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채 원
내 오른발 복사뼈 아래
아버지가 남몰래 숨겨놓은 붉은 점 하나
나를 끌고 다니지
오른발은 왼발보다 항상 무거워
내 걸음은 자주 비틀거리지
햇빛 부신 대낮에도 길을 걸으면
그 발은 취한 듯 점점 붉어져
마음도 함께 흔들거리지
먼 길 가지 않는 밤에도
발바닥은 무시로 뜨거워져
나는 그만 꿈 밖에 쪼그려 앉지
환절기마다 신열이 나는 내 붉은 몸
열꽃 같은 글자들이 몸 밖으로 툭툭 불거지는
아직 퇴고 안 된 시 한 편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붉은 점 하나에서 생의 고통은 시작되었다는 운명적 인식이 시 전체에 깔려있다. 온 몸에 돋아나서 툭툭 불거지는 열꽃은 시인이 혼신을 기울이는 시 창작과정에서 부닥치는 힘겨움을 표현한 것으로, 그를 사로잡고 있는 그 어떤 숙명적인 조건들이 있을지라도 기어이 초월하고 극복해 나가겠다는 시인의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