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광 규

나를 자르지 말라

네 칼이 먼저 상하리라

나는 뿌리가 있어

내 몸을 계속 키울 수 있나니

시간이 우리의 승패를 결정하리라

나를 밟지 말라

네 구두가 먼저 닳아 없어지리라

나는 뿌리가 있어

같은 몸 계속 밀어올릴 수 있나니

네 무릎이 먼저 꺾이리라

나는 뿌리의 힘으로

겨울 나고 꽃 피우고

타는 가뭄에 견디며 대지를 붙들고

있나니

내 억센 뿌리의 손아귀에

네 뼈가 먼저 부러지리라

비록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나무일지라도 그에게는 당당한 뿌리가 있다. 존재를 가능케 하는 엄청난 저력을 가지고 있는 근본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외풍에도, 아무리 힘겨운 억압에도 쓰러지지 않고 견디며 끝내 꼿꼿이 다시 설 수 있게 하는 것은 깊은 뿌리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우리이게 하는 어떤 자존의 힘이 인간에게는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게 어떤 힘겨운 앞에서도 그것을 견디고 극복하고 우리를 당당하게 설 수 있게 하는 근원의 힘인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