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군과 베트남 리 왕조의 연결고리를 찾아서 (5)

다문화가정을 이룬 베트남인들이 봉화 충효당을 둘러보고 있다.
다문화가정을 이룬 베트남인들이 봉화 충효당을 둘러보고 있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그곳을 찾는 관광객들이라면 누구나 ‘호안끼엠(還劍) 호수’를 찾게 된다. 서울이라면 광화문, 대구라면 두류공원, 포항이라면 영일대해수욕장처럼 외국인은 물론 그 지역 주민들까지 산책과 휴식을 즐기는 공간. 기자 또한 지난 5월 두 차례에 걸쳐 그곳을 돌아봤다.

호안끼엠 호수 산책로엔 거대한 조형물이 서있다. ‘리 왕조’의 태조 이공온(李公蘊·974~1028)의 동상이다.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처럼 우뚝하다. 이공온은 어떤 인물일까? 이 궁금증에 ‘리브레위키’가 답한다.

“베트남 역사상 최초로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고, 지금의 하노이를 수도로 정한 황제다. 974년 박린성 뜨선에서 태어났다. 1009년 나라가 내란에 휩싸이자 학식과 인품 모두에서 존경받던 이공온이 차기 황제로 추대된다. 수도를 옮긴 후에는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각 계층간의 화합에도 힘을 기울였다. 불교를 국교로 삼아 문화를 발전시켰고, 주변 국가의 침탈도 막아내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한 나라 수도 한복판에 동상을 만들어 그 업적을 기릴 정도라면 ‘리 왕조’와 이공온이 베트남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터.

‘리 왕조’는 216년간 지속되다가 사라진다. 영원히 지속되는 영광이란 세상에 없는 법. 차오른 달은 때가 되면 기운다. 왕국 통치자의 성(姓)이 ‘이씨’에서 ‘진씨’로 바뀐 것. 이어 ‘리 왕조’ 혈족들에 대한 살육이 시작된다.

글 싣는 순서

1. 한국과 베트남 교류 역사의 시작
2. 동반 성장의 파트너가 된 베트남
3. 봉화군이 조성할 베트남마을
4. 베트남인들이 생각하는 한국과 봉화군
5. 봉화군과 베트남이 함께 꿈꾸는 내일

 

고려에 뿌리 내린 몰락한 ‘리 왕조’ 왕족들

‘화산 이씨’라는 성(姓)을 사용하며 살게돼

임진왜란때 전투에 나서 전사한 이장발의

기개와 애국심 높이 평가해 충효당 만들어

8세기 가까이 이어진 리 왕조와 인연 ‘눈길'

베트남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 산책로에 세워진 ‘리 왕조’ 태조 이공온의 동상.
베트남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 산책로에 세워진 ‘리 왕조’ 태조 이공온의 동상.

◆봉화 충효당의 주인공 이장발은 베트남 ‘리 왕조’ 태조의 후손

이공온의 7대손인 왕자 이용상은 목숨이 백척간두에 선 상황을 피해 먼 고려로 몸을 피한다. 망명이었다. 고려의 왕은 이용상을 내치지 않고 예를 갖춰 맞았다.

그가 처음으로 밟은 고려의 땅이 황해도 화산이기에 ‘화산 이씨’라는 성(姓)도 사용하게 했다. 지금으로부터 800여 년 전인 1226년이다.

몰락한 ‘리 왕조’의 왕족들은 이후 고려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 세월은 흘러 1392년 왕국의 이름이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뀌었다. 화산 이씨 역시 고려의 백성에서 조선의 백성으로 살게 됐다.

1592년. 조선 역사에서 가장 큰 비극이라 할 수 있는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섰다. 봉화도 다르지 않았다. 봉화가 고향인 화산 이씨 가문의 장발(長發)은 분연히 떨쳐 일어나 문경 일대에서 일본군과의 전투에 나선다. 홀어머니를 두고 이장발이 전사했을 때 그의 나이 겨우 열여덟이었다.

‘베트남마을 조성 예정지’ 가운데 들어서 있는 봉화 충효당은 이장발의 기개와 애국심을 높이 평가한 조선의 유림들이 기꺼운 마음으로 만들었다. 자그마치 8세기 가까이 이어진 ‘화산 이씨’와 ‘봉화군’의 인연은 위와 같이 요약될 수 있다.

