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중국 동북쪽 훈춘과 방천일대에 국제 관광단지가 조성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지난해 가을 압록강 하구 단둥에서 중국 땅 끝 방천(防川)까지 여행을 한 적이 있다.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하여 동서해로 흐르는 양강은 민족사의 한을 품고 오늘도 말없이 흐르고 있다. 남북 관계가 경색되어 인적 내왕이 단절된 현시점에서 멀리서나마 북녘 땅과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신의주와 마주한 중국의 단둥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었다. 국경 도시 단둥 상가에서는 북에서 온 장사꾼들도 가끔 볼 수 있었다. 현 심양 동북 대학 교수이며 조선족인 그와 함께 압록강 유람선에 몸을 실었다. 북한 땅 신의주 연안 부두를 10여m 앞에서 볼 수 있었다. 우리 배 가까이 녹 쓴 북한의 고물선 한척이 연기를 뿜으면서 정박해 이었다. 신의주 강변 북녘 동포 몇 사람이 표정 없이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하나 같이 깡마르고 지친 그들의 모습에 가슴이 져며 왔다. 그날 저녁 중국 호텔 망루에서 맥주를 먹으면서 바라본 신의주의 밤은 깜깜하기 그지없어 불야성을 이룬 단둥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였다.

압록강 상류로 향하는 차창 밖, 가끔씩 보이는 북녁 산은 하나같이 민둥산으로 변했다. 어딜 가나 울창한 숲을 이룬 남녘 산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연료가 부족한 북녘 주민들이 산의 나무를 벌목한 결과이다. 그래도 북녘 땅 마을마다 정겨운 저녁연기가 아름답게 피어올랐다. 남녁의 농촌에선 이제 보기 힘든 장면이다. 두만강 상류 북녘땅 강변도로에 소달구지와 자전거가 뒤엉켜 지나갔다. 60년대 남녘의 우리의 어릴 적 풍경이 연상되었다. 북녘의 초라한 여인들의 보따리 행렬을 뒤로하면서 차는 백두산으로 달렸다.

두만강 강변 중국 삼합까지 오는 길, 북녘 산을 오르는 북녘 주민들이 빈번히 눈에 띠었다. 야산을 개간하려는 배고픈 북녘 사람들이다. 북한 당국은 식량난 해소를 위해 개인의 소토지 개간을 허용하였고, 이곳 생산물은 개인이 장마당에도 팔수 있단다. 이 삼합의 언덕 위에서 바라본 함경북도 회령 땅은 의외로 도로가 넓고 건물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나를 안내한 제자는 회령이 김정은의 조모 김정숙의 고향이라고 소개하였다. 회령에는 김정숙 교원 대학이 있고, 항일 여성 영웅이라는 그의 기념비도 있단다.

연길을 지나 도착한 도문은 북한의 남양과 마주한 조그마한 국경도시이다. 북녘 땅을 좀더 보기 위해 두만 강변 야산위로 올라갔다. 북한의 초라한 남양 역사 건물에는 김일성의 초상화가 아직도 걸려 있었다. 붉은색의 `위대한 김일성 수령 만세`뒤 북녘 산 중턱에는 `사회주의 강성 대국 건설`이라는 큰 글씨가 선명하게 보였다. 초라한 집단 농장의 옥수수 수확 현장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산을 내려와 타본 관광 선을 향한 북녘 군인 두 명의 눈이 매섭다. 그래도 도문에는 북한의 불쌍한 꽃제비들이 수없이 오간다니 다시 가슴이 저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강변 중국 쪽에는 탈 북민 임시 구치소소가 떡 버티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훈춘에 도착하였다. 훈춘에서는 동행한 제자의 가까운 친척이 빵과 앵두를 우리에게 가져와 환영하였다. 5시간이나 달려온 중국 땅 끝 방천에 드디어 도착하였다. 북한과 러시아를 볼 수 있는 망루대 하나가 우뚝 서 있다. 망루 입구에 있는 일안망삼국(一眼望三國)이라는 안내판이 눈에 크게 뛰었다. 이곳은 중국, 러시아, 북한 3국이 10 ㎢씩 제공하여 총 30 ㎢의 초(超) 국경, 국제 관광 단지가 조성되는 현장이다.

이곳 망루에서는 북한의 두만강역이 보이고, 러시아의 하산 역까지 희미하게 보인다. 조자양의 `인민군 전사들이여 조국의 땅을 지키라`는 강택민의 명령이 비각에 각인되어 있었다. 멀리 북한의 라진 특별시와 우리의 동해를 눈앞에 두고 우리는 다시 발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