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군과 베트남 리 왕조의 연결고리를 찾아서 (3)

한국 기업의 현지 생산 공장이 다수 들어서 있고, 한 해 평균 200만 명에 가까운 한국인 관광객이 드나드는 베트남은 우리와 가장 친숙한 국가 중 하나다.

갈수록 ‘국경’이란 개념이 사라지고 있는 21세기. 서로 다른 정치·이념 체계로 인해 갈등하고 반목했던 20세기 중반과 달리 이제 한국과 베트남은 떼어놓기 힘든 우방국으로 변화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과 베트남은 아직 사회와 학교, 가정에 유교적 전통이 남아 있는 국가라는 공통점까지 가졌다.

봉화군은 이런 시대적 추세와 유사한 민족성에 주목해 몇 해 전부터 베트남마을 조성에 진력하는 중이다.

2017년 11월 당시 대통령이던 문재인이 고려로 망명한 화산 이씨의 시조 이용상을 언급한 이후 2018년 초엔 응웬 부 투 주한 베트남 대사가 봉화군 충효당(임진왜란 때 순국한 화산 이씨 이장발의 애국심을 기려 지은 사당)을 찾았다.

이어 같은 해 봄에는 봉화군 대표단이 베트남을 방문해 우호·교류의향서를 전달했다. 베트남 ‘리 왕조’의 태동지인 박린성 뜨선시에서 열리는 덴도 축제에 참가한 것도 이때부터.

베트남마을 조성을 위한 양국의 협력과 교류는 2019년에도 이어져 봉화군 대표단이 거듭해 덴도 축제를 찾았고, 지난해 12월엔 박현국 군수가 베트남 정부의 최고위급 인사인 주석을 만나 MOU를 체결했다.

지난 5월 초순 역시 군수와 군의회 의장을 포함한 17명의 봉화군 관계자들이 하노이와 뜨선시를 찾아 두 나라가 함께 만들어갈 봉화 베트남마을에 관해 진지한 논의를 진행한 바 있다.

글 싣는 순서

1. 한국과 베트남 교류 역사의 시작
2. 동반 성장의 파트너가 된 베트남
3. 봉화군이 조성할 베트남마을
4. 베트남인들이 생각하는 한국과 봉화군
5. 봉화군과 베트남이 함께 꿈꾸는 내일

 

봉화군, 베트남과 잇단 교류로 추진 성사

K팝·K드라마·K푸드… 한류 열풍 후끈

젊은이들 양국 교류 역사에도 관심 증가

‘동반자’ 韓·베트남 우호증진에 적극 지원

◆베트남 현지 분위기 또한 ‘봉화 베트남마을’ 조성에 호의적

5월 1일부터 5일까지 취재를 위해 베트남 하노이와 박린성 뜨선시를 돌아봤다. 아시아를 넘어 북미와 유럽까지 뒤흔들고 있는 ‘K-팝’과 ‘K-드라마’의 열풍은 베트남에서도 그 위력을 과시 중이었다. 베트남 젊은이들이 모이는 이른바 ‘핫 플레이스’에선 어렵지 않게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고, 기자가 탑승한 버스에 오른 몇몇 청년들은 핸드폰을 통해 베트남어 자막이 달린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그들은 원체 많은 한국 여행자를 봐 온 터라 낯선 외국인에게 가질 수 있는 경계심도 거의 없어 보였다. 수많은 고층 건물이 들어선 하노이 중심가엔 한국 물품을 판매하는 매장이 적지 않았다. 불고기와 비빔밥 등 ‘K-푸드’의 위세도 대단했다.

통역을 맡아준 화산 이씨 종친회 이부영 부회장에 따르면 “베트남 10~20대가 한국 문화와 음식에 열광한다면, 역사를 전공하는 대학생이나 지식인 계층에선 한국과 베트남간의 교류 역사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차츰 늘어가는 추세”라고 한다.

베트남 박린성과 뜨선시 인민위원회 고위급 간부들이 봉화군이 추진하는 베트남마을 조성 프로젝트에 적지 않은 관심을 보인다는 건 현재 취재를 통해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다.

 

하노이 문묘(1070년 공자를 기려 세운 사당)를 찾은 베트남 승려들.
하노이 문묘(1070년 공자를 기려 세운 사당)를 찾은 베트남 승려들.

베트남인들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자존심이 강하다. 그 배경엔 제갈공명에게 일곱 번이나 사로잡혔으나 결코 항복하지 않았던 베트남 장수 맹획에 관한 칠종칠금(七縱七擒)의 고사(故事)가 있고, 초강대국 프랑스와 미국에게 굴복하지 않고 저항했던 베트남 현대사가 있다.

자존심이라면 한국인도 이에 지지 않는다.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려는 당당한 태도가 없었다면 5천 년 내내 지속됐던 숱한 외침과 내환을 견뎌내고 오늘에 이르지 못했을 터.

