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나라` 그리스 기행
③신탁의 도시 `델포이`

▲ 톨로스

오늘의 유럽(Europe)이란 어원은 그리스어`에우로페(그리스어: Ευρωπη)`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에우`는 넓음, `로`는 눈을 뜻한다. 즉 `시각의 넓음`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만약 유럽에서 그리스란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정체성 혼란으로 올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유럽연합(EU)과 같은 거대 조직은 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시아와 인접한 그리스 문명은 그만큼 유럽 문화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영어를 비롯하여 많은 나라의 언어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런 그리스 땅에는 지구의 중심이며 자궁이라고 여긴 옴팔로스(Omphalos:배꼽)가 있다.

바로 델포이(Delphoe)다.

한여름 머리 위 태양이 작열하는 도로를 달리며 바라보는 창 밖 풍경은 건조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파르나쏘스 산 왼편으로 델포이까지 가는 길은 굽이굽이 산길이다. 파르나쏘스 산은 높이가 2천457m로 포키스·프티오티스 · 보이오티아 주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창 밖을 바라보는 그 자체로도 뜨거운 열기가 전해진다.

가는 길에 산 중턱 고갯마루에서 멈췄다. 휴게소는 없지만 파르나쏘스 산 서편으로 자리잡은 `아라코바`란 예쁜 마을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산 중턱에 전형적인 그리스 풍의 흰 벽, 붉은 기와 건물들이 우리를 향해 길 하나를 밧줄처럼 내려주고 있다. 사진 몇 컷을 찍은 우린 밧줄(길)을 타고 아라코바 마을로 올랐다.

아라코바는 마을 뒤쪽으로 스키장이 있어 겨울이면 유럽인들이 찾는 휴양지다. 스키뿐만 아니라 파스타, 양모, 수예로 널리 알려진 부자마을이다.
 

▲ 옴팔로스.

아라코바에서 다시 쉬었다 출발한 승용차가 델포이 유적지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였다. 옛날옛적 그곳엔 왕뱀 퓌톤과 그의 짝 퓌티아가 살고 있었다. 활 잘 쏘는 아폴론이 화살로 퓌톤을 죽였다. 그리고 퓌티아를 인간으로 만들어 아폴론 신전의 제관(예언자) 역할을 담당하게 했다. 당시 국가적 중요한 사안인 전쟁, 식민지 건설 등이 있을 때마다 왕들은 이곳에서 신탁을 청했다. 신탁의 신전이기 때문에 그리스 곳곳에서 봉헌된 보물로 아폴론 신전 창고는 가득했다.

한낮의 열기를 조금이라도 피할 겸 야외보다 실내 박물관을 먼저 견학하기로 했다.

박물관 입장료는 야외 관람까지 포함해 9유로(1만3천원 정도)다.

델포이 유적 관광은 크게 네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실내 박물관과 아폴론신전 부근, 위쪽 전차경기장, 그리고 도로 밑 톨로스 부분이다. 그 공간이 넓기 때문에 시간의 안배가 필요하다. 점심때가 지났지만 실내 박물관을 관람하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

델포이는 고대 그리스의 4대 제전 가운데 하나인 퓌티아 제전을 기원전 582년부터 4년마다 열었던 곳이다. 퓌티아 제전은 체육대회와 연극대회로 구분되는데 아폴론 신전 바로 뒤쪽으로 공연장이 자리하고 있다. 전차 경기장은 제일 위쪽에 있는데 당시 경기의 우승자에겐 월계관을 수여했다.

델포이 실내박물관은 아르카이크 시대로부터 로마 시대에 이르기까지 델포이의 유적지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6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의 모습과 별 차이 없다. 당시 난 혼자 이곳을 찾았다. 또 다시 박물관 유물을 만나니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감회가 새롭다. 박물관에는 부서진 돌조각들의 해체와 결합, 부조와 환조들이 널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망가져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상상하면서 감상해야 한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전차 기사(약 180cm)가 눈에 들어온다. 그것을 보곤 마부가 마차를 몰고 가는 것처럼 4두 마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이 청동 기사는 시칠리아 섬의 겔라(Gela)를 다스리던 참주(지역 왕) 폴리잘로스(Polyzalos)가 델피에 바친 봉헌물이다. 폴리잘로스가 기원전 478년경 퓌티아 게임의 전차 경주에서 우승한 것을 기념해서 바쳤다. 시칠리아는 현재 이탈리아 땅이지만 당시는 이곳의 영향력 아래였음을 보여주는 전시물이다. 대부분의 유물이 없어지고 파괴되었음에도 이것은 기원전 373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땅속에 묻혔기에 약탈을 피할 수 있었고 1896년 프랑스 고고학자에 의해 발굴되었다.

