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나라` 그리스 기행
필로포스언덕엔 소크라테스 동굴감옥
뉴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4천여점 전시
걷는 강화유리 아래는 유물 발굴현장

이번 주부터 하재영 시인의 그리스 기행문을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그리스는 지정학적으로 우리나라와 비슷한 반도국이면서 수많은 철학자를 배출하고 세계에서 민주주의를 가장 먼저 꽃피운 나라입니다. 현재 많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낙천적인 그리스 사람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으며,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어들이는 수많은 문화유적을 지역마다 보유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하재영 시인의 `신화의 나라 그리스 기행`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 아레이오스 파고스에서 아크로폴리스를 배경으로 찍은 일행.

①아레이오스 파고스와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밟았던 곳을 다시 밟는다. 가까운 곳이 아닌 먼 나라 그리스.

아테네 공항에서 5유로 티켓을 끊고 탄 버스는 펑 뚫린 길을 벗어나 시내버스처럼 곳곳 에 멈춰 손님을 태운다.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 들어서며 나는 지난 번 찾았던 곳을 떠올렸다.

파르테논 신전, 아고라, 제우스 신전, 모나스티라키, 오모노이아, 고고학 박물관….

6년 전 겨울이었다. 흰색이 주조색인, 나라 인구의 절반 가까운 사람이 사는 그리스 아테네에 들어서며 난 내 여행 이력에 새로운 곳을 보탰다는 설렘으로 온몸은 충만했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1호 `아크로폴리스(Acropolis=우뚝 솟은 곳이란 뜻으로 `파르테논 신전`이 있음)`을 바라보며 후일 다시 이곳을 밟을 수 있을까? 다시 찾는다면 누구랑 동행하게 될까?

그런데 또 밟는다. 가까이 지내는 문우 두 명과 나, 그리고 그들과 가장 가까이 지내는 여성 셋, 그렇게 여섯 명이 한 팀이 되어 떠난 여행이라 의미는 각별했다. 이 여행을 위해, 조각난 천을 이어 만든 조각보처럼 일행들은 시간의 자투리를 모으기 위해 땀흘렸다. 시간 조각보 위에 돈을 모으고 일정을 짜고, 드디어 그리스 아테네에 도착한 것이다.

공항을 출발한 지 한 시간 지나 버스는 종점 신타그마 광장에 도착했다. 우리가 내린 버스엔 공항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다시 탔다. 신타그마 광장 가까운 숙소에 짐을 푼 우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오늘의 일정을 협의했다. 우선 아크로폴리스로 가기로 했다. 숙소를 나서기 전 벽면에 걸린 그리스 지도를 보았다.
 

▲ 아크로폴리스로 가는 길.

섬, 섬, 섬…. 그리스는 섬이 많은 나라다.

그 섬마다 신화 한 자락 끈을 잇고 있는 신화의 나라이기도 하다.

차 한 대 지날 수 있는 좁은 골목 응달을 따라 일행은 발을 옮겼다. 여름 휴가철이라 그런지 거리는 한산했다. 높은 온도에 비해 응달은 시원했다. 길가의 상점을 기웃기웃하며 더딘 걸음으로 아레이오스 파고스(Areios Pagos=아레스의 언덕이란 뜻)에 올랐다. 반질반질한 바닥은 수천년 그곳을 찾은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미끄러웠다.

신화에 따르면 아레이오스 파고스는 인류 최초의 재판이 열렸던 곳이다. 전쟁의 신 아레스는 딸 알카페를 겁탈하려는 아리로티오스(포세이돈의 아들)를 죽였다. 결국 살인죄로 재판을 받게 되는데 올림포스 신들로 구성된 배심원들은 정당방위로 인정하여 무죄 선고를 한다. 바로 그 장소가 아레이오스 파고스다. 현재 그리스 대법원의 이름도 아레이오스 파고스다. 이런 신화적 요소가 있는 이곳은 사도행전 17장에서 보듯 아테네 기독교 전파와 밀접한 맥을 잇고 있는 곳이다. 사도 바오로가 이곳에서 전교를 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아레이오스 파고스에서 시내를 배경으로, 아크로폴리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천천히 걸어서 아크로폴리스 입구에 도착했을 때였다. 문이 닫혔다. 일요일이기 때문이다. 일요일은 오후 2시 45분까지 입장할 수 있다.
 

▲ 아레이오스 파고스에서 바라본 아테네 시내.

