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성시켜서 함께 나눈 춘장.

시작은 이랬다. 코로나19 사태로 집안에서 먹는 식사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메뉴도 바닥나 도서관에서 요리책을 빌려왔다. 근래에 만들어 먹은 적이 없는 유니 짜장이 맛있어 보이길래 춘장과 필요한 재료들을 사 왔다. 마침 돌아오는 주말에 남해 지인댁에 감자를 캐러 갈 일이 있어 거기도 들고 갈 겸 짜장을 넉넉히 만들 생각이었다. 먼저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춘장을 볶기 시작했다. 다 볶아진 춘장을 기름과 분리하고 간장으로 간을 해 두었다. 이것을 냉장고에서 하룻밤 숙성시키고, 다음날 야채를 다지고 다짐육을 넣어 볶은 후 춘장과 녹말물을 섞어 짜장을 완성했는데, 춘장의 염도도 모르고 너무 많이 넣은 탓에 짜장이 너무 짜졌다. 어차피 남해에 들고 가려면 부족한 듯해서 다른 팬을 꺼내 같은 과정을 반복하되 이번에는 춘장을 적게 넣고 멸치육수 양을 적당히 조절해서 간을 싱겁게 한 후, 아까 만든 짜장과 섞어서 살짝 끓였다. 예전에 자연주의 식단으로 요리하시는 분의 요리 방법 중 짜장에 설탕대신 바나나로 단맛을 내는 것을 본 적이 있어 바나나도 숭덩숭덩 썰어 넣어주었다.

이렇게 짜장을 만들고 나니 20분 거리에 사시는 시어른께도 만들어서 갖다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처음부터 양배추와 호박, 양파를 잘게 썰고 섞어서 끓이니 짜장 세 판, 아니 세 통을 만들게 되었다. 나는 밀폐용기에 세 번째 짜장을 담아 부리나케 들고 어머님께 갔다. “웬 짜장을 다 했냐?”라시며 반가이 받으시던 어머님은 맛도 안보시고, 얼마 전 가깝게 지내시는 분이 옆 동으로 이사 왔는데 좀 나눠먹어야겠다고 하시며 그 분과 그 분의 아드님까지 드시게 됐다.

식단이 궁해서 사온 춘장 세 팩이 감자가 주렁주렁 달려 나오듯 뜻하지 않게 많은 사람들과 나눠 먹게 되는 기적의 밥상이 되었다. 아주 어릴 적에 놀았던 ‘쎄쎄쎄’의 노래 가사가 생각났다. “너 먹고, 나 먹고, 이 집 주고, 저 집 주고….” 행복한 유니 짜장이었다. /권현주(포항시 북구 장성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