그간 한국과 베트남은 두 나라 모두 왕국에서 공화국으로 변했고, 수없이 많은 통치자가 나타났다가 사라졌지만 양국이 오래 이어온 인연의 끈은 그것들과는 무관하게 아직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60년 전 베트남전쟁에서의 비극을 떨치고, 이제는 빼놓을 수 없는 우방국으로 서로를 인식하며 경제와 문화 교류를 가속화하고 있는 한국과 베트남.

봉화군이 전력을 기울여 추진하고 있는 ‘베트남마을 조성사업’이 21세기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프로젝트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주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지난 5월 베트남 뜨선시를 찾아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박현국 군수.
지난 5월 베트남 뜨선시를 찾아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박현국 군수.

“역사와 문화를 잇는 교류의 다리될 것”

인터뷰 박현국 봉화군수

리 왕조의 역사 잇는 유적지 보유

두 나라의 교류·협력의 상징이 될

베트남마을 조성 프로젝트 최적지

농촌일자리·농산물 판로 확대 등

지역에 다방면 활력도 가져다 줄 것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교류의 다리가 되고, 미래세대에겐 두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교육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할 ‘베트남마을 조성 프로젝트’는 박현국 봉화군수의 역점 추진사업 중 하나다.

베트남마을 조성의 신속한 추진을 위해 박 군수는 지난 5월 초 17명의 봉화군대표단을 구성해 ‘리 왕조’의 태동지 베트남 박린성 뜨선시를 방문하기도 했다.

본지는 서면 인터뷰를 통해 베트남마을 조성과 관련해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을 묻고, 박 군수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구체적인 봉화군 베트남마을의 모습을 들어봤다.

-봉화군에 ‘베트남마을’이 조성돼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뭔지.

△나라가 서구열강에서 독립해 부강해지면 많은 국가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 반드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을 거친다. 베트남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과거 중국에서 독립해 독립된 국가를 이뤘던 베트남 ‘리 왕조’에 대한 문화나 역사에 대한 재조명이 아닐까. 봉화군은 베트남 리 왕조의 역사가 이어지는 국내 유일의 유적지로서 다른 어떤 지역보다 한국-베트남 교류와 협력의 상징이 될 베트남마을 조성의 최적지라고 믿는다.

-베트남마을 조성은 봉화군이 추진할 주요사업 중 하나다. 어떤 이유에서 이 프로젝트에 집중하는 것인가.

△봉화는 현재 지방 소멸 위기에 직면한 인구 3만의 농촌지역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지역과 차별화 된 킬링 콘텐츠가 절실하다. 나는 우리 군과 베트남 리 왕조의 인연이 바로 그것이라 생각한다. 베트남마을 조성, 즉 베트남 콘텐츠 선점은 농촌 일자리, 농산물 판로 확대, 문화교류와 관광 활성화, 인구 증가 등 다양한 방면에서 봉화군에 활력을 가져다 줄 것으로 예측된다. 그렇기에 사명감을 가지고 추진 중이다.

-올해 새롭게 추진될 베트남마을 조성 관련 사업은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하드웨어적으로는 봉화 충효당과 재실을 잇는 ‘교류의 길’과 연꽃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특별교부세 20억 원을 신청해 놓았다. 대규모 사업 전 기초 인프라를 닦기 위해서다. 소프트웨어적으로는 올 하반기 베트남 뜨선시 우호대표단 초청과 국제 자매결연 체결을 통한 지속적인 문화 교류를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 5월 초 베트남 박린성 뜨선시를 찾았다. 베트남마을 조성에 관해 어떤 구체적인 협조와 지원을 약속 받았는지 궁금하다.

△이번 방문에서 많은 성과를 얻었다. 항 바 위 뜨선시장은 베트남 건축양식에 대한 자문을 약속했고, 꾸억 투언 박린성 부성장은 “베트남마을 조성사업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사업 성공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했다. 여기에 더해 하반기 봉화군 우호교류단 초청과 국제 자매결연 체결 요청에 흔쾌히 응하며 실무단 구성을 지시했다.

-예상되는 고용 창출 효과, 인구 증가 효과,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 등을 포함한 베트남마을의 대략적인 모습은.

△베트남을 생각할 때 우선 많은 인구를 바탕으로 한 역동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붕화군이 만들 베트남마을도 현지 주민과 베트남 다문화인, 다양한 관광객이 공존하는 역동적인 명소가 되었으면 한다. 구체적인 사업 계획과 고용 창출 및 인구 증가 등의 효과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베트남마을 조성사업 보완용역에 반영해 연말에 가시화 시키려고 한다. 여러분들의 관심과 기대를 부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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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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