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탱고" 가 남긴 것들

지난 9일이었다. ‘특정한 사람’과 ‘소수의 동호인들’만이 즐기던 춤으로 인식됐던 남아메리카 춤 탱고(Tango)가 시원스런 바다를 배경으로 대중화돼 주목을 끌었다.

한여름 밤을 뜨거운 열기로 수놓은 ‘영덕 고래불 해변 탱고 페스티벌’은 멀고 먼 나라의 이국적인 문화로 생각되던 탱고를 영덕군민은 물론, 경북도민들에게 한 걸음 더 가깝게 만들어준 행사로 호평 받았다.

이 페스티벌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열려 뜨거운 열정과 서늘한 감각을 동시에 간직한 춤 탱고를 알리는 행사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기실 탱고는 한국엔 덜 알려졌지만, 아르헨티나를 포함한 남미와 스페인 등 유럽 전역 춤 애호가들 사이에선 그 인기가 예전부터 높았다.

그래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 거장들도 자신의 작품 속에 탱고를 주요한 소재와 핵심적 주제로 여러 차례 사용한 바 있다.

뒤늦게 경상북도에 찾아온 ‘탱고 유행’. 몇몇 춤 평론가에 의해 ‘옷을 입은 채 느끼는 황홀한 감각’으로, 때로는 ‘절망을 이기는 흥겨운 에너지’로 이야기 되는 탱고를 다룬 영화 몇 편을 아래서 살펴본다.

 

영화 ‘여인의 향기’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탱고는 어떤 죽음도 삶보다 따뜻할 수 없다는 걸 알게 해준다”고.

‘고래와 창녀’에서는 “당신 없이는 세상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는 로라를 혼자 남겨둔 채 연인 에밀리오는 낡은 비행기를 타고 더 먼 곳으로 떠나버린다. 고통과 절망의 끝에서 장님이 연주하는 반도네온(bandoneon·탱고에 사용되는 손풍금) 리듬에 맞춰 느리고 슬픈 탱고를 추는 로라. 카페 안 수백 개 백열등의 환한 불빛으로도 달랠 수 없는 로라의 외로움을 반도네온 소리와 느린 탱고 스텝이 위로해준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장동건보다 잘생긴 말론 브란도(Marlon Brando)가 출연한 거의 마지막 영화였다. 그는 말했다. “인간이 살아있다는 실감을 느끼는 건 춤추는 순간 뿐”이라고.

탱고라는 춤이 삶의 희망으로 발현되는 걸 보여준 영화 ‘여인의 향기’. /영화 홈페이지
탱고라는 춤이 삶의 희망으로 발현되는 걸 보여준 영화 ‘여인의 향기’. /영화 홈페이지

△ 그래도 삶은 아름다운 것… ‘여인의 향기’

한때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고, 그 뜨거운 열정으로 인해 고위급 장교가 됐지만, 예기치 않은 운명으로 인해 눈 뜬 장님이 된 늙은 사내가 있다. 괴팍한 성격으로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미군 예비역 중령 프랭크(알 파치노 분).

피해갈 수 없는 모모한 상황으로 인해 철없는 고교생 찰리(크리스 오도넬 분)는 이 괴팍한 예비역 군인과 어쩔 수 없이 내키지 않는 뉴욕 여행을 하게 된다. 때는 크리스마스 시즌.

모두가 즐거운 그 기간에 둘은 티격태격 전혀 즐거울 것 없는 둘만의 여행을 억지로 지속한다. 그런데, 이 지루하고 권태롭던 여행이 ‘탱고 한 판’으로 반전된다. 영화 ‘여인의 향기’다.

뉴욕의 고급 레스토랑. 오지 않는 연인을 기다리던 젊고 아름다운 여성 도나(가르베일 앤워 분)에게 프랭크가 “춤을 추자”고 청한다.

처음 보는 늙은 사내의 뜬금없는 제의. 도나는 당혹스럽다. “나는 춤을 추지 못해요”라는 도나에게 프랭크가 말한다. “탱고는 추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고.

비싼 양복과 화려한 원피스를 갖춰 입은 식당 손님들 사이에서 프랭크와 도나가 심장 박동처럼 흔들리는 선율을 타고 매혹적인 탱고를 추기 시작한다. 춤이 시작되자마자 순식간에 두 사람에게 주목되는 수백 개의 눈동자.

장님인 프랭크는 도나의 얼굴은 물론, 춤추는 공간의 넓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게 무슨 문제일까? 프로페셔널 댄서보다 더 멋지게 도나를 리드라는 프랭크의 탱고 스텝. 박수가 쏟아지는 건 당연지사.

영화의 마지막. 아무 것도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는 장님이 됐다는 절망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프랭크에게 찰리가 말한다.

“당신은 앞으로도 오래 살 자격이 있어요. 왜냐고요? 눈 뜬 사람보다 더 근사하게 탱고를 출 수 있잖아요.”

영화 ‘여인의 향기’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탱고는 어떤 죽음도 삶보다 따뜻할 수 없다는 걸 알게 해준다”고.

