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이 나라의 정치가 한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한 정국이 계속되고 있다. 일말의 기대를 모았던 지난번 3자회담은 완전히 결렬되고 말았다. 이색적으로 국회 사랑채에서 개최된 회담은 서로 회담 결렬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고 있다. 여야 대표는 기자 회견에서 서로의 입장차이만 확인한 회담이었다고 고백하였다. 박 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국민을 볼모로 하는 야당의 투쟁을 비난함으로써 여야 관계는 회담 전 보다 더욱 경색되어 버렸다. 이러한 회담 결렬은 여론에 떠밀려 사전 준비 없이 급조된 3자 회담의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3자 회담 결렬의 근원은 여야의 정치현안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회담의 핵심인 국정원 정치 개입과 개혁에 관한 여야의 입장은 너무나 달랐다. 사실 그동안 정부와 새누리당은 야당의 정치 행태를 극도로 불신하여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듯 하였다. 이석기 의원 관련 RO 사건에 대해서도 여당은 민주당을 `종북 세력의 숙주`라고 폄하하면서 그 책임론까지 제기하였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를 `유신 시대의 부활`, `민주주의의 파괴 세력`으로까지 비난하였다. 야당이 50여일의 천막 투쟁에서 민주주의 회복을 명분상 앞세운 것도 이같은 이유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3자 회담을 통한 정치적 해결과 합의는 원천적 한계가 내재해 있었던 것이다.

이번 회담의 결렬에는 박 대통령과 여야 지도자의 정치적 리더십에도 책임이 있음이 여실히 증명되었다. 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원칙과 소신의 리더십`이라고 회자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상대에 대한 포용력과 협상력을 상실할 때 `고집과 불통의 리더십`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야권에서 그의 리더십을 오만과 독선의 리더십으로 비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야당 김한길 대표의 리더십은 그동안 비교적 부드럽고 합리적인 리더십으로 평가 받았다. 그는 최근 비주류라는 당내의 역학 구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대여 강경 투쟁, 거리 투쟁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그의 리더십은 곧 한계에 부딪칠 것이라는 당내외의 비판도 많다. 또한 황우여 대표의 색깔 없는 무난한 리더십은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여당의 입지만을 축소 시킨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이러한 3자의 리더십의 불안은 결국 3자 회담의 파국을 자초하고 정국을 더욱 경색시켜 버렸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의 첫 3자 회담의 결렬은 우리 정치의 실종의 시대를 예고한다. 여야는 모두 회담 결렬의 책임을 상대에 돌리고 `민심의 역풍``국민적 저항`을 맞을 것이라 경고하였다. 그러나 시민 사회의 시선은 여야 정치권에 대한 실망으로 모두 차갑기만 하다. 사실 이번 추석의 민심은 우리의 어려운 현실을 외면한 정치권 모두를 강하게 질타하는 분위기였다. 결국 민심은 민생을 외면한 파행적인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혐오감만 증대되고 있다. 최근 박 대통령의 지지도 저하도 이를 반증하고 있다.

이제라도 여야는 진지하게 경색된 정국을 풀기 위한 긴급 조치를 발동해야 한다. 그리하여 하루 빨리 이 나라의 실종된 정치를 회복하여야 한다. 먼저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지도부의 정치력부터 발휘하여야 한다. 대통령이나 청와대 눈치만 보는 여당으로서는 독자적인 대야 협상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역시 대여 강경 투쟁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고 거리 투쟁의 출구를 찾아야 시점이다. 청와대 역시 야당대표와의 회담을 시혜적 선물이라는 인식부터 버리고 격식 없이 만나도록 사전 준비를 하여야 한다. 정치적 회담과 협상에는 항상 상대가 있고,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이번과 같은 서로 상대를 불신하고 부정하는 네거티브 게임은 서로 상처만 남기 마련이다. 이제 여야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심정으로 재협상에 임하여 불안한 민심부터 잠재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