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초의 프레스코화 ‘성 삼위일체’.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북쪽 벽면에는 ‘성 삼위일체(The Holy Trinity)’를 주제로 하는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다. 벽화를 그린 화가는 15세기 초 피렌체에서 활동했던 마사초(Masaccio)라는 사람인데 스물 여섯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많은 작품을 남기진 못했지만 실력은 상당했던 모양이다. 마사초가 ‘성 삼위일체’를 그린 것은 대략 1426년에서 1428년 사이로 피렌체의 노련하고 쟁쟁한 미술가들과의 경쟁에서 조금도 밀리지 않았던 것 같다.

‘성 삼위일체’는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본교리이다.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거룩한 영 성령은 삼위(三位), 세 개의 다른 위격으로 존재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하나의 하나님’이라는 종교적 가르침이다. 마사초의 벽화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성자 그리스도가 중앙에 그려져 있고, 그 뒤에서 십자가를 들고 있는 성부 하나님 그리고 이들 사이에 성령을 상징하는 흰색 비둘기가 나타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로 성모 마리아와 예수의 제자 요한이 나타난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시선을 그림 밖 감상자에게 던지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맞은 편 붉은 망토를 두른 사도 요한은 잠잠히 두 손을 모은 채 그리스도의 죽음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다.

마사초의 벽화 가장 아래 부분에는 성 삼위일체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 보이는 두 인물이 무릎을 꿇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두 사람이 정확하게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당시의 회화적 관례상 마사초가 이 벽화를 그릴 수 있도록 경제적인 지원을 했던 기증자 부부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림에 묘사된 이런 내용들을 종합하면 마사초의 벽화에는 세 가지 다른 층위의 시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유추해 낼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건의 시간과 공간, 성 삼위일체의 시공간적 초월성 그리고 마사초가 그림을 그리던 당시의 시간과 공간이 하나의 벽화에 공존하고 있다.

서양미술사에서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는 최초로 수학적으로 계산된 ‘선 원근법(linear pespective)이 적용된 작품이라는 기념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원근법은 2차원의 평면에 공간감을 불러 일으키기 위한 미술기법이다. 중세까지만 하더라도 그림들은 거의 대부분 평면적이었다. 중세미술의 주류는 기독교미술이었고 종교적 기능과 목적을 위해 제작되었다. 중세미술은 종교적 가르침을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거나 기도와 묵상으로 이끌어 주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인물이나 대상 혹은 자연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릴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자연의 시공간을 넘어선 신적인 세계를 상징하기 위해서 찬란한 금빛을 배경으로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혹은 종교적으로 중요한 인물을 강조하기 위해 화면 가운데 위치시키고 주변 인물들 보다 크게 그려 넣었다.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이런 표현법도 공간감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에 원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물이 지닌 종교적 중요도에 따라 위치와 크기가 달리 표현되면서 발생되는 이런 공간감을 ‘의미적 원근법(Hierarchical proportion)’이라고 부른다.

르네상스의 여명이 밝아오면서 미술가들은 눈에 보이는 자연을 그대로 옮겨 놓으려는 시도를 했고 이 때 처음으로 부딪혔던 문제가 공간표현이었다. 화면 위에 가상의 소실점을 찍고 이 점으로 수렴되는 선들을 긋는다. 그리고 그 위에 그리려는 대상의 크기를 일정한 비율로 축소시키면 2차원의 평면에 공간감이 만들어진다. 르네상스가 발명한 선 원근법은 19세기 중반 현대미술이 태동하기 이전까지 수 백년 동안 서양미술의 화면구성을 지배했다. /김석모 미술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