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류·기암절벽·노송 `삼박자의 향연'

여행을 다니다 보면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의 발길에 유린 당하지 않은 자연그대로의 비경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특히 비경으로 이름나기만 하면 그 모습을 온전히 간직 하기란 더 어렵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방송이나 사람들의 입을 통해 이름난 곳이다 하면 곧바로 물밀듯이 모여들어 주변환경을 변화시켜 버린다. 이러한 우리의 상황에서 볼때 아직 울진에 있는 불영계곡은 단연 돋보인다.

오래전부터 그 명성이 자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숨겨진 비경은 더욱 감동적이다.

이끼한점 없는 바닥에 티끌없이 비춰내는 선유정 계곡
짅진잠교서 불영사 입구 이십리 중 최고의 백미로 꼽혀
의상대사 창건 불영사·덕구온천 등 `또다른 즐길거리'

불영계곡을 처음 만난 것은 수년전 겨울, 강원도 정선쪽으로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길에 강원도 태백에서 소천면을 끼고 울진방향으로 내려오는데 그해 겨울이 워낙 눈이 많이 내린 해 였다. 처음엔 어디로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채 눈길 치워진 곳을 따라 조심조심 차를 몰고있는 내 눈에 처음 들어온 풍경의 불영계곡은 그냥 현실이 아니라 꿈속의 모습, 신선들이 날아다니는 그런 신비, 그 자체였다.

수천년 동안을 거치며 빗물이 바위틈을 흘러 내리면서 만들어낸 물길과 물에 닳아 반들반들해진 넓은 청석들. 항아리같이 패여진 암석들…. 웅장하고 이름난 폭포하나 없지만 기암절벽사이를 뚫고 바위틈을 흘러내리는 청류와 소나무사이로 보이는 계곡의 그 시원함이나 맑고 깨끗함은 과히 최고라 할만하며 어디엔들 비할곳이 생각나지 않는다.
 

계곡옆을 달리는 아스팔트 도로가 개통되어 계곡 특유의 한적함이나 적막함은 없어졌지만, 계곡으로 들어서는 곳곳에로의 발길을 막아놓아 태고의 계곡미는 그대로다. 역시 불영계곡의 최고의 자랑거리는 맑은 청류와 계곡 주위를 장식하고 있는 기암절벽, 그리고 노송들이다. 차창밖으로 내려다 보노라면 절로 아찔해 진다.

불영계곡으로의 여행의 출발점은 울진의 젖줄이라 하는 왕피천에서 부터다. 포항에서 울진으로 가다보면 수산교차로에서 왕피천을 왼쪽으로 끼고 영주와 봉화방면으로 좌회전하면 불영계곡으로 가는 길에 들어서게 되는데 진잠교를 지나 삼근 2리에 이르는 15km 구간이 불영계곡이라 명명되는데, 이 중에서도 진잠교에서부터 불영사 입구까지의 이십리가 진짜 불영계곡의 묘미를 느낄수 있는 곳이라 한다. 한참 달리다 보면 중간에 2층의 팔각정인 불영정과 선유정이 경치좋은 곳에 세워져 있고, 곳곳에 관광버스에서 내린 행열들이 삼삼오오 식사를 하고 있다. 불영계곡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은 선유정에서 200여m 올라간 지점에서 내려다 보는 계곡미. 스~윽 둥글게 휘어진 계곡 주위로 노송과 기암들이 저마다의 폼새를 뽐내고, 크고 흰 화강암과 청아한 물길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물줄기는 이끼 한점 없는 바닥에 티끌하나 남김없이 다 비춰내고있어 물을 바라다보면 그속으로 빠져 들어갈 것 같다.

불영계곡의 중심에 천축산 불영사가 있다.
 

불영사는 신라 진덕여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하고, 보물 1201호인 대웅보전은 안에 있는 탱화의 기록으로 영조 원년(1725년)에 세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불영사는 별로 눈에 뜨이는 특이한 것도 웅장함도, 그렇다고 모자란것도 없는 고찰이다. 전설에는 약 1천300백년전 의상대사가 절을 창건 할 당시 다섯 마리의 용이 이곳을 떠나지 않아 주문으로써 퇴치하려 하였으나 그 중 한 마리가 폭포로 숨어 들었다는 곳이 지금의 불영폭포이다. 법영루 앞에는 제법 커다란 연못이 있는데, 산 위의 부처님 형상을 한 바위가 이 연못에 비쳐 구룡사에서 불영사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얘기가 전한다.

물과 산이 서로 얽혀 산태극 수태극의 지형을 이룬 곳 답게 수면에 돌부처의 모습이 비쳐 불경 이란 이름이 유래 된 이 곳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왕피천으로 연결 된 광천을 헤엄치는 은어가 꽤 많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은어가 별로 눈에 뜨이지 않는다.

주변관광지로는 대게로 유명한 죽변항 가까이 TV 드라마 `폭풍속으로' 세트장이 있다. 언덕 위에 선 흰 등대와 옛스럽고 이국적인 한 채의 집, 배경으로 펼쳐진 바다가 많은 연인들의 로맨스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여행에 온천이 빠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덕구온천을 여정에 넣어도 좋을 듯. 덕구온천은 자연용출 약알칼리성 온천으로, 데우거나 식히지 않아도 항상 41.8도를 유지한다. 목욕을 마치고 나면 피부가 매끈매끈해지고 근육통도 한결 덜하다는 입소문이 자자한곳이다. 또한 덕구온천 스파월드는 기포욕, 마사지 시설, 노천온천, 액션스파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춰 덕구온천지구에서 가장 인기 있다. 그밖에도 많은 코스가 있지만 역시 불영계곡의 정취만큼 더 좋은것이 있을까.

희뿌연 넓적바위 위에 걸터 앉아 스케치북에 연필을 대는 순간 성철 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이 갑자기 스쳐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