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한동<br /><br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일찍이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와 결혼한다`는 이상한 가설을 소개하였다.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와 이혼한다`는 가설까지 덧붙였지만 그의 주장은 상당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이론은 21세기 사회주의 국가의 현실을 볼 때 상당히 적중하고 있다. 오늘날 지구상의 사회주의 국가는 종말을 고하거나 형식만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마저도 아직은 공산당이 지배하고 있으나 그들 체제를 스스로 `사회주의적 시장 경제`라고 부르고 있다. 공산화된 베트남 역시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 이미 접목하고, `왕조적 공산국가`인 북한 공산주의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

영국 기자 다니엘 튜더와 제임스 피어슨은 2015년 4월`조선 자본주의 공화국`(North Korea Confidential)이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한국의 역자가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역설적인 책명을 붙인 것이다. 이 책은 영국인 저자들이 한반도에 살면서 탈북자 등 여러 북한 정보를 종합하여 북한사회의 `자본주의적 경향`을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북한 사회의 자본주의적 추세를 장마당, 여가 생활, 휴대 전화, 유행 패선 등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최근 이 책을 소개한 남한의 조선일보와 해당 기자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북한의 자본주의는 시장에서 출발한다. 초기의 장마당은 농민 시장이 되고 근년에는 종합시장으로 확대되어 북한 전역의 시장만해도 400여 개가 넘는다. 북한의 종합 시장은 초보적인 노동 시장과 금융시장이 형성되고 도매 시장까지 등장하고 있다.

일본의 NHK에서 비밀리 촬영한 북한의 시장을 자세히 본 적이 있다. 북한의 시장은 1960년대 한국의 시골 시장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장터의 좌판에서 주민들이 국수를 사먹고, 꽃 제비 아이들이 그 주변을 맴돌고 있다. 간이 의자에 앉아 이발을 하고, 아녀자끼리 자리싸움을 하는 모습도 더러 보인다. 북한 땅에서 새로운 중산층과 부자가 형성되는 것은 이 시장의 덕분이다. 북한 경제가 빈곤과 침체의 악순환 속에서도 지난해 3.9%의 성장을 이룩한 것도 시장경제의 확산 결과이다.

북한의 시장 경제는 필연적으로 정보화를 촉진하고 소비문화가 확산된다. 북한의 휴대 전화가 이미 400만대를 돌파했다. 시장이 돈과 함께 생활 정보를 양산시킨 결과이다. 평양에서는 휴대 전화가 없는 사람은 루저(loser)로 취급받는다.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모바일 기기에 시선을 빼앗긴 남녀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고려항공이 평양의 택시 사업을 독점하고, 주유소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 국경지대 청년들은 몸에 달라붙는 금지된 스키니 진까지 입고 다닌다. 북한 땅에 이미 한류가 상륙했음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두만강 압록강 주변에서는 중국 경유 KBS 방송을 들을 수 있고, 한국의 드라마와 노래까지 메모리 스틱을 통해 감상하고 있다.

중국 화장품을 사서 바르고, 일부에서는 쌍꺼풀 수술까지 유행하고 있다. 북한이 초기 자본주의 소비 경제에 진입한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북한 땅에는 필연적으로 주민들의 의식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당과 국가는 주민들과 분리될 수 있다.

`수령 절대주의`는 인민들이 공식적으로 지켜야 할 규범이지만 주민들의 내면적인 가치 체계는 변화되고 있다. 인간의 기본적인 소비 욕구를 충족시키자니 수령보다는 돈을 필요로 한다.

결국 겉으로는 `수령`에 충성하지만 내면적으로 눈앞의 이익이나 실리를 챙기기 시작한 것이다. 3만 명이 넘는 탈북 행렬은 이를 입증한다. 북한 당국이 수시로 시장을 점검하고 주민을 통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북한의 초기 시장 경제를 인위적으로 되돌리기에는 한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