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 희

오대산 전나무 숲의 겨울

가없이 깊은 설경에 발이 빠져

오래 쫓기어온 짐승처럼

일어나지 못합니다

어디 가면 이렇게 충만한 슬픔과

단숨에 닿는 절정이 있겠습니까

붉어진 손을 털며

젖은 얼굴을 드는데

툭,

저만큼 서있던 전나무 가지 하나

쌓인 눈을 못 이겨

꺾이고 맙니다

오대산 눈 덮인 겨울 숲을 바라보며 시인은 그를 누르는 삶의 무게를 생각하고 있다. 살아오면서 짊어진 욕망과 꿈의 무게가 그를 억누르고 있었음을 겨울 눈 덮인 산을 바라보며 느낀 것이다. 눈의 무게로 꺾이고 마는 전나무가지처럼 자신도 언젠가 저렇게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