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자문 한동대 교수·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

영국의 토마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는 제목 자체가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라는 뜻으로 1516년에 발간되었다. 당시 유럽사회는 근대화 바람이 불며 귀족들의 부가 크게 늘어났으나 농민들이나 도시노동자들은 심한 빈곤에 시달렸다.

모어는 이러한 사회상을 보면서 새로운 사회인 유토피아를 그려내었는데 그곳에는 사유재산제 폐지, 공평한 노동과 분배의 경제체제, 교육과 종교의 자유 등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이러한 이상사회(理想社會)는 모어 개인만이 아니라 르네상스시대 인문주의자들이 공통적으로 동경했던 사회이기도 했다.

20세기 미국의 위대한 휴머니스트로 알려진 루이스 멈퍼드의 `유토피아 이야기(1922)`가 있다. 그는 도시학자, 역사학자, 문예비평가, 건축비평가 등으로 활약하면서 현대인에게 유토피아의 비전을 제시했다. 그의 유토피아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는 장소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 개척 가능한 유토피아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는 1차 대전 이후 지나친 산업주의, 상업주의, 소비주의의 폐해, 인구과잉과 공해로 인한 균형 상실된 어두운 사회현실을 새로운 질서로 재건하기를 희망하였다. 그는 현대인들이 문명화와 함께 날로 심화되어 온 세분화, 전문화, 그리고 편파성으로 인해 인간과 사회와 자연을 더 이상 통합적으로 볼 수 없게 되어 버렸으므로, 이들이 되찾아야 할 것은 유토피안의 전체적 시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인간생활을 `잡다한 우연사의 혼합`으로 보고 상호 관련되는 유기체적 전체로 보지 못한다면 진정 더 좋은 삶,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현실의 이상적 비판`과 `미래의 현실적 구상`도 더이상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면 생태학(Ecology)이야 말로 미래의 주된 과학이며, 전체를 보려면 이러한 전체의 과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과학과 기술이 인간의 예술적 영혼과 만나기를 기대하면서 그렇지 못하면 그것은 파괴의 무기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거대한 도시가 기술적인 풍요와 안락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을 거부하면서 그보다 작은 규모의 유기적 생명공동체를 대안으로 일깨우고 있다.

멈퍼드는 유토피아에 관한 다른 작품들도 분석했는데, 대상을 인간사회의 개선책이 완전한 이상국가 형상으로 구체화된 것에 한정했다. 그가 검토한 작품들은 플라톤의 `국가 (BC 380년경)`,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1516)`, 요한 안드레의 `기독교 도시(1619)`, 프랜시스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1624)`, 윌리엄 모리스의 `에코토피아 뉴스(1893)`, 헐버트 조오지 웰스의 `현대 유토피아(1905)` 등이다.

멈퍼드에 따르면 이러한 대표적인 유토피안들은 단순히 몽상가나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당대 현실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한 `현실주의자`들이자 `현실적 불만분자`들이었다.

허균의 `홍길동전`도 이러한 작품들만큼 사회혁신을 부르짖고 있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적서차별 및 봉건적 신분제도 타파, 탐관오리 응징, 빈민구제, 그리고 이상국 건설을 주장했다.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도 실학사상의 영향을 받아 성리학에 매몰된 당시 사대부들의 허위성을 통렬하게 비판하였다.

모어, 멈퍼드, 허균 등은 샹그릴라와 같은 상상속의 유토피아 대신에 사회개혁을 부르짖었다. 이들의 노력은 유토피아를 이 땅에 이룰 수 있다는 유토피아니즘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들의 유토피아는 대부분의 시민들이 동의할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사회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이들의 이상사회는 우리 시민들로 하여금 현실의 부조리함을 비판하게 하고, 나아가 이러한 현실을 개혁하는데 필요한 기준과 목표를 제공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보다 낫게 나아가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