우린 다음에 구경하기로 하고 아크로폴리스를 한 눈으로 조망할 수 있는 필로포스(Philopos) 언덕으로 향했다. 필로포스 언덕은 아크로폴리스 남서쪽에 있는 낮은 산이다. 그곳엔 소크라테스가 갇혀 있었다고 전해지는 동굴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받기 전까지 두 개의 방으로 나누어진 동굴 속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스승이며 `너 자신을 알라!`란 말로 널리 알려진 철학자다. 기원전 470년 경 태어나 폴리스의 신들을 모독하고 젊은이를 선동한다는 이유로 기원전 399년 사형을 받은 사람이다. 하늘 중심의 신화적 철학에서 인간 중심의 철학을 주창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키케로는 “소크라테스야말로 철학을 하늘에서 땅으로 끌어내렸다.“고 했다. 입구는 쇠창살이다. 관광객의 발길이 뜸하다. 아테나엔 이곳보다 더 가치를 부여할 곳이 많기 때문이다. 우린 필로포스 언덕 위에서 아크로폴리스를 조망하고, 남쪽의 피레우스(Pireus)항도 내려보았다. 피레우스항은 아테나로 들어오는 배들이 정박하는 항구다. 대부분의 크루즈 투어도 이곳에서 출발하고 도착한다.
 

▲ 소크라테스의 감옥.

파르테논 신전을 올려볼 수 있는 올리브 나무 그늘에 앉아 이번 여행 일정을 짠 최 형의 설명을 듣는다.

“…. 파르테논 신전은 전쟁의 여신 아테네를 모신 신전으로 다른 여신들의 지배를 받지 않았고…,….도리아식 건축의 백미죠.”

최 형의 이야기를 들은 우린 올리브 나무 그늘로 이어진 길을 밟으며 뉴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으로 향했다.
 

▲ (뉴) 아크로폴리스 박물관(통유리로 건축) .

내가 6년 전 이곳을 찾았을 당시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은 파르테논 신전 동편에 있었다. 전시실은 파르테논 신전의 기단보다 낮은 곳으로 아크로폴리스에서 발굴한 유적을 주로 전시했다. 그런데 그 사이 새롭게 박물관을 건설하고 그곳에 있던 유물을 옮긴 것이다. 일설에는 영국에서 빼앗아간 유물(특히 `엘긴 마물`)을 되찾으려 했는데 `당신 나라에는 그런 유물을 보관할 박물관이 없잖느냐?`며 그리스인의 자존심을 건드렸기에 건설했다고도 한다. 그렇기에 옮긴 박물관엔 `뉴`자를 접두사로 붙이고 있다.

`와!`

정문을 통과했을 때였다. 박물관 내부로 가기 위해서는 강화유리를 밟아야 하는데 그 아래쪽은 유물 발굴 모습 그대로다. 그야말로 오래된 역사의 현장임을 실감하게 한다.
 

▲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지하 유물 모습.

그곳에서 발행한 브로슈어엔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은 아크로폴리스 남쪽 300미터 떨어진 곳에 베르나르 추우미(1944년생으로 뉴욕에서 활동)와 아테네에서 활동하는 ARSY의 미카엘 포티아디스가 설계한 2만1천평방미터의 건물로 1만4천평방미터의 전시공간을 확보하고 있다고 했다.

건물은 4층으로 되어 있다.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면 가게, 카페와 짐을 보관하는 방이 있고, 비탈진(slopes) 통로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는 양 옆으로 고대의 도자기, 부조들을 전시한다. 2층(level 1)에는 아크로폴리스의 에렉테이온(Erectheion) 신전 여인상과 파르테논 이전 및 로마 시대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3층(level 2)에는 기념품 가게와 아크로폴리스를 전망할 수 있는 테라스가 있고, 4층(level 3)은 파르테논 갤러리로 파르테논 신전을 원형 형태로 기둥과 부조, 석상을 배치하여 파르테논 신전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게 해 놓았다.
 

▲ 아크로폴리스 4층 `파르테논 갤러리`.

우리 일행은 흩어져 천천히 1층에서 2층으로, 2층에서 3층으로, 3층에서 4층으로 관람했다. 유물유적 4천여 점이 눈앞에 있다. 그것을 하루 중 몇 시간으로 둘러본다는 일은 아무래도 수박 겉핥기식이 될 것이다. 천천히 걸으면서 작품들을 감상한다. 많은 것들이 눈에 익다. 전에 왔을 때 꼼꼼히 훑어본 작품들이고 또 책을 통해 본 작품들이다.

전에 왔을 때 메모했던 글을 상기한다.
 

▲ 아크로폴리스 조감도.

`이것은 여러분이 조금 전 파르테논 신전 박공에서 보았던 니레아스상이죠. 상체는 인간이지만 꼬리를 보세요. 뱀입니다. 반인반수(半人半獸)죠. ….이곳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당시 물질을 이루는 원소로 생각했던 불, 물, 새(공기)를 상징합니다.`

이런 설명은 4층 파르테논 갤러리에서 다시 볼 수 있다. 내부엔 파르테논 신전을 설명하는 비디오 실이 있어 지친 발길을 멈추고 쉴 수 있다.

신화란 무엇일까? 역사란 무엇일까? 문화란 무엇일까?

여행 첫날 고대문화의 진수를 보면서 우리 문화를 생각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이든 국립 경주박물관이든 박물관에 있는 조상의 흔적이 현재의 우리 문화를 창출하는 힘이 되었다는 것을 낯선 땅에서 새롭게 발견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