적”이라면서 “금전적인 보상만큼 중요한 것이 지진에 대한 아픈 기억”이라고 밝혔다.

이 센터장은 “포항촉발지진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거의 없는, 역사에 기리 남을 부끄러운 사건”이라며 “앞으로도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과오를 남기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센터 자체 조사에 따르면 ‘지난 2월말 기준 센터 방문 등록자 수 3천502명 가운데 무려 19.1%(670명)가 지진 피해로 인한 중증 트라우마 증상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시라기자 sira115@kbmaeil.com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