베트남 정부 관계자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정부 역시 양국의 모범적 협력 사례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은 봉화 베트남마을 조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이달 초 오영주 주베트남 대사는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인 한국과 베트남의 우호 증진을 위해서라도 이 사업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계속)

 

하노이에서 만난 주한 베트남관광청 이창근 대사(우측)와 화산 이씨 종친회 이부영 부회장.
하노이에서 만난 주한 베트남관광청 이창근 대사(우측)와 화산 이씨 종친회 이부영 부회장.

“베트남과 한국 잇는 가교 역할에 보람”

인터뷰 주한 베트남관광청 이창근 대사
 

韓-베트남서 인생의 절반씩 생활

애국심·효심 등 유사한 부분 많아

봉화군의 베트남마을 건립 환영

윈윈 하는 동반성장 국가로 기대

지난 5월 1일 봉화 베트남마을 조성사업의 현지 취재를 위해 하노이에 갔다. 그날은 마침 주한 베트남관광청 리 쓰엉 깐(65) 대사가 업무를 위해 하노이를 찾았던 때. 급하게 연락해 리 대사의 하노이 사무실을 찾았다.

그는 800여 년 전 고려로 망명한 이용상의 31대손으로 1994년 베트남으로 귀화했다. 한국 이름은 이창근. 인터뷰 자리엔 ‘리 왕조’ 탄생 축제 참석을 위해 베트남을 방문한 화산 이씨 종친회 이부영 부회장도 동석했다.

-베트남을 여행하는 한국 관광객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주한 베트남관광청 대사를 맡은 건 언제부터인지.

△2017년이다. 3년 임기인데 현재 연임 중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재임명을 받았다. 나는 화산 이가(花山 李家)고, 1958년 한국에서 태어났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거기서 살았다. 조상의 땅인 베트남과 30대 중후반까지 살아온 한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음에 보람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도 당신의 뿌리가 베트남에 있음을 알고 있었는지.

△숙부가 혈통에 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셨다. 그에게 1천 년 전 베트남 왕족이었던 우리 가문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그러다보니 학생 때도 베트남 관련 기사가 나오면 신문을 꼼꼼하게 읽었고, 대학 땐 화산 이씨와 관련된 논문을 찾아보기도 했다. 아쉽게도 숙부는 1975년 한국과 베트남의 수교가 단절되면서 세상을 떠났다.

-1990년대 한국-베트남 수교가 재개된 후 귀화했다고 들었다.

△내 중시조(中始祖)는 1226년 고려 고종 13년에 망명한 이용상이다. 그는 고려와 베트남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애썼다. 나 역시 미력하나마 그런 삶을 살고 싶어 1994년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베트남에 정착했다. ‘리 왕조’를 기억하는 베트남 사람들의 호의적인 태도가 여기서 자리 잡는데 큰 힘이 됐다.

-현재 경북 봉화군이 베트남마을 조성에 힘을 쏟고 있는데.

△환영할 일이다. 베트남마을 조성은 한국과 베트남이 보다 친숙한 나라가 되는데 작지 않은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화산 이씨들은 ‘한국에 세종대왕이 있다면, 베트남엔 리 왕조가 있다’는 긍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봉화군이 관련된 조언과 도움을 요청할 때면 언제든 기쁜 마음으로 응한다. 게다가 봉화엔 우리 조상을 모신 충효당도 있지 않나. 마음 같아서는 조성에 필요한 자금도 보태고 싶다.

-한국에 거주하는 ‘화산 이씨’는 어느 정도 되는가.

△대략 2천여 명 정도다. 적은 숫자이니 종친회 활동이 다른 가문 같지 않지만, 소수라 결속력은 더 강하다. 베트남마을 조성 등의 계기가 생긴다면 더 잘 뭉치지 않겠는가.(웃음)

-한국과 베트남에서 인생의 절반씩을 살았는데.

△두 나라는 유사한 측면이 많다. 애국심과 효심을 높이 받드는 것이 특히 그렇다. 그러니, 이질적인 민족성으로 인한 어려움은 없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리 왕조’가 존중의 대상인 듯하다.

△왕조가 생겨난 것을 기념해 해마다 ‘덴도(DO-temple) 축제’를 열고, 수도인 하노이 한복판에 ‘리 왕조’ 태조의 동상도 서있다. 이런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베트남인들이 내 조상이 다스렸던 시기를 좋게 평가하는 것 같다.

-향후 한국과 베트남 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는지.

△내겐 태어난 한국과 뿌리가 있는 베트남 모두 중요하다. 두 나라는 오래 전부터 교류를 해오던 사이였다. 그런 역사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 올해 베트남 인구가 1억 명을 넘어섰다. 베트남은 30대 이하 인구가 다수인 젊은 국가다. 교육열과 발전가능성 또한 높다. 한국과 베트남이 윈윈(win-win)하는 사이로 동반 성장할 수 있었으면 한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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