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사를 지나고 대비암을 지나던 포장길은 더 이상 가파른 산을 오르지 못하고 작은 주차장에서 끝이 난다. 숨이 가빠 지그재그로 몸을 누인 채 성전암으로 향하는 오솔길은 짧지만 만만치 않다. 길 한가운데 주저앉아 쉬다가 선원장 스님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며칠 뒤 하룻밤 묵을 행운까지 얻었다. 성전암은 성철스님이 철조망을 치고 10년간 동구불출하며 수행한 곳이다. 철조망의 자물쇠가 안쪽에 있으니 갇힌 것은 성철스님이 아니라 반대쪽이라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산사에서의 하룻밤을 얼마나 기대했던가. 긴 겨울밤 요사채에 누워 무심히 울어대는 풍경소리와 스님의 정신세계를 엿보며 마시는 차 맛도 궁금하다. 선원장이신 벽담 스님은 불자가 아니라고 소개하는 나를 향해 불자는 무엇이고 비불자는 무엇인가, 누구
부인사는 팔공산 넓은 자락에 터를 잡고 앉아 툭 트인 시야를 확보하고 있다. 만개한 연꽃처럼 큰 하늘을 품고 세상을 향해 열려 있다. 고찰의 운치나 세련된 건축미를 기대한 것은 아니다. 주차장에서 경내로 걸어가는 동안 검은 때가 낀 세월의 옷을 입은 석축만이 역사를 말해 준다. “어느 봄날 부인사에 갔는데 뒤뜰의 할미꽃이 참 예뻤어. 화단을 보면 비구니 스 님들의 정성과 세심함이 느껴져. 벚꽃이 피면 더 좋을 거야.” 겨울바람 사이로 친구가 했던 말이 귓전을 맴돈다. 부인사는 내 기억의 한켠에도 뿌듯하게 자리 잡고 있는 사찰이다. 학창시절 초조대장경이 이곳에 보관됐다는 걸 알았을 때 묵직한 애향심 같은 걸 처음으로 느꼈다. 그렇지만 부끄럽게도 초행길이다. 일주문 대신 아름드리 벚나무 몇
갑자기 떨어진 기온 탓인지 암자로 가는 길목은 적막하다. 오늘은 넓은 포장길 대신 백흥암 해우소 뒤쪽으로 난 오솔길을 택했다. 소나무 숲 아래로 이어진 길 위에는 침묵조차 따스하다. 겨울 숲길을 계곡이 동무 삼아 따라 걷는다. 솔잎이 쌓인 길은 양탄자처럼 폭신하다. 산란한 마음을 잠재우듯 꾹꾹 눌러 밟으며 산길을 오른다. 모퉁이를 지키는 잔설과 얼음장 아래에서 노래하는 계곡물, 힘줄처럼 불거져 나온 나무뿌리들의 건강한 생명력이 겨울 숲의 주인이다. 간밤에 바람이 심하게 장난을 쳤던 걸까? 부러진 청솔가지와 솔방울들이 일부러 뿌려놓은 것처럼 정겹다. 겨울 소나무가 가진 푸른빛도 참으로 겸손하다. 누구의 초대가 이토록 섬세하고 다정할 수 있으랴. 겨울 산길답지 않게 포근하다. 그러나 산이 가팔라지
아침부터 눈이 내린다.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을씨년스럽던 겨울이 포근하고 따뜻해진다. 마음이 설렌다. 커피 한잔을 마시며 창가에서 눈을 감상하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부랴부랴 김천에 사는 친구를 떠올리고 열차표를 예매했다. 우리는 함박눈을 맞으며 소녀처럼 깡충거릴 것이다. 일주문을 통과하며 조금은 엄숙해질 것이고 흰 산은 법당을 들어서는 우리의 뒷모습을 말없이 지켜볼 것이다. 절을 하거나 스님과 차 한 잔을 마시는 동안 밖에서는 하염없이 눈이 쏟아지리라. 눈부신 산사의 고립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운이 좋다면 겨울 별들과 달빛이 적막한 산사 마당에 몰려와 저녁 예불 드리는 정취도 맛볼 수 있으리. 내가 그린 산사 여행은 완벽할 정도로 환상적이다. 설경으로 뒤덮인 들과
잔설이 남아 있는 숲을 헤치고 염불 소리가 먼저 마중을 나온다. 외롭지 않은 새벽 산길이다. 새벽잠이 많아 비장한 결심을 하고 집을 나섰다. 선뜻 동행해 준 지인의 고마움도 한몫을 했다. 초롱초롱한 가로등 불빛을 밟으며 우리는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풀어내며 돌계단을 오른다. 숨이 차다. 난간을 잡고 걸음을 멈추자 뜨거운 입김이 찬 공기를 만나 하얗게 변한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영원불변토록 존재할 이 우주 속에서 미약하기만 한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새벽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가? 무엇이든 하나의 소원을 빌면 들어준다는 갓바위를 찾아서. 수시로 변하는 생각과 상을 좇아 허걱대며 살아왔다. 그럴수록 뒤안길은 허전했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 때면 통과의례처럼 참다운 모습에 눈을 뜨며 살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