실내 박물관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머무는 곳 중의 하나는 옴팔로스(Omphalos) 앞이다. 이 돌은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가 토해냈던 `돌` 이라고도 하고, 제우스가 지구 끝까지 보냈던 두 독수리가 되돌아왔을 때 만난 지점으로 지구의 중심을 상징하기도 한다. 새끼줄(양모)처럼 돋을 무늬가 이어진 옴팔로스는 아폴론 신전 북쪽에 있었다. 또한 낙소스 섬에서 바친 스핑크스는 이집트에서 유래한 것으로 얼굴은 여자, 몸은 사자에 새의 날개를 가졌다. 기둥을 포함해서 높이가 12m나 되었다고 한다. 아폴론 신전 정면에서 방문객을 내려 보았다고 한다. 기원전 580년 경 아르고스에서 바친 쿠로스 상은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로 알려졌다.
 

▲ 날개 단 스핑크스(낙소스에서 봉헌).

이런 조각과 함께 벽면 부조는 아폴론 신전의 박공부분, 헤라클레스의 전쟁 장면 등 다양하다. `여인 기둥상`, `목 잘린 여인상`, `시시포스 1세 동상`, `무희의 기둥`, `헤라클레스상`, `청동방패`, `아폴론 두상`, `악기들 들고 술을 따르는 아폴론 도자기` 등 긴 시간 각종 전시물을 보고 나오려 할 때 `삼발이 솥`이 보였다. 많은 책에서 인용하는 유물이다. 이 솥은 헬레네가 트로이아(=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고국 스파르타로 되돌아가면서 바다에 던진 솥이다. 이 황금 솥은 코스 섬에 사는 고기잡는 어부의 그물에 걸려나왔는데 `가장 현명한 철학자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탈레스, 비아스, 솔론 3사람에게 주었더니 모두 사양해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바쳐졌다고 한다. 서로 싸우지 않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안정적인 형태를 상징한다. 신탁의 무녀들이 앉았던 의자도 삼발이 의자다.

실내 박물관을 보고 늦은 점심을 먹은 뒤 오후 4시가 되어서야 `톨로스`로 향했다.

기원전 4세기 초 사모스의 테오도로스라는 건축가가 지은 원형신전 톨로스는 박물관 도로 아래쪽에 있다. 수많은 돌들이 바닥에 널려 있다. 원형의 모습대로 제 자리를 찾아 돌 하나하나 놓으려 했지만 아직도 제 자리를 찾지 못한 돌들이 산더미처럼 많다. 아티가(아테네를 포함한 주변 지역)의 펜테리 지역에서 가져온 돌로 건축하였다고 한다.

톨로스를 구경한 후 실내 박물관 옆 아폴론 신전으로 향했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은 델로스 섬의 아폴론 신전,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과 함께 고대시대에 가장 중요한 신탁소였다. 주변 방대한 유물들이 그야말로 노천박물관이다. 톨로스나 아폴론 신전에 대한 속살 깊은 이야기는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아고라, 참배로, 보물창고(아테네 보물창고는 거의 완벽하게 복원), 김나지움(체육관), 아폴로 신전, 극장을 구경한다. 비탈에 쌓은 돌들이 정교하다. 아테네, 아르고스, 시키온, 시프노스 등 곳곳 지역에서 봉헌한 봉헌창고 흔적을 훑어볼 때 `너 자신을 알라`란 글자가 소크라테스 이전에 이미 새겨져 있었음을 알려준다. 길이 60m, 폭 23m의 기단과 38개의 기둥(현재 6개 남아 있음)이 있었던 아폴론 신전과 5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을 견학한 후 위쪽 전차 경기장을 보러 가야 하는데 이미 더위로 지친 상태다. 강렬한 빛으로 사진을 찍어도 액정화면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일행 대표로 서둘러 올라가서 사진 몇 컷을 찍고 내려온다. 전차 경기장의 길이는 178m, 폭은 25m로 7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다. 6년 전에도 문 닫을 시각이라 숨 가쁘게 올라갔다 내려왔던 곳이다.

여행엔 오지도 않은 미래의 시간이 지금의 시간을 서두르게 할 때가 많다. 그래도 여유롭게 이동하는 이번 여행이다. 그렇기에 폭염도 한층 즐겁게 느껴진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