 

‘고래와 창녀’는 슬픔 속에서도 버릴 수 없는 꿈을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 홈페이지
‘고래와 창녀’는 슬픔 속에서도 버릴 수 없는 꿈을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 홈페이지

△ 더 이상 꿈꾸지 못한다면 인생은 무엇인가?… ‘고래와 창녀’

루이스 푸엔조(Luis Puenzo·76)는 탱고가 생겨난 나라 아르헨티나의 ‘생존한 최고 감독’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탁월한 역사인식과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를 환상적 메타포 안에 효율적으로 엮어내는 루이스 푸엔조의 탁월한 연출력은 이미 아카데미를 비롯한 세계 여러 영화제에서 인정받은 바 있다.

그의 대표작이라 칭해도 좋을 ‘고래와 창녀’는 2004년 감독한 영화다. 1936년. 이데올로기와 종교 탓에 수십 만 명의 사람들이 비참한 죽음을 맞았던 스페인 내전과 21세기 스페인 마드리드의 우울한 풍경의 교차.

여기에 모성(母性)의 상징이라 할 여성의 가슴과 드넓은 ‘바다의 어머니’ 고래를 동일한 의미망 안에서 유기적으로 결합해내는 감독의 연출력은 ‘고래와 창녀’를 ‘금세기 놓쳐서는 안 될 영화’ 중 하나로 기억되게 했다.

이 영화에도 탱고를 추는 장면이 등장한다. 아르헨티나의 땅 끝이자, 지구의 땅 끝이기도 한 파타고니아(Patagonia) 지방.

1933년. 아름다운 스페인 여자 로라는 깊고도 깊고, 멀고도 먼 대서양 건너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로 간다. 이유는 단 하나. 20세기 초반 인간에겐 절대적 가치로 느껴졌던 ‘자유’와 ‘사랑’을 찾아서였다. 그러나, 개개인의 삶에는 희망과 더불어 절망이 병존하는 법. 그건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당신 없이는 세상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는 로라를 혼자 남겨둔 채 연인 에밀리오는 낡은 비행기를 타고 더 먼 곳으로 떠나버린다.

고통과 절망의 끝에서 장님이 연주하는 반도네온(bandoneon·탱고에 사용되는 손풍금) 리듬에 맞춰 느리고 슬픈 탱고를 추는 로라.

카페 안 수백 개 백열등의 환한 불빛으로도 달랠 수 없는 로라의 외로움을 반도네온 소리와 느린 탱고 스텝이 위로해준다.

다음 날. 남극에서 불어온 차가운 바람이 몸과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해변에서 로라는 상처 입은 채 바닷가로 떠밀려온 거대한 고래를 만난다. 이 고래는 1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후 유방암을 앓는 로라의 손녀 베라에게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루이스 푸엔조는 ‘사라진 가슴’과 ‘사라진 고래’를 아르헨티나 탱고 선율 속에 부활시킴으로써 ‘예술적으로 승화된 은유’의 힘을 관객들에게 선물한다.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아프지만 그렇기에 더 매력적인 풍경이었다.

 

유럽의 한 도시. 노부부가 느긋한 표정으로 탱고를 즐기고 있다. /언스플래쉬
유럽의 한 도시. 노부부가 느긋한 표정으로 탱고를 즐기고 있다. /언스플래쉬

△ 환멸 속에서도 인간은 살아야 한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앞서 ‘여인의 향기’와 ‘고래와 창녀’가 그래도 남아있는 삶의 희망과 미래를 낙관한다면 지금 이야기 할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환멸의 오브제(objet)로 탱고를 삽입하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문명과 진보의 정점(頂點)이라 지목된 도시 프랑스 파리. 제대로 된 정신상황을 가질 수 없었던 폴(마론 브란도 분)은 세상의 어떤 부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연히 만난 딸 또래의 여성 잔느(마리아 슈나이더 분)는 폴이 가진 서러움과 환멸의 일정 부분을 이해하는 듯하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나이와 무관하게 어려운 일.

지난세기 ‘문명의 절정’이라 불리던 파리. 그 도시의 조그만 아파트에서 만난 둘은 ‘처음이자 마지막 같은 성교’를 치른다. 그 장면엔 어떤 화려한 장식도 없다. 그저 쓸쓸하고 메마른 시퀀스(Sequence).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다수의 영화평론가들이 “다시는 만들어지기 힘든 영화”라고 부른 작품이다. 이탈리아의 영화 거장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명성에 가장 큰 힘을 실어준.

왜였을까? 그건 바로 ‘탱고 페스티벌’이 열리던 20세기 후반의 ‘기이한 풍경‘을 영사막 위에 옮겨놓았기 때문이 아닐까?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장동건보다 잘생긴 말론 브란도(Marlon Brando)가 출연한 거의 마지막 영화였다. 그는 말했다.

“인간이 살아있다는 실감을 느끼는 건 춤추는 순간 뿐”이라고.

 

탱고가 환멸과 ‘다시 시작함’의 은유라고 말하는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영화 홈페이지
탱고가 환멸과 ‘다시 시작함’의 은유라고 말하는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영화 홈페이지

마지막.

어쨌건 탱고는 춤의 하나일 뿐이지만, 삶의 많은 부분을 끌어안으며 오랜 시간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 애정이 올해부터 시작된 ‘영덕 해변 탱고축제’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변화할까? 이를 궁금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