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로作 ‘의자에 앉은 성모 마리아’. 1513년경, 피렌체 팔라초 피티 소장

피렌체 팔라초 피티(Palazzo Pitti)는 1458년 피렌체의 유명한 은행가 루카 피티를 위해 지어졌고 1549년 메디치 가문이 매입해 토스카나 대공의 저택으로 사용되었다. 피티 궁전은 대공 페르디난도 2세의 지시에 따라 1637년부터 1647년 사이 전시공간으로 새롭게 단장되었다. 이때 메디치 가문이 소장하고 있던 르네상스와 바로크 작품을 모아 전시하기 위한 공간이 마련되는데 이곳이 피티 궁전을 대표하는 회화 전시관 ‘팔라티나 미술관’으로 라파엘로, 티치아노, 루벤스 등 서양미술사 최고 거장들의 작품 500여점이 소장되어 있다.

피티 궁전의 개축을 책임진 사람은 화가이면서 건축가였던 피에로 다 코르토나였다. 화려한 대리석 계단, 백색의 스투코로 장식된 천장, 장식적인 건축에 조화를 이루며 벽면에는 몇 점의 회화 작품들이 아래 위로 걸려있다. 전시된 작품들 중 그 어느 것도 미술사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지만 전시장 벽면에 걸려있는 작품들은 결코 자신의 목소리를 지나치게 크게 내지 않는다. 어쩌면 낼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건축 공간을 수놓는 화려한 장식 속에서 그림들조차도 장식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걸려 있기 때문이다.

감상자의 눈높이 보다 훨씬 높은 곳에 걸려 있는 작품들을 제대로 감상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작품 표면에 남아 있는 붓 자국이나 색감을 면밀하게 살피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그저 위를 쳐다보며 그림의 이미지만 겨우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모든 작품들이 불친절하게 걸려있는 것은 아니다. 몇몇 작품들은 아주 적당한 눈높이에 설치가 되어 있어 비교적 자세히 관찰하는 것이 가능한데 그 중에 라파엘로의 걸작‘의자에 앉아 있는 성모 마리아(Madonna della Seggiola)’가 특히나 시선을 사로잡는다.

1513년에서 14년경에 그려진 라파엘로의 작품은 원형의 틀 안에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묘사하고 있다. 라파엘로는 원형의 틀이 가지는 형태를 인물들의 움직임 속에 투영시킴으로써 틀과 인물 간의 관계를 조화롭게 해결한다. 원형과 조화로운 회화적 공간을 연출하기 위해서 팔과 다리, 머리와 휘감긴 옷 주름 등이 서로 얽히고설킨 복잡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둥근 화면과 그림 속 인물들 간의 조화는 거의 완벽에 가깝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감상자를 응시하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시선이 어딘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경계하는 듯한, 겁을 먹은 듯한 표정 때문이다. 마치 둥근 천장을 통해서 침입자인 우리를 경계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아기 예수는 몸을 뒤로 움츠리며 어머니 마리아의 품을 파고든다. 그림 속 두 인물들은 왜 이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일까?

언제나 그렇듯 라파엘로는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성모 마리아를 표현했다. 하지만 그녀가 발산하는 아름다움은 여성의 세속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종교적 숭고미이다. 라파엘로는 인물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누구보다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던 르네상스 거장이다. 그의 작품들은 후대 미술가들에게 중요한 모범이 되어 지속적으로 모사되었다.

18세기 독일 출신의 미술사학자 요한 요아힘 빙켈만은 라파엘로가 미켈란젤로를 넘어서고 티치아노나 카라바조 보다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수백 년 동안 숱한 미술가들이 라파엘로의 작품을 모방했다. 어쩌면 그러한 이유로 후대 어느 시점에 와서는 그의 작품들이 조금도 신선하지 않은 그래서 오히려 식상한 것으로 여겨졌는지 모르겠다.

실제로 1848년 영국에서는 ‘라파엘로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외친 미술가 그룹이 결성되었다. 라파엘전파(Pre-Raphaelite)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젊은 미술가들은 라파엘로 이후로 미술이 틀에 박혀 기계적으로 답습되는 퇴보를 걸어왔다 믿었고 시간의 흐름을 그 이전으로 돌려놓으려고 했다. /미술사학자  김석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