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세상에 없는 소설가 박일문을 떠올리며

작가 박일문이 좋아했을 겨울 풍경. 사진 속 눈길을 걸어 그가 꿈꾸던 세상에 이르렀기를 바란다. /언스플래쉬
작가 박일문이 좋아했을 겨울 풍경. 사진 속 눈길을 걸어 그가 꿈꾸던 세상에 이르렀기를 바란다. /언스플래쉬

조금이라도 책을 읽으며 20세기 후반을 보낸 사람이라면 ‘라라’와 ‘디디’라는 독특한 이름의 여성이 등장하는 소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어렵지 않게 기억할 것이다.

1992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이 소설은 독일 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의 동명 시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드라마로도 만들어질 정도였다. 이후 우후죽순처럼 번져나갔던 운동권 후일담 소설의 효시로 불리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스토리뿐 아니라 이미지까지 표절했다는 풍문이 떠돌았고, 이는 장정일(시인·소설가)의 몇몇 책과 합쳐져 1990년대 초반 문학논쟁 중 하나인 ‘패러디 논란’을 야기시켰다.

바로 그 소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쓴 박일문<사진>이 지난 16일 세상을 떠났다. 예순다섯이었으니 요절(夭折)이라 할 수는 없지만, ‘100세 시대’로 불리는 21세기임을 감안하면 이른 죽음이다.

영남대와 연세대에서 법학과 철학을 공부한 그는 오랫동안 혼자 살았고, 쓸쓸했던 죽음은 주변 소수의 사람 외에는 알지 못했다. 한때는 대구·경북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주요한 작가 중 한 명으로 주목받던 그의 마지막 몇 년은 외롭고 우울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교 시절부터 탈속(脫俗)과 환속(還俗)을 반복한 박일문. 20여 년 전부터 지난해까지 가끔 만남을 이어온 그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해사한 동안(童顔)과 투명한 눈망울로 기자에게 기억되고 있다. 열일곱 살 어린 나이에 세상사에 절망해 ‘출가납자(出家衲子)’를 꿈꾼 조숙한 허무주의자였던 박일문.

그를 어릴 때부터 옭아맸던 진지함, 혹은 진중함 때문일까? 박일문의 출세작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자신과 세계에 절망하여 스스로 세상을 버린 여자(라라)와 스무 살에 성(聖)과 속(俗)의 경계를 가벼이 넘어버린 여자(디디)를 통해 ‘좌절당한 혁명’을 이야기하고 있다.

젊었던 한때 경북의 사찰에서 잠시 승려로 생활하기도 했던 박일문은 나이를 먹어서도 수도승처럼 살고 싶다는 꿈을 가진 사람이었다.

조용한 산 아래 사찰에서 이름 없는 스님처럼 늙어가고자 했던 열망. 그러나 속된 세상은 박일문의 이런 꿈을 매번 좌절시켰다.
 

‘오늘의 작가상’ 수상 ‘살아남은 자의 슬픔’
운동권 후일담 소설 효시로 불리며 ‘인기’
‘이상’ 사라진 사회의 쓸쓸함 이야기하며
권력·제도 거부하고픈 열망 드러내보여

유년의 기억 담은 산문집 ‘추억’ 통해선
희망과 아픔·고독과 상처 등 담아내기도

□ 진지함과 진중함으로 철학적 주제에 접근했던 소설가

‘살아남은 자의 슬픔’ 이후에도 그는 무겁고 건조한 철학적 주제에 집착했다. 존재한다는 것과 사라진다는 것을 장엄하게 이야기하는 ‘적멸’, 예술과 더불어 예술가까지 사라진 시대를 냉소하는 ‘달은 도둑놈이다’ 등의 작품 저변에 깔린 의식은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아픔’이었다. 진지함과 무거움은 그의 대명사처럼 이해됐다.

그랬던 박일문이 기러기 깃털처럼 가볍고, 부엌 선반 위에 올려진 유년의 조청단지같이 달콤한 산문집 ‘추억’을 냈던 때가 떠오른다.

출간을 축하하며 몇몇 선후배가 허름한 선술집에 모였다. 기자도 그 자리에 동석했다. 산문집 ‘추억’에서 박일문은 그의 희망과 아픔, 고독과 상처, 삶과 문학을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추억’은 독자를 여행하게 하는 작품이다. 원고지 10매 내외로 적어 내려간 100여 편의 짤막한 글은 그때까지 박일문이 걸어온 ‘길’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길은 동시대를 산 사람들 모두의 기록에 다름 아니었다. 우리는 박일문과 함께 흙먼지 날리는 길을 걸어 할아버지 댁으로 가는 아이였다가, 첫사랑 여인에게 “내 피는 초록색”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청년이었다가, ‘사람의 목숨이란 봄날 서리, 또는 아침 이슬 같아서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깨달음을 얻은 중년이 됐다.

