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한동<br /><br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자본주의는 부의 편재가 우려되었으나 자체 수정을 거쳐가면서도 국부(國富)를 증대시켰다. 개인의 삶도 풍요롭게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2차 대전 후 한 때 세계 인구의 과반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지배를 받았으나 이제 공산주의라는 유령은 자체 쇠멸(衰滅)의 과정을 밟은 지 오래다. 세계는 슬라보예 지젝의 예언대로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와 결혼해 버렸기 때문이다. 세계는 외형상 자본주의의 승리로 끝났지만 자본주의적 탈선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상인들의 영리만 추구하는 비합리적 자본주의를 `천민자본주의`로 규정하였다. 오늘날 천민자본주의는 도덕성을 상실한 돈만 아는 타락한 자본주의를 일컫고, 한국과 같은 후발 자본주의 국가에서 더욱 기승을 부린다. 천민자본주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고, 내 돈은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 자본주의는 황금만능주의와 결탁하여 탈선의 무기로 돌변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고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본주의의 위험한 발상의 결과다.

주변에서 가끔 보는 어떤 졸부는 이 나라는 돈으로 되지 않는 것이 없다고 단언하기도 한다. 상당수가 이에 수긍하면서도 정상이 아닌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도 한때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잘 살아 보자`는 국가주도의 구호를 합창하였다. `부자 되세요`하는 말을 덕담으로 여긴 적도 있다. 그 결과 국민 상당수가 가난을 탈피하고 상당한 돈을 벌고 부자가 되었지만 나라의 모양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닌 것 같다. 이 나라 재벌과 권력 간의 정경유착은 천민자본주의를 강화시켰기 때문이다. 돈이 권력이고, 권력이 돈이 되는 사회가 바로 천민자본주의이다. 최근 박근혜·최순실 국정논단의 기본 골격도 결국 권력과 재벌의 결탁 소산이다.

이러한 정경 유착의 구조적인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이 나라 재벌의 `을`에 대한 횡포는 곳곳에서 드러났다. 지난해 재벌가 딸의 KAL기 회항 지시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다. 호식이 치킨 사장의 여직원에 대한 성추행사건은 유야무야로 끝난듯하다. 한화그룹 아들의 변호사에 대한 폭언과 폭행사건은 일시 요란했지만 형식적인 사과 한마디로 무마되었단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가진 `갑`들의 가난한 `을`에 대한 횡포는 천민자본주의를 더욱 조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 나라의 졸부들의 을에 대한 추태도 곳곳에서 노출되고 있다. 얼마 전 어느 골프장 사장의 캐디에 대한 인격 모독 사건이 크게 문제가 되었다. 사장은 캐디를 집안의 김치까지 담그게 하고, 식사 시에는 사장의 턱받이 까지 하도록 하고 옆에 앉혀 어깨를 주무르게 했다는 것이다. 어떤 대학 병원에서는 이사장이 소속 간호사들이 무대에서 선정적인 춤을 추도록 하여 물의를 일으킨바 있다. 어느 마트의 주인은 시간급 알바생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비닐 봉투 1천원을 훔쳤다는 죄목으로 형사 고발한 사건도 있었다. 심지어 가난한 `을`들이 정신적으로 위로 받기 위해 찾아간 교회도 돈이 좌우한다는 말까지 돌고 있다. 이 나라 재벌뿐 아니라 대형 교회의 세습 문제는 결국 천민자본주의의 또 다른 얼굴이다. 천민자본주의가 시장뿐 아니라 의료계, 교육계, 종교계까지 고루 침투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천민자본주의가 횡행하는 곳에서 우리는 선진국 대열에 들 수 없다. 재벌뿐 아니라 졸부들의 가난한 `을`에 대한 횡포가 만연되어 있는 곳에서는 선진국 진입은 불가능하다. 단적으로 돈 가지고도 안 되는 곳이 많은 나라가 선진국이다. 그런 나라일수록 법치주의가 엄격히 살아 숨 쉬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말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황금만능주의의 횡포가 여전히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 소득 3만 달러 시대 우리 사회가 천민자본주의적 적폐를 청산할 때 우리도 선진국 대열에 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