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ㆍ정치학

이산가족 상봉이 또다시 무산됐다. 금강산 관광 재개 회담도 연기돼 버렸다. 올 가을에는 오랜만에 금강산 단풍놀이나 다녀오겠다는 나의 작은 꿈도 사라져 버렸다. 나는 남북관계가 오늘날처럼 경색되기 전 여러 차례 북한 땅을 밟아 보았다. 특히 금강산 만물상의 아름다운 가을의 풍광은 아직도 나의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다. 북한 땅 여러 곳에서 만난 북녘 사람들에 대한 추억은 아직도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셈이다. 가을이 오면 금강산에서 만난 사람들이 더욱 생각나는 계절이 된다.

2007년 늦가을 금강산에서 개최된 학술대회는 아직도 나의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는다. `남북관계의 발전과 학자들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금강산 호텔에서 개최된 남북 학술회의는 남북한 학자 40여명이 참석하였다. 개회식 때 옆 자리에 앉은 북한의 학자에게 명함을 건네니 그는 김 철주 사범대학에서 `사상 정치`를 담당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북한의 주체사상과 선군 혁명론을 강의한다고 묻지도 않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남한의 통일 문제 전문 학자들과 북한의 사상 정치를 담당하는 학자들이 동석한 그 학술대회는 우여곡절 끝에 공동 개최가 성사됐던 것이다.

그러나 어렵게 열린 그 학술회의는 두 시간도 못되어 중단되고 말았다. 문제의 발단은 우리 측의 발표자인 경제학을 전공하는 모 교수가 북한의 경제적 상황을 설명하면서 `식량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북한`이라는 표현을 엉겁결에 사용했기 때문이다. 우리로서는 당연히 쓰는 이런 발언이 북한 땅에서는 통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국가 모독`은 최고 존엄모독이기에 절대 용서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학술회의장 분위기는 갑자기 험악했고 북한 측 학자들은 일제히 철수해 버렸다. 우리 측 대표단과 북측 대표단이 여러 차례 교섭하여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학술대회는 가까스로 속개 됐다. 우리 학자들은 동북아 평화와 통일문제에 관해 학술적으로 접근하는데 비해 북한 학자들은 그들의 굳어진 이론과 이념을 통해 체제를 선전하는데 열중했다. 그들은 사석에서 일상적인 생활은 솔직히 이야기하면서도 체제와 수령 문제만 나오면 표정뿐 아니라 음성도 격앙된다. 그러한 북한 땅에 어떻게 과학으로서 학문이 뿌리내리고 발전할 것인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저녁에는 장소를 바꾸어 북한 측에서 개최한 만찬에 초대되었다. 분위기는 건배 제의가 오감에 따라 낮에 있었던 불쾌한 기억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술자리 분위기만큼은 아직도 남북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술을 권하고 흥을 돋우는 일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어 분위기가 금방 무르익었다. 나의 앞자리에는 북의 대표 단장인 L선생이 자리했다. 그는 남한도 여러 번 다녀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북한의 고위 인사이다. 시간이 흐르고 술이 거나하자 그는 자신이 서울 가회동 출신이고, 아버지가 유명한 소설가임을 추억삼아 이야기 했다. 그는 나에게 `두만강`이라는 작품을 한 번 읽어 보라고 권유까지 하였다. 나는 그가 북으로 간 카프문학 대가의 아들임을 뒤 늦게 알았던 것이다.

그날 저녁 술자리는 길어지고 금강산 계곡의 달빛은 더욱 휘황찬란했다. 모두가 만찬 분위기에 젖어 있었지만 L선생은 흐트러짐이 없이 자신의 지론을 조용히 이어갔다. 그는 북한의 `사회주의 강성 대국론`이 가장 선진적인 주체 이론에 기초한다는 주장을 강조했다. 나는 그의 주장을 경청하다 군사를 앞세우고 경제 건설을 뒤로 미룬 북한의 강성 대국은 이루기 어렵다는 반론을 폈다. 그러나 그는 북한이 사상 강국, 군사 강국을 완성했기 때문 경제 강국의 건설은 시간문제라는 이상한 주장을 반복했다. 물론 그의 뒤편에는 이번 행사의 조직을 총괄하는 노동당 참사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북한에서는 드물게 외국 유학을 다녀오고 상당한 식견을 갖춘 인텔리 학자로 통하는 그이지만 나는 그의 언행을 통해 북한 지식인의 한계를 절감할 수 있었다. 여든이 넘은 그가 북한 땅에서 건재한지는 알 길이 없지만 다시 금강산의 문이 열려 이러한 대화라도 다시 이어지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