박일문은 사물을 통해 ‘인간의 추억’을 끄집어냈다. 책 ‘추억’에선 유난히 물건의 이름이 많이 등장한다.

부채, 죽부인, 청국장, 하모니카, 옥수수, 콩나물, 연, 미꾸라지, 모깃불, 버들강아지….

 

□ 유년시절 ‘추억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산문집도 출간

지금으로부터 한 세기 전. 박인환은 그의 시 ‘세월이 가면’에서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라고 노래했다. 박인환이 ‘이름’이라는 사물의 명칭보다 ‘눈동자와 입술’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추억에 이르는 사람이었다면, 박일문은 사물을 통해 ‘추억의 이미지’‘에 가닿은 작가였다.

지나간 시절이 다 그렇지만 ‘추억’을 관통하고 있는 가장 큰 힘은 순정함에 대한 그리움이다.

박일문은 한시(漢詩)를 짓는 할아버지 옆에서 먹을 갈고, 어머니와 함께 아카시아 잎을 따며 희희낙락하던 시절을 그리워했다. 외양간에서 큰 눈을 끔뻑이던 소와 집에서 키우던 개 ‘쫑’, 새끼를 지키려는 어미 새와 너구리같은 미물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믿던 순수의 시대를 추억했다.

산문집 ‘추억’이 여타의 상업적인 에세이와 구별되는 미덕은 행간마다 읽혀지는 바로 이 ‘그리움’때문이 아닐지. 출판기념회를 겸한 주석(酒席)이 있던 그날. 박일문은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앉아 ‘여윈 부처’처럼 옅은 미소만을 띄고는 말이 없었다. 다만, 자신의 출간을 축하해주러 온 이들이 모두 돌아간 새벽까지 자리를 지켰을 뿐.

한 후배 작가는 박일문을 가리켜 “아름다운 외골수”라고 했다. 또 다른 누구는 “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라고도 했다.

그랬던 그가 아름다움도, 코스모스도 없는 먼 땅으로 떠났다. 바람 차가운 2024년 겨울. 추위를 막아줄 외투도 챙겨 입지 못하고.
 

□ 존재하는 모든 권력과 제도를 부정했던 작가로 기억돼

“일체의 권력이나 제도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살아생전 박일문은 가끔 이런 말을 했다. 그 말이 발화점이 돼 쓰인 책이 장편소설 ‘도망쳐’다.

소설의 주인공 ‘흑도’가 꿈꾸는 건 쉼 없이 떠도는 것만으로 존재가 증명되는 유목민의 삶. 흑도는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기존의 시스템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정신분열증적 인간이다.

박일문은 지향했던 이데아의 붕괴가 사람들의 정신을 파괴시킨다고 생각했다. 1980년대 학생운동과 민중불교운동에 경도됐던 박일문에게 1990년대 초반 러시아의 붕괴와 도미노처럼 무너지던 동유럽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환멸을 불러왔을 터.

바로 그 시기에 그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통해 이상이 사라진 사회의 쓸쓸함을 이야기했다. 그런 측면에서 ‘도망쳐’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의 변주곡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도망쳐’가 출간된 직후. 조용한 카페에서 박일문을 만났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던 듯하다.

“30대 중반에 1년 내내 전국을 돌아다녔던 적이 있어.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남해의 어촌 마을까지. 그해 여름에 작가가 글 쓰고 평생을 살만한 곳을 세 곳 찾았어. 경북 경주와 강원도 정선, 그리고 제주도야. 정서적으로 안정을 주는 곳들이지. 더 나이 먹으면 거기로 가서 나무 심고, 소설 쓰며 조용히 살려고 그래.”

하지만, 그 꿈은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경주, 정선, 제주도가 아니고, 고향인 상주나 학창시절을 보낸 대구도 아닌 거대하고 삭막한 도시 서울의 정릉에서 그는 삶의 마지막을 맞았다.

자유롭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을 제지하는 일체의 것들, 그러니까 권력과 법, 제도처럼 거창한 것에서부터 취직과 결혼이라는 일상적 관습까지 모두 거부하고자 했던 작가 박일문.

그가 ‘도망쳐’에서 무너진 마르크스주의의 대안으로 제시했던 건 아나키즘(무정부주의)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월이 많이 흘러 소설의 주인공 흑도와 여자친구 미정이 어떤 경로를 거쳐 규격화된 제도와 규범에서 벗어나고, 마침내 무정부주의적 자유를 획득하게 되는지의 이야기가 이제 흐릿해져 파편처럼 떠오를 뿐이지만.

세상에 없는 사람을 추억한다는 건 더없이 슬픈 일이다. 이제 기자를 포함한 누구도 실물로 존재하는 ‘소설가 박일문’을 이 땅에서 볼 수 없다.

멀리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피안(彼岸)으로 간 그가 거기서는 외롭지도, 서럽지도 않기를 빌어볼 뿐.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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